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넋·삶 56 타오르는 눈
언덕길을 타고 오르니 어느새 고갯마루에 닿습니다. 오르느냐 마느냐 하는 생각을 하지 않고, 내 길을 가는구나 하고 여기면서 내 발바닥과 몸뚱이에 가벼운 마음을 싣고 걸으니, 나는 어느새 고갯마루를 올라 타고 서서 멧봉우리를 둘러싼 구름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새는 늘 스스로 날갯짓을 하면서 하늘로 날아오릅니다. 그런데 하늘로 날아오를 적에 새는 으레 바람을 살짝 타고 오릅니다. 스스로 날갯짓을 하기에 바람을 가볍게 탈 수 있고, 어느 만큼 날갯짓에 힘이 붙어 높디높이 치솟으면, 이제는 높은 하늘에서 새로운 바람을 다시금 타고는 날개를 곧게 폅니다. 첫 날갯짓은 가벼우면서 기운찬 날갯짓이라면, 새로운 날갯짓은 온몸에 힘을 모두 뺀 뒤 바람한테 그대로 맡기는 홀가분한 날갯짓입니다.
불길이 오릅니다. 불길이 타고 오릅니다. 불길은 바람을 먹고 풀과 나무를 먹으면서 타고 오릅니다. 불길은 옆으로 번지는 듯하면서도 늘 하늘을 바라보면서 치솟습니다. 어느 만큼 위로 솟구칠 수 있을까 하고 꿈을 꾸면서 불길이 타오릅니다.
눈이 이글이글 타오릅니다. 내 눈에서 뜨거운 기운이 활활 타오릅니다. 내 눈은 무엇을 볼까요? 설렘을 볼까요, 두려움을 볼까요, 새로움을 볼까요, 미움을 볼까요? 부딪히려고 하는 울타리를 볼까요, 뛰어넘으려는 담을 볼까요?
나는 타올라야 합니다. 먼저, 바람을 타고 올라야 합니다. 바람을 타지 않고서야 어디로도 가지 못합니다. 다음으로, 불길을 타고 올라야 합니다. 내 몸속에서 뜨거운 기운이 치솟도록 불을 지펴야 합니다. 나는 ‘바람으로 타오르’고 ‘불로 타오르’는 숨결이 되어, 비로소 이 몸을 움직이는 새로운 마음이 됩니다.
나는 네 기운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나는 이 지구별 곳곳에서 기운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나는 너른 별누리에서 기운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냇물과 바닷물에서 기운을 받아들일 수 있고, 하늘과 구름과 무지개에서 기운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온 기운을 받아들여 새롭게 태어납니다. 온 기운을 맞아들여 바람을 타고 불길을 탑니다. 바람과 불길이 하나로 되어 새로운 몸으로 타오릅니다.
내 숨결은 바람이요 불길인 마음에 씨앗을 심고 천천히 눈을 뜹니다. 온것(모든 것)을 볼 수 있는 ‘온눈’으로 거듭납니다. 온것을 보는 온눈이 될 때에, 온몸에서 온힘이 솟고, 팔과 다리와 가슴과 머리에 온불이 켜집니다.
넋은 바람처럼 가벼우면서 기운차고, 넋은 불길처럼 뜨거우면서 따뜻합니다. 타오르는 넋은 ‘바람불’입니다. 바람불은 이곳에 새싹이 터서 자라도록 흙을 어루만지고, 바람불은 이곳에 숲이 이루어지도록 나무를 쓰다듬으며, 바람불은 이곳에 보금자리가 열리도록 사람을 보살핍니다.
타오릅니다. 내가 스스로 타오릅니다. 바람씨를 심어 높이 타오르고, 불씨를 심어 깊이 타오릅니다. 내 숨결은 바람씨와 불씨를 함께 품에 안으면서 타오릅니다. 가없는 곳에 끝없이 가려고 천천히, 그렇지만 빠르게 타오릅니다. 뜨겁게 타오르다가 따뜻하게 타오르고, 시원하게 타오르다가 넉넉하게 타오릅니다. 땅바닥에 살포시 내려앉는 나뭇잎처럼 가만히, 이러면서도 씩씩한 소리를 내면서 타오릅니다. 4348.3.9.달.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람타 공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