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넋 54. ‘표준말’은 없다

― 사람답게 삶을 가꾸며 쓰는 말



  오늘날 ‘정부 맞춤법’은 ‘정부에서 펴낸 표준국어대사전’에 실린 낱말은 붙여서 쓰고, 여기에 안 실린 낱말은 띄어서 쓰도록 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정부에서 ‘표준으로 삼는 한국말사전’에 안 실린 낱말은 ‘한국말이 아닌’ 셈입니다.


  ‘꿈터’라는 낱말은 정부에서 펴낸 표준국어대사전에 안 실립니다. 그러나 ‘꿈터’라는 낱말은 유치원이나 학원 이름에도 쓰고, 교회나 식당 이름에도 쓰며, 사진관에다가 수많은 가게에서 두루 씁니다. ‘온누리’라는 낱말도 정부에서 펴낸 표준국어대사전에 안 나옵니다. 그러나 ‘온누리’라는 낱말도 약국이나 교회나 학교나 출판사 이름으로도 쓰고, 수많은 곳에서 이 이름을 널리 씁니다.


  우리는 스스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정부에서 국어학자가 새로운 낱말을 지어서 표준국어대사전이라고 하는 ‘한 가지 한국말사전’에 올림말로 실어야, 이 낱말만 ‘표준말’로 배워서 써야 할까요? 아니면, 생각을 북돋우고 마음을 살찌워서 ‘우리 생각과 마음을 나타낼 낱말’을 스스로 지으면서 기쁘게 써야 할까요?


  ‘꿈터’라는 낱말을 ‘꿈 터’처럼 띄어서 쓰기만 해야 한다면, ‘꿈노래’나 ‘꿈누리’ 같은 낱말도 못 씁니다. ‘온누리’라는 낱말을 ‘온 누리’처럼 띄어서 쓰기만 해야 한다면, ‘온사랑’이나 ‘온마음’ 같은 낱말도 못 씁니다.


  《아이들의 이름은 오늘입니다》(포이에마,2014)라는 책을 읽다가 171쪽에서 “지구 온난화, 굶주림에 관한 뉴스를 쉽게 접한다. 이런 소식을 들으면” 같은 글월을 보고 곰곰이 생각합니다. 이 글월에는 ‘뉴스(news)’와 ‘소식(消息)’이라는 낱말이 나오는데, 두 낱말은 모두 한국말이 아닙니다. ‘뉴스’를 한국말사전에서 찾아보면 ‘새 소식’으로 고쳐쓰라 나오고, ‘소식’을 한국말사전에서 찾아보면 ‘알림’으로 고쳐쓰라 나옵니다. 이러한 한국말사전을 헤아린다면, ‘뉴스 = 새 알림’인 꼴이지만,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새 알림’이라는 말도 그리 알맞지 않습니다. 그러면, 이 글월은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요? “굶주림 같은 얘기를 쉽게 듣는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한국사람은 예부터 ‘이야기’를 나누었고, ‘이야기’를 알렸으며, ‘이야기’를 들었어요. 영어는 ‘뉴스’이고, 한자말은 ‘소식’이며, 한국말은 ‘이야기(얘기)’입니다.


  한국에서는 학교나 사회에서 말을 제대로 안 가르칩니다. 교과서에서는 말을 제대로 못 짚습니다. 정부에서는 사람들 생각과 마음을 틀이나 굴레에 가두려고만 합니다. 이리하여, 한국에서 태어나서 사는 사람은 ‘한국말’뿐 아니라 ‘말’도 제대로 모르고, 옳게 생각할 줄 모릅니다.


  지구별에서 사는 사람은 모두 ‘다른 말’을 씁니다. 나라나 겨레가 달라서 ‘다른 말’을 쓰지 않습니다. 삶터가 달라서 다른 말을 씁니다. 한국이라는 나라만 들여다보아도, 크게 가르면 평안말과 강원말과 전라말과 경상말과 충청말과 함경말과 제주말이 모두 다릅니다. 서울말과 부산말과 광주말만 다르지 않습니다. 고장마다 말이 다릅니다. 오늘날에는 교과서와 학교와 신문과 책과 공공기관 때문에 고장마다 거의 비슷한 말을 주고받지만, 교과서와 학교와 신문과 책과 공공기관이 없던 옛날에는 고장마다 모두 다른 말을 썼습니다.


  지난날 이 나라에서 중앙권력을 누리던 이들이 ‘한국말’을 안 쓰고 ‘중국말’을 쓰면서 ‘중국글’을 쓴 까닭을 헤아려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고장마다 말이 대단히 크게 다르니까, 중앙권력을 누리며 다스리려는 이는 ‘같은 말(표준말)’을 써야 합니다. 그런데 권력자는 ‘여느 시골에서 여느 사람이 흙을 일구고 숲을 돌보면서 쓰던 말(한국말)’을 쓸 마음이 없습니다. 이런 여느 시골말(숲말)을 쓰려고 해도 고장말이 죄 다르니 어느 하나를 골라서 쓸 수도 없습니다. 이리하여, 중앙권력은 ‘북경말’로 대표할 중국말을 표준으로 삼았고, 이를 중국글(한자)로 나타내려 했습니다. 중앙권력이 중국말과 중국글을 받아들여서 쓰면서 차츰 한자말이 퍼졌지만, 여느 시골에서 지내는 사람은 ‘제 고장말(한말)’만 쓰면 될 뿐이었습니다. 시골사람은 손수 씨앗을 심고 들과 숲을 가꾸었으니, 굳이 중국말이나 중국글을 익힐 까닭이 없고, 들을 일조차 없습니다. 해방 뒤 새마을운동이 퍼지기 앞서까지 한국에서 여느 시골에서 살던 사람은 한자말을 거의 한 마디조차 안 썼어요.


  한국에서는 새마을운동 바람이 휘몰아친 뒤부터 아이들을 몽땅 학교에 보냈고, 학교에만 보냈을 뿐 아니라 도시로 보냈습니다. 초·중·고등학교를 모두 마치고 도시로 간 시골아이는 시골말을 버립니다. 도시에서 쓰는 말을 받아들입니다. 1960∼70년대 ‘도시말’은 ‘한자말을 바탕으로 하는 표준 권력말’입니다. 토씨만 한국말일 뿐, 알맹이는 오롯이 한자말인 셈이었어요. 이 흐름이 1980년대까지 이어졌는데, 사회에 민주 바람이 불면서 ‘토씨만 한국말’이던 껍데기를 차츰 걷어냈고, 요즈음은 ‘알맹이도 한국말’인 말을 두루 쓸 수 있으나, 중앙권력을 쥔 쪽에서는 다시 ‘알맹이는 영어’인 말을 퍼뜨립니다.


  정부에서 사람들한테 퍼뜨리려는 ‘표준말’이 무엇인지 제대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표준말은 ‘사람들이 스스로 생각을 키우지 못하거나 짓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말’입니다. 사람들이 스스로 생각을 못 키우거나 못 지으면 어떻게 될까요? ‘스스로 삶을 짓는 길’과 멀어집니다.


  우리는 ‘토박이 한국말’을 써야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생각을 짓고 삶을 짓는 길로 나아가는’ ‘말다운 말’을 스스로 생각으로 지어서 써야 합니다. 권력말이나 표준말이 아니라 ‘내 말’을 써야 하고, 서로 어깨동무를 하면서 사랑을 꿈꾸는 ‘우리 말(우리가 함께 짓는 말)’을 써야 합니다.


  ‘참다운 이야기인 생각을 그려서 보이는 말’일 때에 ‘참말’이면서 ‘삶말’이고, 이러한 말만 오직 ‘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공문서를 쓰거나 의사소통을 하자면 표준말이나 맞춤법을 따르기도 해야 하지만, 우리 눈길은 언제나 ‘삶을 짓는 말’과 ‘생각을 짓는 말’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4348.4.6.달.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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