샬롯 거미줄
Charlotte's Web, 2006
거미 ‘샬롯’이 있다. 돼지 ‘윌버’가 있다. 여리고 작은 돼지를 아끼는 어린 가시내가 있다. 어린 가시내를 사랑하는 아버지가 있다. 어린 가시내를 사랑하는 아버지한테는 늘 이녁을 믿고 보살피는 곁님이 있고, 이웃이 있다. 그리고, 아주 수수하면서 투박하다고 하는, 딱히 이름이 날 일이 없다는 시골마을이 있다. 〈샬롯 거미줄(Charlotte's Web)〉은 아주 수수하고 투박한 시골마을에서 일어난 자그마한 일을 들려준다.
거미는 어디에나 있다. 돼지도 어디에나 있다. 어린 가시내랑 아버지와 어머니도 어디에나 있다. 그러나, 이야기는 어디에나 흔하거나 똑같이 있지 않다.
거미가 거미줄을 짜는 일은 무엇일까? 그냥 흔하거나 너른 일일까? 아니면 언제나 놀라운 모습일까? 우리가 거미줄을 걷어내어도 거미는 이튿날이면 새 거미줄을 짠다. 이 거미줄을 또 걷어내어도 거미는 다음날에 새 거미줄을 짠다.
〈샬롯 거미줄〉에 나오는 거미한테는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첫째는 ‘따스한 마음’이다. 둘째는 ‘사람들이 알아보는 글씨를 거미줄로 짤 수 있는 솜씨’이다. 거미 샬롯한테는 따스한 마음만 있지 않다. 그리고, 거미 샬롯한테는 빼어나거나 놀라운 솜씨만 있지 않다. 거미 샬롯한테는 두 가지가 함께 있으며, 어느 한 가지에만 치우치지 않는다.
돼지 윌버는 거미 샬롯한테 ‘돼지인 내가 참말 대단하거나 눈부시거나 놀랍거나 다소곳한’가 하고 묻는다(some pig, terrefic, radiant, humble). 거미 샬롯은 돼지 윌버한테 딱히 어떤 말을 들려주지 않는다. 다만, 거미와 돼지는 서로 동무라고 말한다. 거미는 돼지더러 ‘네(돼지)가 나(거미)를 다른 짐승들처럼 겉모습이나 편견으로 바라보지 않고, 기쁘게 동무로 맞이해 주었다’고 말한다. 바로 이 마음과 말이 모든 일이 놀랍고 사랑스레 일어나는 바탕이 되었다고 말한다.
삶이 빛나는 까닭은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떠도는 이야기라든지, 책에 나오는 이야기라든지, 널리 알려진 이야기 따위가 아니라, 바로 우리가 저마다 제 삶에서 스스로 빚어서 길어올리는 이야기가 있기에 삶이 빛난다. 거미 샬롯이 왜 아름다운가? 샬롯이 낳은 새끼 거미가 왜 아름다운가? 돼지 윌버가 왜 사랑스러운가? 어린 가시내가 왜 착한가? 아버지하고 어머니는 왜 믿음직한가? 모두 이 지구별에서 함께 살아가는 이웃이면서 동무이기 때문이다. 이야기책으로 1952년에 처음 나오고, 영화로도 나온 〈샬롯 거미줄〉은 한국에서 “우정의 거미줄”이라는 이름으로도 옮기기도 했다. 거미와 돼지 사이에 피어난 ‘우정’이라고 할 텐데, ‘우정’이라는 한자말은 모든 실마리를 풀어 주지 못한다. 거미와 돼지는 서로 아끼고 어깨동무를 하는 ‘따스한 마음’이 있으며, 이 마음을 ‘열린 넋’으로 가꾸며, 이 넋을 ‘기쁘며 고운 솜씨’로 가다듬는다. 거미와 돼지는 서로 ‘참다운 사랑’으로 만난 맑고 환한 숨결이다. 4348.6.13.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영화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