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남아, 여행 가자 수남아, 여행 가자 1
김길수 지음 / 겨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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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배움책 33



마음껏 노는 곳에서 함께 배우자

― 수남아, 여행 가자

 김길수 글

 겨리 펴냄, 2015.5.18.



  과자를 담은 상자는 종이가 두껍기 마련입니다. 이 종이상자(과자상자)는 잘 펴서 차곡차곡 그러모은 뒤 버릴 수 있고, 반반하게 잘 펴서 가위로 곱게 오린 뒤, 깨끗한 쪽에 그림을 그릴 수 있습니다. 종이상자 안쪽은 언제나 깨끗하기 마련이기에, 이곳에 그림을 그린 뒤 가위로 살살 오리면 멋진 종이인형이 태어납니다.


  종이인형은 문방구에 가서 살 수 있습니다. 다른 예술가나 전문가가 만든 종이인형을 돈을 들여서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종이는 우리 둘레에 얼마든지 있기 때문에, 스스로 바라는 만큼 종이를 모아서 곱게 그림을 그려 ‘온누리에 꼭 하나만 있는 종이인형’을 빚어서 놀 수 있습니다.



눈 내린 다음날 미술시간이다. 눈이 남아 있는 들판으로 봄을 찾아나선다. 오늘은 봄을 그리기로 했다 … 함께 걷는 산책길에, 함께 먹는 밥 한 끼에도, 사랑하는 사람들가 함께 바라보는 바다에도, 어디에나 작은 행복들이 놓여 있다 … 아이들에게 비싼 장난감을 사 줄 필요도, 특별한 과외를 시킬 필요도 없다. 자연은 그 자체가 최고의 놀이터이고 장난감이고 선생님이다 … 가르침은 배울 수 있는 기회와 장소를 마련해 주는 것이다. (15, 59, 66, 71쪽)



  김길수 님이 여섯 식구와 함께 누리는 삶을 담은 《수남아, 여행 가자》(겨리,2015)를 읽습니다. 김길수 님과 이녁 곁님은 아이를 넷 낳았고, 네 아이는 두 어버이와 함께 작은 버스를 타고 이 나라를 두루 돌아다닙니다. 이러고 나서 중국하고 몽골하고 러시아를 차근차근 둘러보기로 합니다.


  김길수 님과 이녁 곁님은 아이들을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이나 제도권학교에 보내지 않습니다. 두 어버이는 아이들을 집에서 함께 돌보고 같이 놀면서 지냅니다. 아이들이 배울 삶을 두 어버이가 몸소 보여주고, 아이들이 놀 마당을 두 어버이가 손수 가꾸어 베풉니다. 아이들이 나아갈 길을 두 어버이가 함께 걸어가고, 아이들이 꿈꾸면서 사랑할 숨결을 두 어버이가 같이 생각합니다.



꼭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들, 옷들을 사 모으느라 돈을 벌고 그것들을 짐으로 지고 사느라 힘들어했구나! 모두 나누어 주고 나니 움직이는 집에 가벼운 살림만 남았다 … 내 바람이 그러하듯 아이들에게도 여행을 통해 자유를 선물하고 싶다. 여행길에서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다양한 삶을 배우고 아름다운 자연에서 평화와 안식을 배우는 아이들이길 바란다 … 우리는 비를 찾아가기도 하고, 햇살이 비추는 곳으로 달리기도 하고, 장날을 찾아다니기도 하면서 제주도를 뱅글뱅글 돈다. (49, 53, 72쪽)



  아이하고 함께 있으면 어느 어버이라도 이 아이하고 무엇을 하면서 하루를 즐겁게 놀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오늘은 어버이로 이곳에 있을 테지만, 예전에 아이로 있으면서 무엇을 하고 놀았는가 하고 되새깁니다. 예전에 내가 아이로 지내면서 즐기던 놀이 가운데 오늘 이곳에서 내가 어버이로 있는 동안 아이한테 물려줄 만한 재미난 놀이가 있는지 돌아봅니다. 이러면서 아이가 즐기는 놀이를 가만히 지켜봅니다. 오늘 이곳에서 아이가 어떤 놀이를 하면서 신나게 뛰거나 달리는지를 살피고, 오늘 어버이인 나를 마주하는 아이가 어떤 놀이를 할 적에 활짝 웃거나 노래하는가를 헤아립니다.


  아이는 놀면서 배웁니다. 아이는 마음껏 놀면서 온몸을 구석구석 움직입니다. 아이는 기쁘게 놀면서 웃습니다. 아이는 홀가분하게 놀면서 생각을 키우고 더 재미나게 놀 길을 스스로 찾을 뿐 아니라, 언제 어디에서나 스스럼없이 놀 수 있을 만한 길을 걸어갑니다.


  그런데 여느 학교에서는 놀이를 가르치지 않고 공부만 시킵니다. 여느 학교에서는 아이가 마음껏 뛰놀거나 달리도록 이끌지 않고 시험공부만 시킵니다. 여느 학교에서는 ‘아이가 앞으로 누릴 놀이’가 아닌 ‘아이가 앞으로 붙잡아야 할 직업’을 고르도록 시킵니다.




자동차나 자전거를 타고 가야 하는 먼 길을 걷는다. 이렇게나 아름다운 풍경이 있다니! 시내를 벗어나 시골길로 들어서고부터는 어느 것 하나에도 눈을 뗄 수가 없다 … 날마다 다른 사람을 만나고 낯선 환경들과 낯선 말들을 만난다. 아이들은 다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래서인지 중국말을 아빠보다 더 많이 알아듣는다 … 사람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돈을 대가로 주고받기보다는 고맙고 행복한 웃음을 주고받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 여권을 잃어버리고도 즐길 건 다 즐긴다. 객잔 마당에서 해바라기씨나 까먹으며 놀고 있는 바보들! 그래, 너희들에게는 언제나 봄날만 있어라! (108, 111, 122, 137쪽)



  직업 훈련을 받는 일이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여덟 살이나 열 살 어린이가 벌써 ‘직업’을 떠올리면서 시험공부만 해야 한다면, 어린이로 보내야 하는 나날이 너무 괴로우리라 느낍니다. 싱그러우면서 푸른 나이라 하는 열다섯 살이나 열여덟 살에도 ‘어떤 직업을 골라서 돈을 벌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라든지 ‘시험성적에 맞추어 어떤 대학교에 가야 하는가’ 하는 생각에 옥죄여야 한다면, 싱그럽거나 푸른 나이를 누리는 보람이 없으리라 느낍니다.


  사람한테는 한 살인 나이도 한 번뿐이고, 다섯 살인 나이나 열 살인 나이도 한 번뿐입니다. 열다섯 살과 스무 살인 나이도 한 번뿐이요, 서른 살과 마흔 살인 나이도 한 번뿐입니다. 오직 한 번 찾아와서 흐르는 삶입니다.


  《수남아, 여행 가자》를 쓴 김길수 님이 이녁 곁님하고 네 아이를 이끌고 이 나라를 골골샅샅 누빈다든지, 적은 돈으로 이웃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는 마음을 생각해 봅니다. 아무래도 아이들한테 ‘오직 한 번 흐르는 아름다운 삶’을 누리도록 이끌고 싶은 마음이지 싶습니다. 그리고, 네 아이뿐 아니라 어버이인 두 사람으로서도 ‘오직 한 번 흐르는 사랑스러운 삶’을 언제나 기쁘게 누리고 싶은 마음이라고 봅니다.




아빠는 너희들에게 나무가 되어 주고 싶다. 놀이터가 되고, 그늘을 만들어 쉬게 하고, 늘 곁에서 지켜봐 주는 나무가 되고 싶다 … 수남이는 요즘 몽골 아이보다 더 몽골 아이같이 행동한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옷을 입지 않고 달리고 달린다. 낮잠을 자고 있던 송아지를 잡아 사냥놀이를 한다 … 바람의 언덕에서 민정이와 정수는 바람을 부르며 논다. 진실로 바람이 키워 준 아이들이다. 바람과 함께 자라는 아이들은 바람이 가는 길을 알게 되겠지! 파란 하늘이 아이들 마음에 담긴다. (154, 223, 224쪽)



  졸업장을 따는 곳에 다녀야만 학교를 다닌다고 할 수 있지 않습니다. 우리한테는 졸업장을 따는 학교도 있고, 졸업장이 없는 학교도 있습니다. 밥을 먹고 잠을 자는 보금자리도 배움터(학교)이며, 우리 보금자리가 깃든 마을도 배움터입니다. 우리가 늘 걸어다니는 길도 배움터요, 우리가 언제나 바라보는 하늘과 숲과 들도 배움터입니다.


  교사자격증이 있어서 교과서 지식을 알려줄 수 있는 사람만 교사이지 않습니다. 교사자격증이 없어도 밥짓기를 알려주고 옷짓기와 집짓기를 알려줄 수 있는 사람도 교사입니다. 바느질하고 뜨개질을 알려주는 사람도 교사요, 자전거를 잘 타도록 이끄는 사람도 교사입니다. 장작을 팰 줄 알거나 짐을 잘 짊어지는 사람도 교사입니다. 밭을 일구거나 논에서 피를 뽑는 일꾼도 교사이고, 기계를 다루거나 버스나 기차를 모는 일꾼도 교사예요.


  그러니, 아이들은 언제 어디에서나 배웁니다. 아이들은 모든 어른한테서 배웁니다. 아이들은 도시에서도 배우고, 시골에서도 배웁니다. 아이들은 숨을 쉴 적에도 배우고, 물을 마실 적에도 배웁니다. 우리는 어버이요 어른으로서 아이한테 무엇이든 다 가르칠 수 있습니다.


  굳이 스무 살부터 일자리를 찾아서 돈을 벌어야 하지 않습니다. 예순 살 언저리에 일을 그만두고 연금만 받아야 하지 않습니다. 서른 살이나 마흔 살에 일자리를 얻을 수 있고, 예순 살에 처음으로 일자리를 얻을 수 있습니다. 아무런 일자리가 없으나 시골에서 흙을 지으면서 모든 먹을거리를 손수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저마다 어버이요 어른으로서 아이와 함께 살아갈 적에는, 날마다 새로운 하루를 맞아들이는 기쁨을 사랑으로 누리도록 알려줄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강이 있으니 숲이 있고 숲이 있으니 물이 마르지 않고 흐른다 … 초원에 소나기가 지나가고 나면 언제나 무지개가 뜬다. 하나는 색이 옅기는 하지만 주로 쌍무지개다 … 누군가 보기에는 누추할지도 모르지만 우리에게는 아름답게만 보이는 파란 하늘 지붕을 이고 편안한 풀침대에 몸을 뉘이며 함께 걷는 길! 그 길이 학교라는 걸 알았다. (229, 231, 246쪽)



  《수남아, 여행 가자》를 쓴 어버이요 어른인 김길수 님은 자연학교를 꿈꿉니다. 아이들이 싱그럽게 마실 파란 바람이 흐르는 자연학교를 꿈꿉니다. 아이와 어른이 함께 뒹굴거나 뛰놀거나 일할 만한 푸른 들녘과 숲이 어우러진 자연학교를 꿈꿉니다. 숲에서 자라는 나무를 고맙게 베어서 집을 짓는 삶을 누립니다. 아이도 어른도 똑같이 맑은 마음이 되어서 밝은 사랑을 가꿀 수 있는 삶을 즐깁니다.


  마음껏 노는 곳에서 함께 배웁니다. 신나게 일하는 곳에서 함께 가르칩니다. 마음껏 노는 곳에서 함께 웃습니다. 신나게 일하는 곳에서 함께 노래합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사회 여느 제도권학교에서 ‘졸업장을 안 준다’면, 초등학교뿐 아니라 중·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졸업장을 안 준다’면 무척 재미있으리라 봅니다. 어느 학교에서도 졸업장이나 자격증을 주지 않고, 저마다 스스로 삶을 짓는 길을 슬기롭게 가르친다면, 아주 멋있고 아름다우리라 봅니다. 졸업장이나 자격증에 기대어 사람을 믿거나 일을 맡기지 말고, 우리 스스로 어떤 몸짓이나 마음결이나 생각으로 일을 하는가를 살필 수 있을 때에, 자유롭고 평화로우며 평등한 사회가 이루어지리라 봅니다.


  자연학교에는 입학식이나 졸업식이 없습니다. 자연학교에서는 졸업장이나 자격증이나 상장을 주고받지 않습니다. 자연학교에서는 오직 사랑을 주고받습니다. 자연학교에서는 오로지 이야기를 나눕니다. 모든 학교가 자연학교가 되고, 사랑학교가 되며, 꿈학교가 될 수 있는 날을 가만히 그려 봅니다. 놀이학교와 이야기학교와 노래학교가 온누리에 피어날 수 있는 날을 즐겁게 그려 봅니다. 4348.6.8.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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