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교실 10
마츠이 유세이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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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520



‘암살 수업’을 빗대어 ‘사회 비판’을?

― 암살교실 10

 마츠이 유세이 글·그림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4.10.25.



  마츠이 유세이 님 만화책 《암살교실》(학산문화사,2014) 열째 권을 읽습니다. 그러고 나서 이 만화를 더 읽지 않기로 합니다. 나로서는 이 만화에서 재미나 즐거움이나 보람을 느낄 수 없기 때문에 열째 권에서 멈춥니다. 어떻게 하면 ‘사람을 더 잘 죽일’ 수 있는가를 놓고 권수가 늘어나는 만화책은 아이한테도 보여줄 만하지 않고, 어른으로서도 재미나게 볼 만하지 못하다고 느낍니다.


  다만, 아무리 ‘사람 죽이는 이야기’를 그리는 만화라고 하더라도, 이 만화를 보면서 ‘나도 저렇게 내 몸을 갈고닦아서 멋진 암살범이 되어야지!’ 하고 생각할 어린이나 젊은이가 나오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니, 어쩌면 나올 수도 있겠지요.



- “대단하네, 카야노. 달걀파동 뉴스를 보고 1주일 만에 이걸 다 고안하고 수배한 거야?” “응, 사실은 전부터 만들어 보고 싶었거든.” (17쪽)

- “안 돼! 애정을 담아서 만든 푸딩을 폭파할 수는 없어!” “아니, 진정해, 카야노!” “야, 푸딩 만들다가 정들었냐, 카야노? 어차피 날려 버리려고 만든 거잖아!” “싫어!” (24쪽)



  어느 모로 본다면, 만화책 《암살교실》은 사회를 에둘러 나무라는 이야기를 담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92쪽에 나오는 ‘비겁한 방법만 쓰는 게 어른’이라고 하는 말이 바로 ‘사회 비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고등학교에서 ‘암살 수업’을 한다는 일이 사회 비판이기도 할 테고, 지구별에 떨어진 무시무시한 외계전투족을 고등학교 아이들더러 ‘죽이라’고 시키면서 ‘돈은 있는 대로 다 대어 주겠노라’ 떠넘기는 어른을 보여주는 모습이 사회 비판이라고 할 테지요.


  뜻이 없는 책은 없습니다. 뜻이 없이 그리는 만화는 없습니다. 살곶이만 보여주는 만화를 그리든, 치고 박으며 다투는 모습만 보여주는 만화를 그리든, 서로 죽이고 죽는 모습만 가득 채우는 만화를 그리든, 모두 ‘만화’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만화를 즐기는 사람은 이들대로 즐겁게 이 만화를 보면 됩니다. 이러한 만화를 안 즐기는 사람은 이들대로 안 보면 될 테지요.



- “이걸 할 수 있으면, 어떤 장소도 암살이 가능한 필드로 만들 수 있다.” (31쪽)

- “언제나 비겁한 방법만 써서.” “그런 게 어른이거든.” (92쪽)

- “이토나 군, 선생님도 학습을 한답니다. 선생님이 하루하루 성장하지 않고, 어떻게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겠어요?” (98쪽)



  교사도 학생도 배우는 사람입니다. 안 배우는 사람은 없습니다. 배우지 않는 교사는 학생을 가르칠 수 없습니다. 이와 맞물리는 이야기가 될 텐데, 교사를 가르치지 못하는 학생은 배울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만화책 《암살교실》은 그저 ‘암살’을 이야깃감으로 삼아서, 무언가 서로 가르치거나 배우는 얼거리를 들려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 아이들은 무엇을 배울까요? 만화책에 나오는 아이들은 무엇을 배우는가요? 암살 솜씨를 배우는 아이들은 ‘어른이 되’면 앞으로 무슨 일을 할까요? 군인이 될까요? 군인이 되면 ‘평화를 지키는’ 일을 할 수 있는가요?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길은 배운 적이 없이 ‘서로 죽이고 때리고 미워하고 괴롭히는 짓’만 배운 아이들이 ‘어른이 된 뒤에 참으로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평화로운 길’을 걸어갈 수 있을까요?



- “한두 번 졌다고 뭘 비뜰어지고 난리냐? 언젠가 이기면 되는 거잖아! 문어잡이도 그렇지. 꼭 지금 죽여야 맛이냐? 100번 실패하면 어때. 3월까지 딱 한 번만 죽이면, 그럼 우리가 이기는 건데.” (161∼162쪽)



  가시내 옷을 벗겨서 알몸 사진을 찍고는 이를 예술이라고 이름 붙이는 사내가 꽤 많습니다. 일본에서는 가시내와 사내한테 살곶이를 시키고는 이를 사진으로도 찍어서 책을 어마어마하게 찍습니다. 이런 책은 무척 잘 팔린다고 합니다.


  영화나 만화에서도 전쟁을 참으로 자주 다루고, 이런 영화나 만화는 참으로 잘 팔리거나 읽힙니다. 아무래도 사람이라고 하는 목숨붙이는 싸움이나 바보짓을 일삼을 때에 ‘사는 보람’을 느끼는 듯합니다.


  그러면, ‘암살’을 배우고 가르치면서 무엇이 남을까요? 암살 아닌 시험공부를 가르쳐서 대학교에 잘 붙도록 하면 무엇이 남을까요? ‘암살교실’인 학교도 바보스럽지만, ‘입시지옥’인 학교도 바보스럽습니다. 요즈음 교육부에서는 초등학교 교과서에 한자를 함께 쓴다고 하면서 돈을 엄청나게 쓰려고 합니다. 이런 모습도 참으로 바보짓입니다.


  평화로 가는 길이 아니라, 전쟁으로 가는 길은 언제나 어리석습니다. 어리석은 길을 가면서 배우지 못한다면 그야말로 어리숙합니다. 어리숙한 채 하루하루 보내다가 죽는다면 그야말로 바보스럽습니다.


  ‘암살교실’ 아이들은 어떻게 ‘외계전투족’을 무찌르거나 죽일 수 있을까요? 길은 아주 쉽습니다. 마음으로 ‘너 죽어라’ 하고 외치면 됩니다. 온마음을 기울여서 ‘너 죽어라’ 하고 외치면 됩니다. 그뿐입니다. 어떤 무기나 솜씨를 쓰든 아무도 못 죽입니다. 죽이는 시늉만 할 뿐입니다. 총칼로 독재권력을 으르렁거린다 하더라도 사람들을 짓밟을 수 없습니다. 짓밟힌 사람들은 끝끝내 일어서서 모든 독재권력을 몰아내고야 맙니다.


  착한 마음과 참다운 슬기와 고운 사랑을 가르치면 모든 ‘암살’과 ‘전쟁’은 가뭇없이 사라집니다. 이를 가르치지 못하면, 늘 죽이고 죽는 쳇바퀴에 갇혀서 맴돌이만 하겠지요. 지구별에 암살이든 전쟁이든 독재이든 그치지 않는 까닭은, 집에서나 마을에서나 학교에서나 사회에서나 ‘착한 마음’도 ‘참다운 슬기’도 ‘고운 사랑’도 안 가르치기 때문이요, 이를 가르치려고 하는 사람을 모조리 억누르기 때문이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4348.6.2.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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