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한테 왜 책을 읽힐 수밖에 없는가



  오늘날에는 수많은 여느 어버이가 이녁 아이한테 책을 읽힐 수밖에 없습니다. 고전명작이라는 동화나 동시를 읽힐 수밖에 없습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이야기(옛이야기·전래동화)도 책으로 읽힐 수밖에 없습니다. 왜 그러할까요? 오늘날에는 여느 어버이가 이녁 아이와 만날 겨를이 매우 적고, 아이와 오순도순 이야기꽃을 피울 틈도 아주 적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는 거의 모든 아이들이 아주 어린 나이부터 보육원과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다닙니다. 이런 시설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보내기 일쑤인데, 이런 시설에서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와도 어머니랑 아버지하고 말을 섞기가 참 어렵습니다. 아이들은 집에서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이나 게임 아니고는 할 만한 ‘놀이’가 없습니다. 게다가 집에서 어머니나 아버지가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습니다.


  집에서 놀이와 이야기를 물려받지 못한 채 초등학교에 들어가야 하는 아이들입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날부터 아이들은 시험공부를 해야 합니다. 초등학교에서는 이럭저럭 고전명작이라든지 옛이야기라든지 어린이문학이라든지 이것저것 몇 가지 책을 받아서 ‘독후감 쓰기 숙제’를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중학교에 들어갈 때를 앞두면 입시공부 틀로 바뀌지요. 오로지 대학교바라기만 해야 합니다.


  이 얼거리를 제대로 살필 줄 아는 어버이라면, 아이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제대로 깨달으리라 생각합니다. 어버이는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어야 합니다. 어버이는 아이한테 끝없이 말을 걸고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합니다. 어버이는 아이하고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워야 합니다.


  아이는 어버이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받아먹으면서 마음을 살찌웁니다. 아이는 어버이가 하는 일을 지켜보면서 제 꿈을 키웁니다.


  그러니까, 오늘날에는 수많은 여느 어버이가 회사원이나 공무원이나 공장 노동자로 일하면서 ‘아이한테 보여줄 수 있는 삶’이 없습니다. 게다가 ‘아이한테 들려줄 수 있는 말과 이야기’가 없습니다. 오늘날 아이들은 제 어버이한테 ‘말(한국말)’조차 물려받지 못합니다. 말조차 물려받지 못하니, 아이들은 교과서와 인터넷과 동화책에 떠도는 ‘틀에 박힌 표준 서울말’만 받아들이는데, 책과 사회와 교과서와 인터넷에 떠도는 말은 ‘슬기롭거나 사랑스러운 한국말’이 아니기 일쑤입니다.


  오늘날 아이들은 이야기밥을 제 보금자리에서 어버이한테 물려받지 못하기 때문에, 스스로 여러 가지 책이라도 살펴서 먹어야 합니다. 어쩔 수 없는 노릇입니다. 그러니까, 아이들이 어버이한테서 이야기밥을 받아먹을 수 있다면, 책은 굳이 많이 안 읽어도 되고, 때로는 아무 책조차 안 읽어도 됩니다. 아이와 어버이 모두한테 가장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책은 언제나 하나입니다. 바로 ‘삶’이라는 책, ‘삶책’이요, 이 삶책은 ‘말로 빚는 이야기’로 이루어집니다. 4348.5.6.물.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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