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제스처, 그리고 색
제이 마이젤 지음, 박윤혜 옮김 / 시그마북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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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으로 삭힌 사진책 94



잘 찍을 사진이 아닌, 즐거운 사진으로 가자

― 빛, 제스처, 그리고 색

 제이 마이젤 글·사진

 박윤혜 옮김

 시그마북스 펴냄, 2015.3.2.



  사진은 잘 찍을 수 있고, 못 찍을 수 있습니다. 사진을 잘 찍는 사람이 있고, 사진을 못 찍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언제나 이뿐입니다. 딱히 더 없습니다. 사진을 잘 찍을 수 있기에 훌륭하거나 아름답지 않습니다. 사진을 못 찍기에 안 훌륭하거나 안 아름답지 않습니다.


  노래는 잘 부를 수 있고, 못 부를 수 있습니다.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이 있고, 노래를 못 부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이뿐이에요. 딱히 더 있을 일이 없습니다. 노래를 잘 부를 수 있기에 멋지거나 대단하지 않습니다. 노래를 못 부르기에 안 멋지거나 안 대단하지 않습니다.




.. 당신이 무엇을 찍느냐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정말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 당신에게 즐거움을 주느냐”다 … 사진 찍는 일 자체가 즐겁고 당신의 마음을 사로잡는다면, 사진이 완벽하지 않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 당신이 지금 보고 있는 그것을 찍어야 한다 … 누군가 내게 묻는다. “조명을 어떻게 한 거죠?” 나는 그렇게 대단하지 못하다. 빛이 한 일일 뿐 … 빛과 공기가 최대한 나를 흥분시키는 그런 시간대를 고른다. 그게 바로 좋은 ‘시간’이기 때문이다 ..  (20, 24, 32, 36쪽)



  제이 마이젤 님이 빚은 사진책 《빛, 제스처, 그리고 색》(시그마북스,2015)을 읽습니다. 제이 마이젤 님은 미국에서 사진을 오랫동안 가르쳤다고 합니다. 이 책에는 미국에서 오랫동안 사진을 가르친 분이 느낀 이야기가 흐릅니다. 미국에서는 《Light, Gesture & Color》라는 이름으로 2014년에 나왔다고 해요. 그러니까, ‘빛(Light)하고 몸짓(Gesture)하고 빛깔(Color)’, 이렇게 세 가지를 들려주는 사진책입니다.


  한국말로 옮길 적에 ‘빛’하고 ‘색’으로 옮겼습니다만, ‘색’은 ‘빛 色’이라는 한자입니다. 그러니, ‘color’를 ‘색’으로만 옮기면 아무래도 걸맞지 않아요. 그리고, ‘light’도 더 헤아려 볼 노릇입니다. ‘빛’으로 적어도 나쁘지는 않으나, 사진을 말할 적에 쓰는 ‘light’하고 ‘color’라고 한다면, ‘빛살’하고 ‘빛깔’처럼 제대로 나누어서 써야지 싶습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빛(light)’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해가 베푸는 햇빛이요, 다른 하나는 사람들이 전기를 빌어서 터뜨리는 불빛(전등 불빛)입니다. 햇빛과 불빛은 모두 ‘줄기처럼 흐르는 빛’입니다. 한 마디로 하자면 ‘빛줄기’입니다. 해가 뜨거나 전깃불을 켜야 비로소 사물하고 사람을 알아봐요. 빛줄기(빛이나 빛살)가 있어야 비로소 사진을 찍습니다.


  ‘빛깔(color)’은 까망하양(흑백)과 무지개(칼라)를 가르는 빛깔입니다. 까망하양도 빛깔이요, 무지개도 빛깔입니다. 그래서, 까망하양으로 찍든 무지개로 찍든, 이 빛깔을 찬찬히 살피면서 헤아릴 때에 비로소 사진이 사진다울 수 있도록 다스릴 만합니다.




.. 카메라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당신은 그저 그게 얼마나 멋있었는지 말로 묘사하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을 것이다 … 나는 보는 사람들에게 질문을 걸어 오는 사진, 또는 질문을 하고 싶게 만드는 사진을 좋아한다 … 당신이 20대이든 80대이든 쓸 수 있는 에너지가 한정되어 있다는 사실은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그 한정된 에너지를 무거운 장비들을 나르는 데 전부 쓸 것인가, 아니면 사진을 찍는 데 쓸 것인가 … 자, 눈을 뜨자. 순수 자연 풍경은 잊고 네 눈앞에 있는 모습을 찍자 ..  (38, 54, 56, 66쪽)



  오늘날 적잖은 사람들은 ‘잘 찍는 사진’하고 ‘못 찍는 사진’ 사이에서 헤매거나 떠돕니다. 수많은 사진강의나 사진강좌는 ‘사진 잘 찍는 솜씨’를 다룹니다. 한국에서 나오는 꽤 많은 사진책도 ‘사진 잘 찍도록 이끄는 길’을 들려주기 일쑤입니다.


  가만히 보면, 주식투자 잘 하는 길이라든지, 아이를 잘 가르치는 길이라든지, 처세나 경영을 잘 하는 길을 다루는 책이 대단히 많이 나옵니다. 이런 책도 저런 책도 모두 ‘잘 하는 길’을 보여주거나 알려주려고 해요. 그러니, 사진책에서도 ‘사진 잘 찍는 길’을 다루는 책이 많이 나온다고 할 만해요.


  그러나, 사람들 가슴을 울리는 사진은 ‘잘 찍은 사진’이 아닙니다. 가슴을 울리는 사진은 ‘가슴을 울리는 사진’입니다. 초점이 어긋나거나 흔들리거나 빛이 덜 맞더라도, ‘가슴을 울리는 이야기’가 흐를 적에, 이 사진을 보면서 가슴이 찡 하고 울립니다. 잘 찍은 사진을 보면 어떠한 느낌일까요? ‘아, 이 사진 잘 찍었네!’ 하고 놀라겠지요.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이 생일잔치에서 노래를 불러 주기에 가슴이 찡하지 않습니다. 서툴거나 어설픈 목소리라 하더라도, 사랑을 그득 담아서 살가이 부르는 노래를 들을 적에 가슴이 찡합니다. 할머니하고 할아버지가 ‘아기 배냇짓’에도 눈물을 흘리는 까닭이란, 대여섯 살 아이가 들려주는 노래를 들으면서 수많은 어머니하고 아버지가 눈물을 적시는 까닭이란, ‘노래를 잘 부르’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사진을 잘 찍어야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사진에 ‘온마음을 사랑으로 실어’서 찍을 수 있으면 됩니다. 사진 한 장을 찍으면서 내 온마음을 싣되, 초점이나 빛살을 잘 맞추고 군더더기까지 없다면 훌륭하겠지요. 다만, 아무리 빼어난 솜씨를 보여준다고 하더라도 ‘이야기’를 담지 못한다면, 이때에는 ‘보기 좋은 모습’일 뿐, ‘사진’이 되지 못합니다.




..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라. 높게, 낮게, 빛을 잔뜩 받으면서, 또는 빛에 반해서 … 반드시 햇빛이 있어야 한다고는 여기지 말라. 그건 단지 당신이 쓸 수 있는 수많은 빛 중 하나일 뿐이다 … 자신을 다른 이와 비교하지 않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 당신이 비교해야 할 대상은 오직 당신 자신이다 …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신이 놓친 것을 보지 못하고 심지어 잘 보지도 않는다 … 사진에 담은 모든 것에 제스처가 있다 ..  (84, 88, 92, 102쪽)



  사진책 《빛, 제스처, 그리고 색》은 ‘사진을 처음 찍으려는 사람’이나 ‘사진을 오래 찍은 사람’ 모두한테 똑같은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합니다. 사진을 잘 찍으려고 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합니다. 사진을 즐겁게 찍으라고 이야기합니다. 사진 한 장에 사랑을 담아서 찍으라고 이야기합니다. 언제 어디에서나 꼭 사진을 찍어야 하지는 않으니, 어깨에 힘을 빼라고 이야기합니다. 다른 사람이 잘 찍었다는 사진을 자꾸 쳐다보면서 주눅들지 말고, 다른 사람 사진하고 내 사진을 견줄 생각을 하지 말라고 이야기합니다.


  이제, 《빛, 제스처, 그리고 색》에서 다루는 ‘제스처’를 생각해 봅니다. 영어사전에서 이 낱말을 찾아보면 “몸짓, 제스처”로 풀이합니다. 그러니까, 한국말은 “몸짓”이라는 소리입니다.


  제이 마이젤 님은 왜 이녁 사진책에서 ‘몸짓’을 살피라고 이야기할까요? 사진에 담는 이야기는 늘 ‘몸짓’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움직이고 저렇게 흐르는 삶은 언제나 몸짓으로 드러납니다.


  몸짓은 손짓이기도 하고 발짓이기도 합니다. 마음짓이기도 하며 사랑짓이기도 합니다. 꿈짓이나 생각짓이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구름이 흐르는 모습도 몸짓이고, 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드는 모습도 몸짓입니다. 꽃송이가 터지는 흐름도 몸짓이며, 가랑잎이 떨어지고 나비가 나는 모든 모습은 언제나 몸짓이에요. 몸짓을 읽을 적에 삶짓을 읽습니다. 삶짓을 읽으니, 삶짓을 따사로이 가꾸는 사랑짓을 알고, 사랑짓을 알면서 말짓이랑 웃음짓이랑 춤짓 모두 되새길 수 있습니다.




.. 문제는 반드시 해결책을 제시하기 마련이다 … “당신에게 선택지가 있습니다. 오늘 작업을 할 때 행복한 사진작가와 하고 싶은가요, 아니면 성질난 사진작가와 하고 싶은가요?” … 사진을 찍는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역사를 기록하기 위함이다 … 당신은 언제든지 사진 찍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 어떤 방식으로 설명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내게 감동을 준다는 사실이 중요할 뿐이다 … 재미있으면 찍으면 되고, 한 번도 본 적 없는 것이면 또 그냥 찍으면 된다 ..  (136, 150, 152, 158, 204, 212쪽)



  무엇을 왜 찍으려 하는지 스스로 묻습니다. 무엇을 찍을 적에 즐거우며, 이 사진 한 장을 얻어서 내 삶에 어떤 이야기가 사랑스레 흐를 만한지 스스로 묻습니다. 가만히 돌아보면, 나는 사진을 찍고 싶으니 사진을 찍습니다. 노래를 부르고 싶으니 노래를 부릅니다. 사진을 좀 못 찍는다 싶어도, 사진을 찍으면서 즐거우니 사진을 찍습니다. 내 노랫가락이 돼지 멱을 딸 만한 소리라 하더라도, 노래를 부르면서 즐거우니까 노래를 부릅니다.


  글씨가 서툴어도 손글씨로 편지를 씁니다. 글을 좀 못 써도 신나게 글을 씁니다. 호미질이 서툴어도 꽃밭과 텃밭을 일굽니다. 자전거를 잘 못 달리더라도 두 아이를 태우고 자전거를 타고 나들이를 다닙니다.


  즐거운 삶이기에 즐거운 사진이 됩니다. 기쁜 사랑이기에 기쁜 사진이 됩니다. 웃는 삶이기에 웃음이 묻어나는 사진이 됩니다. 노래하는 사랑이기에 노래하는 사진으로 거듭납니다. 우리 다 같이 아름답게 어깨동무를 하면서 아름다운 삶을 가꾸고, 아름다운 사진을 나눌 수 있기를 빕니다. 4348.6.12.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사진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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