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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민중봉기 - 필리핀, 버마, 티베트, 중국, 타이완, 방글라데시, 네팔, 타이, 인도네시아의 민중권력 1947~2009 ㅣ 아시아의 알려지지 않은 민중봉기 2
조지 카치아피카스 지음, 원영수 옮김 / 오월의봄 / 2015년 5월
평점 :
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12
민중봉기는 ‘군사독재 권력’만 무너뜨렸다
― 아시아의 민중봉기
조지 카치아피카스 글
원영수 옮김
오월의봄 펴냄, 2015.5.11.
《한국의 민중봉기》하고 나란히 나온 《아시아의 민중봉기》를 읽습니다. 미국에서 정치사회학을 연구하며 가르치는 조지 카치아피카스 님은 두 가지 책을 함께 내놓은 올해 5월에 ‘광주 명예시민’이 되었다고 합니다. 1980년 광주 이야기를 널리 알린 보람으로 명예시민증을 받았다고 하는데, 2010년에는 ‘오월어머니상’을 받았다고 합니다. 《한국의 민중봉기》는 1894년부터 2008년 사이에 한국에서 어떤 민중봉기가 일어났는가를 밝히는 책이고, 《아시아의 민중봉기》는 아시아에서 어떤 나라가 어떤 독재자를 어떻게 몰아내려고 일어났는가를 밝히는 책입니다.
1980년대까지 동아시아 독재 정권들은 수십 년간 집권해 오며 흔들리지 않을 것처럼 보였지만, 저항의 물결이 곧 그 지역을 바꾸었다 … 평화주의도 공산주의도 아닌 이 운동들은 풀뿌리에서 발생했다 … 사람들이 (미국처럼) 인종적·경제적 평등이 없는 자유는 진정한 자유가 아니며, (소련처럼) 자유가 없는 평등은 평등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게 되면서 기업·공산주의 괴수에 대한 환멸이 자라났다 … 의회민주주의는 경제 엘리트들의 지배를 정당화하고, 기업과 소비자 시장을 넓히며, 전 지구적 자본주의 경제와 협력하고, 은행들에 안전하고 믿을 만한 금융 인프라를 제공하는 데 적합한 도구이지, 민주주의의 중심 요소가 아니다. (22, 40, 45, 59쪽)
《아시아의 민중봉기》라는 책에서 나오듯이 ‘평등이 없는 자유’와 ‘자유가 없는 평등’은 우리 삶을 옥죕니다. 평등하지 않을 때에는 자유가 될 수 없고, 자유롭지 않을 때에는 평등이 될 수 없습니다. 평등하고 자유는 서로 떨어질 수 없습니다. 어느 한 가지만 누릴 수 없습니다.
감옥에 가두어 놓고 자유롭게 살라고 하면 자유가 아닙니다. 손발을 꽁꽁 묶어 놓고 평등하게 지내라고 하면 평등이 아닙니다. 아이들이 대학입시만 바라보도록 내몰면서 이 울타리에서 자유롭게 배우라고 한다면 조금도 자유가 아닙니다. 모든 아이들한테 똑같은 옷을 입히고 똑같은 머리카락 길이를 맞추며 똑같은 교과서를 배우게 한대서 하나도 평등이 아닙니다.
백화점에서 이것저것 고를 수 있기에 자유가 되지 않습니다. 모든 아이들이 똑같은 시험지를 풀도록 하니까 평등이 되지 않습니다. 백화점에서 물건을 고르는 자유가 아니라, 스스로 삶을 찾아서 살림을 가꿀 자유를 누려야 합니다. 누구나 똑같은 시험문제를 풀면 대학교에 갈 수 있다는 평등이 아니라, 졸업장하고 자격증에 얽매이지 않고 꿈을 이루는 길로 나아가는 평등을 누려야 합니다.
1987년 1월 22일, 땅 없는 사람들이 평화적 시위를 벌이며 아키노 정부에 토지 관련 공약을 지키라고 경건하게 요구하고 있을 때, 경찰이 멘디올라 다리에서 발포해 최소 21명이 사살되고 100명 가까이 부상당했다 … 부패한 대통령을 몰아내는 두 번의 봉기가 성공했는데도, 필리핀 민중은 사회체제를 제대로 바꾸는 데는 실패했다. (113, 134쪽)
1988년 8월 8일 오전 8시 8분, 랑군의 항만 노동자들이 파업에 들어갔고, 이는 나라 전체를 정지시키고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민주적 선거를 가져올 총파업의 신호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전국적 운동은 야만적인 군대와 부딪혔고, 군부는 수천 명의 민중을 죽이고 이후 수십 년간 철권통치를 하게 된다 … 군인들은 응급실에 쳐들어가 침대에 누워 있는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죽였다. 그날 버마 전역에서 360명이 살해됐다 … 버마 군부는 석유·목재·어로·채굴권 판매를 이용하여 군대의 규모를 확대하고 무기를 개선했다. (148, 150, 165쪽)
군대에는 자유도 평등도 없습니다. 모든 사내가 들어가도록 한대서 평등이 되지 않습니다. 똑같은 옷을 입히거나 똑같은 총을 쥐어 준다고 해서 평등이 되지 않습니다. 군사훈련을 마치고 ‘자유시간’을 준다고 해서 참말 ‘자유’롭게 지내지 못합니다.
군대에 자유와 평등이 없는 까닭은, 군대라는 곳이 ‘사람을 죽이는 일’을 사람한테 길들여서 시키기 때문입니다. 군대가 하는 일은 언제나 ‘사람 죽이기’이기 때문에, 군대에는 자유도 평등도 싹틀 수 없습니다. 이리하여, 아시아에서 독재권력을 부리는 여러 나라는 군대를 거느립니다. 독재권력은 군대를 거느릴 뿐 아니라, 군대를 더 크게 키우려 하고, 군 간부를 늘려 떡고물을 잔뜩 안겨 줍니다. 군인이 되면 먹고사는 걱정이 없도록 하는 독재권력입니다. 군인한테 먹고사는 걱정을 없애 주니, 군인은 독재권력이 시키는 짓을 모조리 따르도록 길듭니다.
그런데, 군인이 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먹고사는 걱정’을 하던 여느 사람입니다. 독재권력을 무너뜨리려고 똘똘 뭉치는 여느 사람하고 똑같은 사람이 군인이 됩니다. 독재권력을 무너뜨리려는 사람은 참다운 자유와 평등을 바라보면서 어깨동무를 합니다. 독재권력이 무너지지 않도록 지켜 주는 군인과 경찰은 ‘먹고사는 걱정’을 하지 않을 뿐더러, 자유와 평등을 바라보지 못합니다. 자유와 평등을 ‘먹고사는 걱정’을 없애는 일에 팔아치웠기 때문입니다.
1903년 중국 장군 ‘도살자’ 팽과 그의 군대가 가는 길마다 사람들을 도륙하면서 티베트의 심장부로 밀고 들어왔다 … 반세기 이상 이어진 중국의 점령 정책 동안에 반란·투옥·기아 때문에 죽은 티베트인은, 겨우 500만 명 정도인 전체 인구 가운데 100만 명이 훨씬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 구타당하고 진압당해도 티베트인들은 가만히 있기를 거부했다 … 중국계 상인들은 국영 상점에서 사원의 귀중품을 판매한다. (179, 180, 194, 200쪽)
부는 고루 분배되기보다 새 호텔 건설에 사용됐고, 자본 투자 계획은 물가를 상승시켰다 … 엘리트와 노동자 간의 격차는 확대됐다. 엘리트들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시절이 없었다. 당 간부들은 국가가 정한 낮은 가격으로 구입한 상품을 재판매해 엄청난 이윤을 챙겼다 … 엘리트 담론에 길든 학생들은 그 안에서 자신의 지위를 확보하려 투쟁했고, 운동 내에서 같은 담론을 재생산했다. (221, 222. 246쪽)
군인이 되어 이웃이나 동무를 죽이거나 괴롭히는 짓을 한 사람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독재권력을 거머쥔 우두머리는 그저 손가락 하나만 까딱할 뿐입니다. 독재권력 우두머리는 손수 사람을 죽이지 않습니다. 독재권력 우두머리는 군 간부를 거느리면서 이들한테 말 한 마디만 합니다. 군 간부는 수많은 졸개(일반 사병)를 이끌고는 바로 그들한테 이웃이자 동무인 사람들을 때리고 죽이고 강간하며 마을을 불태웁니다. 더군다나 독재권력 우두머리는 그저 손가락 하나만 움직일 뿐인데, 어마어마한 돈과 재산을 긁어모읍니다. 독재권력 우두머리 둘레에 빌붙는 이들은 모든 심부름을 도맡으면서 돈과 재산을 야금야금 얻어먹습니다.
아시아에서 민중봉기를 일으킨 사람들은 독재권력 우두머리 한 사람만 끌어내리려는 마음이 아닙니다. 우두머리 한 사람을 끌어내려도 새로운 우두머리가 들어서면서 ‘앞선 독재권력자’하고 똑같은 짓을 일삼습니다. 그러니, 우두머리와 허수아비 몇 사람을 끌어내려는 민중봉기가 아니라, 새로운 나라를 짓고 새로운 삶을 이루고 싶어서 일으키는 민중봉기입니다.
《아시아의 민중봉기》라는 책을 읽으면, ‘엘리트’를 나무라는 이야기가 자주 나옵니다. ‘엘리트’란 누구인가 하면 야당 정치인이나 대학생 지도자입니다. 야당 정치인이나 대학생 지도자는 민중봉기를 등에 업으면서 이름값을 날려 ‘독재자한테서 정치권력을 나누어 받아 그 자리를 지키는 일’에 더 마음을 쏟는다고 합니다.
국민당의 학살극이 진정될 때까지 수만 명이 살해됐다. 아무도 정확히 몇 명이 죽었는지 알지 못했다 … 수많은 국민당 형법은 나치 독일에서 나온 것이며, 21세기에도 효력을 유지하고 있다 … 학교에서 타이완어를 말하는 어린이들은 매를 맞았고 … 타이완과 한국은 미국의 가장 중요한 제조업인 군수산업의 중요한 소비국이 됐다. (290, 292, 293, 326쪽)
민중이 들고일어날 때, 그들의 용감한 행동은 노래·춤·시·산문·연극으로 신화화됐다 … 정부가 평화적 시위자들을 구타하기 위해 만달레스(정부 폭력배 집단)를 풀자, 새로운 계층의 주민들이 운동에 참여했다 … 4월 6일 경찰이 발포하여 수십 명을 살해하자, 군중이 왕궁을 습격할 것이라는 생각에 당혹한 것은 국왕만이 아니었다. 합법화되어 권력의 한 조각을 얻기를 간절히 원했던 정당들도 더욱 불안해졌다 … 하층 카스트 민중, 소수민족과 여성은 의회에서 제대로 대표되지 않았다. (332, 354, 361, 376쪽)
《아시아의 민중봉기》를 읽는 내내, 이 나라와 저 나라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총알에 맞아 죽거나 칼에 찔려 죽거나 군홧발에 짓밟혀 죽었는가 하는 이야기를 마주합니다.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독재권력은 ‘군인과 경찰’한테 사내는 그냥 때려죽이고 가시내는 강간하고 죽이도록 ‘작은 권력’을 나누어 주었다고 합니다. 필리핀도 버마도 네팔도 중국도 티베트도 타이완도 방글라데시도 인도네시아도 모두 똑같습니다. 죽은 사람 숫자만 다를 뿐입니다. 죽는 모습은 엇비슷하고, 강간이나 학살이나 독재와 부정축재도 엇비슷합니다. 그리고, 아시아에 있는 모든 독재권력은 미국하고 줄이 맞닿습니다.
미국은 군수산업으로 나라를 버틴다고 합니다. 아니, 미국은 군수산업을 일으키고 어마어마한 군대를 거느리면서 지구별 수많은 나라를 짓누른다고 합니다. 아시아에서는 타이완과 한국이 미국에서 전쟁무기를 아주 많이 사들이는 ‘큰 손님’이라고 합니다. 그러고 보면, 미국은 아시아 여러 나라에 군사독재가 무시무시하게 으르렁거려야 돈을 잘 법니다.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군사독재정권이 군대를 자꾸 늘리면서 사람들을 윽박질러야 미국 군수산업은 발돋움할 수 있습니다.
미국은 끝없이 새로운 무기를 만듭니다. 아시아 군사독재정권은 미국이 내다 파는 새로운 무기를 끝없이 사들입니다. 헌 무기는 전쟁을 치르면서 다 써 버리고, 전쟁이 지나가면 새로운 무기를 사고팝니다. 새로운 무기가 이윽고 헌 무기가 될 무렵 다시 전쟁을 치러서 이 무기를 다 써 버리고, 또 새로운 무기를 잔뜩 만듭니다.
방글라데시를 낳은 9개월간의 전쟁 동안 전부 300만 명이나 되는 사람이 살해되고 수만 명의 여성이 강간당했다 … 그들의 이데올로기가 무엇이든 새 공화국의 모든 정부는 민중의 권리를 제한했는데 … 에르샤드는 군대를 증강하고 퇴역한 최고사령관들을 부와 권력이 있는 지위에 앉히고 장교들의 급여를 2배로 인상하고 사병의 수를 늘리는 동시에, 미국과 더욱 친밀한 관계를 쌓아 갔다 … 정치인과 재계 지도자가 군부의 비호 아래 치부하는 동안 수백만 명의 보통 시민은 반기아 상태로 내몰렸다. (411, 412, 418, 435쪽)
타이인들도 민주주의를 위한 성공적 봉기에서 두 차례 대규모 시위를 벌이고 수십 명이 목숨을 잃었지만, 그들의 영웅적 희생이 정치 지도자들에 의해 허비되고 독재자들에 휩쓸려 사라지고 글로벌 기업의 이윤이 되는 경험을 했다 … 개인적 자유와 ‘신자유주의’의 이름으로 억만장자들은 수세대의 노동자들이 생산한 막대한 사회적 부를 자신의 사적 소유로 전유한다.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정치인들은 군사화된 민족국가를 보통 시민들 위에 군림하는 권력의 영역으로 만들고, 때로는 수천 명의 인명을 살상한다. (444, 542∼543쪽)
《아시아의 민중봉기》가 다루는 아시아 사람들 발자국은 그예 핏자국입니다. 피를 흘리지 않은 민중봉기는 없습니다. 민중봉기가 일어나기 앞서까지 수없이 피를 흘리며 노예처럼 짓밟힌 채 살았고, 민중봉기를 일으켰어도 ‘엘리트’ 야당 정치인과 대학생 지도자는 독재정권이 나누어 준 콩고물을 받아먹는 일에 사로잡히는 얼거리가 여러 나라에서 되풀이됩니다. 사회 틀거리는 ‘군사독재’에서 ‘민주선거’로 바뀌지만, 군대와 경찰은 예전하고 똑같이 무시무시합니다. 독재권력을 무너뜨린 민주주의 선거제도는 군대와 경찰을 줄이거나 없애지 못합니다. 민주주의 선거로 대통령이 되거나 정치권력을 얻은 이들은 예전 독재권력이 거느린 군대와 경찰을 고스란히 물려받기만 할 뿐입니다. 그리고, 이들 군대와 경찰을 부려서 ‘새로운 민중봉기가 일어나지 않도록 두들겨패거나 짓누르’는 짓이 일어납니다.
그러면, 조지 카치아피카스 님은 《아시아의 민중봉기》라는 책을 왜 쓰려고 했을까요? 《아시아의 민중봉기》는 무엇을 밝히거나 다루거나 말하려는 책일까요? 한국을 비롯해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군사독재정권이 오랫동안 으르렁거리면서 사람들을 죽이고 괴롭혔다는 이야기를 왜 들려주려고 할까요?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미국 군수산업’ 이야기와 ‘나라마다 군대와 경찰이 저지른 학살과 강간’ 이야기를 왜 자료와 통계를 빌어서 자꾸 알려주려고 할까요?
소비주의가 욕망의 대륙을 에워싸고 대량살상무기가 아름다움의 토대를 파괴하는 시기에는 예술 자체의 자율적 논리가 구원이 될 수 있다 … 아방가르드 집단의 문제의식은 민중을 지도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에너지를 유지하고 상상력을 촉발하는 것이다. (611, 622쪽)
군부독재의 어리석음은 오직 그들의 야만성에 어울리며, 어떤 필요한 수단을 써서라도 권력을 유지하는 것이 이해타산인 ‘합리적’ 엘리트 행위자의 이익에만 어울린다 … 누가 백악관에 있든, 군사주의는 오랫동안 미국 외교정책과 경제발전의 중심이었고 확실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669, 701쪽)
군대가 있는 곳에 평화가 있던 적이란 없습니다. 먼 옛날에도 오늘날에도, 군대가 있는 곳에는 오직 전쟁과 학살과 침략과 파괴가 있을 뿐입니다. 군대가 있는 곳에는 언제나 독재권력이 있고, 독재권력을 무너뜨렸어도 ‘엘리트 선거권력’이 있습니다.
군대를 거느리는 독재권력은 사람들 앞에 환하게 드러나는 ‘야만’입니다. 독재권력을 뒤에서 이끄는 경제권력은 사람들 앞에 제대로 안 드러나는 ‘야만’입니다. 《아시아의 민중봉기》를 보면 맺음말 언저리에서 ‘민주적으로 통제되지 않는’ ‘기업권력’을 찬찬히 이야기합니다. 해마다 이윤을 더 늘리려고 하는 기업권력은 정치 틀거리나 사회 틀거리가 바뀌어도 늘 그 자리에 있습니다. 1980년대까지는 군사독재가 정치와 사회를 억누르는 곳에서 이윤을 늘린 기업권력이라면, 1980년대부터는 ‘엘리트 선거권력’이 정치권력을 거머쥐어 광고와 언론과 교육으로 소비주의를 퍼뜨리면서 이윤을 늘리는 기업권력이라고 할 만합니다.
가만히 따지면, 민중봉기는 독재권력은 무너뜨렸어도 기업권력은 무너뜨리지 못했습니다. 독재권력은 눈앞에 훤히 보이니, 이들이 저지르는 나쁜 짓은 곧 알아챕니다. 기업권력은 눈앞에 제대로 보이지 않기에, 이들이 저지르는 나쁜 짓을 알아채기는 퍽 어렵습니다.
인류의 귀중한 자원은 알프스와 피레네 산맥의 불필요한 터널, 덴마크와 스웨덴을 연결하는 거대한 다리, 프린스에드워드섬과 캐나다 본토를 잇는 고속도로, 보스턴의 도심 터널인 빅딕, 남아도는 월드컵경기장 등에 낭비되며, 끝없는 전쟁과 소모적 군비 지출은 말할 것도 없다. 이런 프로젝트들의 공통점은 한 줌의 거대 기업들에 대규모 이윤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여기에 문제의 핵심이 있다. 이 기업들은 민주적으로 통제되지 않는다. 그들은 이윤이 해마다 증가해야 한다는 한 가지 법칙에 따라 작동한다. (711쪽)
민중봉기는 틀림없이 ‘군사독재 권력’을 무너뜨렸습니다. 민중봉기가 일어났기에 바보스러운 군사독재가 얼마나 바보스러운가를 널리 알렸습니다. 군대와 경찰을 앞세우면 언제나 우리 모두를 괴롭히거나 짓누르는 모진 짓이 되는 줄 깨닫도록 했습니다.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에는 군대와 경찰이 아니라, 사랑과 꿈을 키우려는 수수한 사람들(민중)이 사이좋게 작은 마을을 이루어서 살아야 한다는 슬기를 가르칩니다.
다만, 민중봉기는 군사독재 권력을 무너뜨렸되, ‘기업권력’을 무너뜨리지 못했습니다. 군사독재가 사라진 나라마다 ‘경제 불평등’과 ‘경제 부자유’가 널리 퍼집니다. 사람들을 윽박지르거나 다그치거나 짓밟는 총칼이 눈앞에서 조금 걷히기는 했으되, 가난한 굴레라든지 비정규직 수렁은 나날이 커지기만 합니다.
소비사회는 바로 기업권력이 바라던 모습이라고 느낍니다. 민중봉기는 앞으로 ‘소비사회 기업권력’을 무너뜨리는 길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정치와 사회와 경제라는 틀거리를 모두 허물 수 있는 민중봉기로, 작은 사람들이 작은 마을에서 작은 보금자리를 작은 사랑으로 가꿀 수 있는 민중봉기로, 광고와 언론과 인터넷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삶을 짓는 민중봉기로, 이제부터 새롭게 한 발짝 내딛을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민중봉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4348.6.10.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인문책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