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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모자 꼬마 눈사람 ㅣ 꼬꼬마 도서관 3
오시마 다에코 지음, 육은숙 옮김 / 학은미디어(구 학원미디어) / 2006년 5월
평점 :
품절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34
숲동무 눈사람하고 놀자
― 빨간 모자 꼬마 눈사람
오시마 다에코 글
가와카미 다카코 그림
육은숙 옮김
학은미디어 펴냄, 2006.5.5.
드넓게 우거진 숲이 아름답습니다. 조그맣더라도 사뿐사뿐 거닐면서 그윽하며 짙푸른 풀내음을 맡을 수 있는 숲이 사랑스럽습니다. 숲에서 자라는 나무는 우리 몸을 살찌우는 푸른 바람을 베풉니다. 숲에서 돋는 작은 풀과 여린 꽃은 우리 마음을 북돋우는 맑은 숨결을 베풉니다.
풀 한 포기는 나물이 되니 풀밥입니다. 풀잎과 나뭇잎이 내뿜는 바람은 큼큼 들이켜면서 싱그러운 숨결로 거듭나니 바람밥입니다. 숨을 쉬며 목숨을 잇는 사람인 만큼, 다른 무엇보다도 우리 보금자리는 숲에 깃들어야 아름다우리라 느낍니다. 시골도 도시도 모두 숲으로 둘러싸인 삶터일 때에 사랑스러우리라 생각합니다.
.. 눈은 점심때가 지나서야 그쳤어요. 단비와 피피는 좋아라 하고 집 뒤 숲으로 달려갔어요. 엄마가 걱정스런 얼굴로 소리치셨어요. “조금만 놀다 와야 한다!” .. (5쪽)
오시마 다에코 님이 글을 쓰고, 가와카미 다카코 님이 그림을 그린 《빨간 모자 꼬마 눈사람》(학은미디어,2006)을 읽습니다. 이 그림책은 한겨울에 눈이 소복히 내린 날, 아이가 혼자 숲으로 가서 눈놀이를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아이는 대여섯 살이나 예닐곱 살 즈음이라고 할 만한데, 동무가 곁에 없어도 혼자 씩씩하게 놉니다. 어머니나 아버지가 함께 따라가지 않아도 그야말로 홀로 야무지게 놉니다.
그림책이라 하지만, 아이는 숲에 거침없이 들어갑니다. 못 갈 일이란 없겠지요. 숲에 무섭거나 두려운 것이 있을 까닭이 없으니까요. 숲은 그저 숲일 뿐, 사람한테 무섭거나 두려운 대목은 없습니다.
영화라든지 책이라든지 방송에서는 ‘사람 없는 숲’에서 괴물이 나온다거나 도깨비가 튀어나온다거나 하고 말하기 일쑤입니다. 그러나, 숲에는 괴물이 없습니다. 도깨비가 있다 하더라도 사람을 괴롭히거나 못살게 굴지 않습니다. 숲에는 그저 숲동무가 있고 숲님이 있습니다.
.. 이번에는 손바닥에 올려놓을 수 있는 작은 눈사람을 만들었어요. 눈은 새알 초콜릿, 입은 작은 나뭇가지! 피피가 빨간 꽃을 물고 왔어요. “눈사람 머리에 씌워 줘. 멍 멍!” .. (11쪽)
그림책 《빨간 모자 꼬마 눈사람》에 나오는 아이는 제 작은 손을 놀려서 조그마한 눈사람을 빚습니다. 아이 손을 거쳐서 새로운 몸을 얻은 ‘꼬마 눈사람’은 이윽고 기지개를 켜면서 깨어납니다. ‘숲아이’가 ‘눈아이’를 깨웠으니까요.
눈사람을 빚은 숲아이는 놀라지 않습니다. 눈아이가 팔이랑 다리도 빚어 달라고 하니, 선선히 팔이랑 다리도 빚어서 붙여 줍니다. 숲아이는 눈아이하고 함께 놉니다. 눈밭에서 함께 썰매를 달리고, 눈으로 과자를 잔뜩 빚어 주어서 눈아이하고 샛밥을 먹습니다.
.. 꼬마 눈사람이 말했어요. “나한테 팔이랑 다리를 만들어 줘! 나도 달리고 싶어.” 단비는 눈으로 튼튼한 팔과 다리를 만들어 주었어요. “이제 됐니?” .. (18쪽)
아무리 어린 꼬마라 하더라도 밥을 빚을 수 있습니다. 여느 어른들처럼 불을 써서 밥을 끓이거나 빵을 굽지는 못하지만, 아이들은 ‘꿈으로 짓는’ 밥을 늘 마련합니다. 여느 눈으로는 ‘아이가 지은 밥’을 알아볼 수 없지만, 마음을 열고 바라보면 ‘아이가 멋지게 지은 밥’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여느 눈으로는 빈손만 보일 터이나, 마음을 열고 바라볼 적에는 두 손 가득 넘치는 ‘맛난 밥’을 알아보면서 냠냠짭짭 고맙게 나누어 먹습니다.
아이들은 소꿉놀이를 하면서 배불러요. 마음이 부릅니다. 마음이 넉넉합니다. 기쁘게 놀면서 기쁨을 스스로 지어서 먹고, 웃으면서 노래하는 동안 웃음과 노래를 마음밥으로 잔뜩 먹어요.
아침부터 저녁까지 실컷 논 아이는 ‘놀이밥’이랑 ‘마음밥’을 넉넉히 먹었기에 별이 돋는 밤에 깊이 잠듭니다. 아침부터 저녁 사이에 제대로 놀지 못한 아이는 놀이밥도 마음밥도 제대로 못 먹은 탓에 자꾸 미적거리거나 칭얼거리면서 ‘놀고 싶다’고 투정을 부리기 마련입니다.
.. 그날 밤, 단비는 잠자리에 들기 전에 창 밖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어요. 하늘 가득 별이 반짝거리고 있었어요. ‘지금 꼬마 눈사람은 뭐 하고 있을까? 내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함께 놀아야지.’ .. (29쪽)
그림책에 나오는 숲아이처럼, 이 땅 모든 아이들이 숲살이를 누려서, 집 둘레에 있는 아름드리 숲에서 숲놀이를 즐길 수 있으면 참으로 아름다웁겠다고 생각합니다. 겨울에는 눈밭에서 구르고, 여름에는 풀밭에서 구릅니다. 가을에는 풀열매랑 나무열매를 즐기고, 봄에는 풀꽃이랑 나무꽃을 즐깁니다.
아이들은 한 해 내내 놀면서 자랍니다. 아이들은 하루 내내 놀면서 큽니다. 숲이 바로 배움터입니다. 들이 바로 배움자리입니다. 냇물과 바다가 바로 배움마당입니다. 하늘과 흙과 풀과 나무가 모두 배움벗입니다. 바람은 언제나 배움노래가 되어 곱게 흐릅니다. 하늘숨을 마시는 아이는 ‘하늘아이’가 되어 너르고 씩씩한 마음으로 자랍니다. 하늘숨을 마실 수 있는 어른이라면, 누구나 ‘하늘어른(하늘사람)’이 되어 너르면서 착한 마음을 가꿀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4348.5.23.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