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용을 모는 놈들은 말이지
오늘 하루 곁님이랑 두 아이랑 바다마실을 다녀왔다. 면소재지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시골버스를 기다리는데, 시골버스가 서는 자리 바로 옆에 어떤 분이 자가용을 세웠다. 이곳에 있는 면소재지 마트에 들러서 뭔가를 사려는 사람이다. 그런데 말이지, 이 ‘시골버스 서는 곳’이면서 마트 건너편인 자리에는 주차장이 있다. 예전에 은행이 있던 자리이기도 해서 주차장이 제법 넓다. 주차장에 차를 댈 자리가 비었다. 널널하다. 그런데, ‘마트에 물건을 사려는 사람’은 자동차를 엉성하게 길가에 댄다. 시골버스가 서야 할 자리에 댄다. 3분쯤 뒤에 버스가 들어올 텐데, 이 사람은 ‘제 볼일을 곧 마치고 돌아올 생각’인 듯하다.
버스를 타는 자리 코앞에다가 자가용을 세우니, 버스가 오나 안 오나 살피는 내 눈길이 막힌다. 자가용을 아무 데에나 세우는 사람은 이런 대목을 알 길이 없겠지. 자가용으로 다니니까 버스가 어디로 다니는지, 버스가 언제 드나드는지, 버스를 타려고 기다리는 사람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살피지 못하리라.
‘자가용을 모는 놈들이 바라보는 눈길’로 한 번 생각을 해 본다. 버스를 기다리는 김이기도 하고, 이놈은 왜 여기에 자동차를 세웠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기도 했다. 아니, 이 자동차는 무슨 일로 내 눈길을 가로막으면서 저 자리에 섰을까 싶기도 했다.
곰곰이 헤아려 보니, ‘자가용을 모는 놈’이란 여러모로 눈이 좁구나 하고 새삼스레 느낀다. 자동차로 달릴 길을 보느라 다른 것을 살필 틈이 없다. 자동차를 세울 자리를 보느라 둘레에 어떤 사람이 무엇을 하는지 알거나 돌아볼 틈이 없다. 그래서, 이 사람을 탓하거나 나무랄 일이 없이 이 사람은 이러한 삶이로구나 하고 문득 깨닫는다. 보는 대로 보고, 느끼는 대로 느낀다. 보는 대로 살고, 느끼는 대로 생각한다. 그런데 ‘좁은 눈길’이란 또 뭘까? 자동차를 모는 ‘놈’이 좁은 눈길이라면, 얼마나 좁은 셈이고, 삶이나 눈길이나 마음을 놓고 뭐가 좁다고 할 만할까? 이 자동차를 보면서 ‘저놈!’ 하고 여기는 내 마음이나 생각이나 눈길이야말로 좁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왜 그러한가 하면, 나만 이렇게 자동차를 볼 뿐, 곁님이나 아이들은 자동차를 보지 않는다. 세 사람은 길바닥에 나란히 앉아서 과자를 냠냠 맛있게 먹으면서 웃고 논다. 이 자동차를 아랑곳할 까닭이 없다. 곁님이랑 아이들이 과자를 집어먹으면서 놀듯이, 나 스스로 즐기거나 누릴 삶을 스스럼없이 즐기고 멋지게 누리면 된다. 자동차야 저 알아서 여기에 섰다가 저기로 떠나지 않겠는가.
다시 헤아리자면, 자동자(자가용)를 모는 사람은 놈도 님도 아니다. 자동차를 문득 본 사람은 님도 놈도 아니다. 나는 버스가 들어올 때를 놓치지 않으려고 살펴보다가 자동차가 내 눈길을 가렸기에 ‘저 녀석 뭔데 내 눈앞을 가리지?’ 하고 느꼈을 뿐이고, 이 자동차는 버스가 들어오기 앞서 아주 말끔히 사라져 주었다.
재미있다. 재미있네. 이리하여, 나는 곁님이랑 두 아이랑 노래하는 마음으로 버스에 올랐다. 기쁘게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몸이 아주 지쳐서 저녁도 안 차리고 만두를 구워서 저녁으로 삼아 신나게 먹는다. 영화를 함께 보고 나란히 곯아떨어졌다. 4348.5.16.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삶과 책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