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량한 말 바로잡기
(1683) 일전
레이는 일전에 진시황에 대한 기록을 읽다가 꽂아 놓은 책갈피를 빼내려고 일기장을 펼쳤다
《카롤린 필립스/유혜자 옮김-황허에 떨어진 꽃잎》(뜨인돌,2008) 74쪽
일전에 읽다가
→ 예전에 읽다가
→ 지난번에 읽다가
→ 얼마 앞서 읽다가
…
한국말사전에서 ‘일전’이라는 낱말을 찾아보면 다섯 가지가 나오며, 모두 한자말입니다. 이 가운데 ‘一戰’은 “한바탕 싸움”을 뜻한다고 하는데, ‘싸움’으로 고쳐쓰면 됩니다.
최후의 일전 → 마지막 싸움
일전을 불사하다 → 싸움을 무릅쓰다
적과 일전을 벌이다 → 적과 한바탕 싸우다
‘一錢’이라는 한자말은 ‘한푼’으로 고쳐쓰면 됩니다. “일전도 가진 게 없다”는 “한 푼도 가지 않았다”나 “돈이 한 푼도 없다”로 고쳐씁니다. 그런데, “돈은 일전 한 푼 없는 데다”는 겹말입니다. ‘일전’이라는 한자말이 ‘한 푼’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돈은 한 푼도 없는 데다”로 바로잡아야 합니다.
‘一轉’이라는 한자말은 “한 바퀴 돎”으로 바로잡으면 됩니다. “지구의 일전”이 아닌 “지구가 한 바퀴 돎”으로 바로잡을 노릇입니다. “사고의 일전”이나 “심기의 일전”이나 “사태의 일전을 기대하다”는 모두 일본 말투로구나 싶습니다. 토씨 ‘-의’를 사이에 넣는 이 같은 말투는 한국사람 말투가 아닙니다. “생각을 다잡음”이나 “마음을 다잡음”이나 “일이 다잡히기를 바라다”로 고쳐씁니다.
일전에 제가 말씀드린 → 예전에 제가 말씀드린
일전과 사뭇 달라졌다 → 예전과 사뭇 달라졌다
일전에 사람을 만나기 위해 → 예전에 사람을 만나려고
‘日前’이라는 한자말은 “며칠 전”을 뜻한다고 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한국말로 “며칠 앞서”를 쓰면 됩니다. 그리고, “며칠 앞서”를 가리키는 ‘예전’이라는 한국말이 있어요.
한국말사전에는 ‘逸典’ 같은 한자말도 나오지만, 이 한자말을 쓸 일이란 없습니다. ‘일전’이라는 낱말을 찬찬히 살피면, 다섯 가지 가운데 어느 한 가지도 한국사람이 쓸 만하지 않습니다. 굳이 한자를 빌어 이런 낱말까지 써야 할 까닭이 없다고 할 만합니다. 4348.5.15.쇠.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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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는 예전에 진시황을 다룬 글을 읽다가 꽂아 놓은 책갈피를 빼내려고 일기장을 펼쳤다
“진시황에 대(對)한 기록(記錄)”은 “진시황을 다룬 글”이나 “진시황과 얽힌 글”이나 “진시황 이야기”로 손봅니다.
일전(一戰) : 한바탕 싸움
- 최후의 일전 / 일전을 불사하다 / 적과 일전을 벌이다
일전(一錢) : 약간의 돈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일전도 가진 게 없다 / 돈은 일전 한 푼 없는 데다
일전(一轉)
1. 한 바퀴 돎
- 지구의 일전
2. 마음이나 사태가 아주 달라짐. 또는 마음을 새로이 먹거나 다짐
- 사고의 일전 / 심기의 일전 / 사태의 일전을 기대하다
일전(日前) : 며칠 전
- 일전에 제가 말씀드린 / 저 사람은 일전과 사뭇 달라졌다 /
일전에 사람을 만나기 위해
일전(逸典) : 흩어져 일부가 빠져 없어진 서적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