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랑 놀자 125] 볍씨



  민들레씨가 동그스름하게 맺힙니다. 우리 집 아이들은 “민들레 씨앗이다!” 하고 외치면서 꽃대를 톡 꺾은 뒤 후후 불어서 씨앗을 날립니다. 아이들과 여러 가지 열매를 먹으면서, 으레 씨를 뱉습니다. 감을 먹을 적에는 감씨를 뱉고, 수박을 먹을 적에는 수박씨를 맺습니다. 포도를 먹을 적에는 포도씨를 뱉습니다. 오이씨나 참외씨는 그냥 먹습니다. 우리는 쌀밥을 먹는데, 쌀밥은 쌀알로 짓고, 쌀알은 벼알에서 겨를 벗긴 속살입니다. 벼알은 봄에 논에 심어서 새로운 벼알을 거두도록 하는 씨앗이기도 합니다. 이리하여, 벼알은 따로 ‘볍씨’라고도 합니다. 예부터 얼마 앞서까지 시골사람은 볍씨를 씨오쟁이에 갈무리해서 잘 건사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 들어 볍씨를 손수 갈무리해서 되심는 사람은 퍽 드뭅니다. 거의 다 농협에 가서 돈을 주고 사다가 씁니다. 농협에서는 ‘볍씨’라는 낱말을 안 쓰고 ‘벼 종자(種子)’라는 낱말을 씁니다. 그나마 ‘米種子’라고는 안 하지만, 농협 일꾼은 ‘씨·씨앗’이라는 낱말을 도무지 안 씁니다. 이리하여, 요새는 여느 시골마을 시골사람도 ‘볍씨’라는 낱말을 안 쓰고, 농협 일꾼 말투대로 ‘벼 종자’라고만 말합니다. 어느새 ‘씨감자·씨고구마’라는 말마디는 ‘감자 종자·고구마 종자’로 바뀝니다. 4348.4.28.불.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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