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살이 일기 96] 우리는 마을 빨래터에서 논다

― 새 여름에 즐거운 물놀이터



  마을 빨래터를 쓰는 분이 없으나, 마을 할매는 그동안 이 빨래터에 낀 물이끼를 으레 치우셨습니다. 마을 할매는 집안일이랑 들일을 모두 건사하면서 빨래터까지 치워야 했으니 여러모로 힘드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 식구가 이 마을에 들어오기 앞서까지 마을 할매는 한겨울에도 마을 빨래터에 낀 물이끼를 걷으셔야 했어요.


  빨래터 물이끼는 한겨울에도 낍니다. 겨울에는 여름보다 천천히 끼지만, 겨울에도 물은 흐르고, 맑은 물에는 온갖 목숨붙이가 깃들기에, 물이끼도 조금씩 낍니다. 빨래터가 아닌 여느 냇물이라면 물이끼가 끼지 않았으리라 느껴요. 여느 냇물에서는 물고기와 다슬기가 바지런히 물이끼를 훑어서 먹었을 테니까요.


  빨래터를 치우다 보면 미꾸라지나 민물새우를 봅니다. 다슬기는 미리 주워서 그릇에 옮깁니다. 미꾸라지나 민물새우도 그릇에 옮긴 다음, 빨래터를 다 치우고 아이들하고 다 논 다음 물에 도로 풀어놓습니다.


  한겨울에는 한 달에 한 번씩 빨래터를 치웁니다. 겨울이 저물어 봄이 되면 보름에 한 번씩 빨래터를 치웁니다. 그리고 봄에서 여름으로 접어들면 열흘마다 빨래터를 치우고, 틈틈이 빨래터에 가서 물놀이를 누립니다. 자전거를 몰거나 걸어서 골짜기로도 마실을 가지만, 마을 어귀로 걸어가기만 하면 멋진 물놀이터가 있어요.


  우리 집 아이들은 아직 몸이 작고 아귀힘이 여리니, 물이끼 걷는 일을 크게 거들지 못합니다. 그래도 옆에서 막대솔질을 지켜보니까, 한 해 두 해 몸이 자라는 동안 어깨너머로 솔질을 익힐 테고, 머잖아 아버지하고 함께 씩씩하게 물이끼를 걷으리라 생각합니다.


  빨래터에 갈 적에는 ‘갈아입을 옷’하고 ‘마른천’을 챙깁니다. 어른인 나는 옷을 따로 챙기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옷을 입은 채 놀고, 나는 웃옷을 벗고 빨래터 바닥에서 뒹굽니다. 물이끼를 모두 걷어낸 빨래터 바닥에 드러누워서 새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면, 빨래터 바닥에서 흐르는 물소리가 싱그러운 노랫소리로 스며들고, 바람이 흐르는 소리하고 나뭇잎이 살랑이는 소리에다가 들새랑 멧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골고루 어우러져서 온몸으로 스며듭니다.


  우리한테는 어느 곳이든 놀이터입니다. 들판이나 밭둑도 놀이터요, 숲이나 골짜기도 놀이터입니다. 마당이나 뒤꼍도 놀이터이고, 빨래터와 샘터도 놀이터예요. 즐겁게 웃고 뛰놀 수 있기에 놀이터입니다. 마을 빨래터는 겨울에는 물이 따스하게 흐르고 여름에는 물이 시원하게 흘러서 더없이 멋진 놀이터입니다. 왁자지껄하게 떠들면서 물이끼를 다 걷고 참방참방 물놀이를 하면, 어느새 이 소리를 듣고 마을 할매가 빨래터 둘레로 모여서 “고마워서 으쩐다.” “치운데(추운데) 옷 적시지 말아.” “예가 아들(아이들)한테 놀기 좋지.” “오매 저 이쁜 것 좀 봐.” 같은 이야기를 도란도란 들려줍니다. 4348.5.29.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삶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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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29 09: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숲노래 2015-05-29 12:25   좋아요 0 | URL
네, 말씀 고맙습니다.
곧 편지를 띄우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