ㄷ 책숲 느끼기
18. 내 이웃 삶을 읽는다


  왜 책을 읽는가 하고 누군가 묻는다면, 저는 늘 ‘내 마음을 읽고 싶어서’라고 말하다가, 한 마디를 덧붙여 ‘내 이웃 삶을 읽으면서 내 이웃이 어떤 마음으로 사랑을 가꾸려 하는가를 읽고 싶어서’라고 말합니다. 책을 읽다 보면 내가 걷는 길이 어떠한 삶인지 더 또렷하게 헤아릴 수 있으면서, 내 이웃이 오늘 어떤 삶을 가꾸는지 환하게 살필 수 있습니다.

  마음에 아름다운 생각을 가득 일으키는 책을 꾸준히 되읽습니다. 마음에 사랑스러운 꿈을 넉넉히 북돋우는 책을 새롭게 되읽습니다. 아름답다고 여겨 ‘같은 책’을 기쁘게 되읽습니다. 사랑스럽다고 느껴 ‘같은 책’을 언제 어디에서나 새롭게 되읽습니다.

  가네코 미스즈 님이 빚은 동시집 《나와 작은 새와 방울과》(소화,2006)가 있습니다. 1903년에 조그마한 바닷마을에서 태어난 뒤, 1930년에 스스로 목숨을 끊어 저승길로 간 분이 쓴 동시집입니다. 시골 바닷마을에서 작은 책방을 꾸리면서 틈틈이 동시를 썼다고 하는데, 헤어진 남편한테 딸을 빼앗길까 봐 걱정하면서 스스로 죽었다고 합니다. 이분이 쓴 동시는 이분 남동생이 오래도록 건사했다 하며, 1984년에 이르러 비로소 책으로 태어나며 널리 알려졌다고 해요. 이웃 일본에서도 아주 오랫동안 잠자다가 깨어난 동시집이고, 한국에도 느즈막하게 알려진 책입니다.

  작은 동시집 《나와 작은 새와 방울과》를 읽는 동안 조용한 바닷마을 바람이 부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이를테면 “마을의 끝은 / 저녁놀 붉은 놀 / 봄이 가까운 걸 / 알 수 있는 날(내일).” 같은 노래라든지, “어머니, / 뒤꼍 나무 그늘에, / 매미의 옷이 / 있었어요(매미의 옷).” 같은 노래를 읽으면서 바닷바람을 가만히 느낍니다. 이렇게 저녁놀과 매미를 살며시 느끼면서 동시를 쓴 분은 왜 서른 살조차 안 된 나이에 스스로 숨을 끊어야 했을까요. 어린 딸아이를 지키려는 어버이는 어떤 길을 걸어야 했을까요.

  가시내가 사내를 두들겨패는 일이 아주 드물게 있다고 하지만, 이런 일은 참말 드뭅니다. 주먹질은 으레 사내가 일으킵니다. 사내는 으레 가시내를 두들겨패려 합니다. 더욱이, 사내는 으레 총칼을 손에 쥐려 하며, 사내는 으레 군인이 되어 이웃을 죽이거나 괴롭히는 싸움터로 뛰쳐나갑니다.

  “참새의 / 어머니 / 그걸 보고 있었다. // 지붕에서 / 울음소리 참으며 / 그걸 보고 있었다(참새의 어머니).” 같은 노래를 곰곰이 읽습니다. ‘사람 아이’가 ‘참새 아기’를 붙잡는 모습을 보면서 쓴 동시입니다. ‘사람 아이’는 ‘참새 아기’를 붙잡고는 하하 웃습니다. ‘사람 아이’를 낳은 어머니도 제 아이가 참새 아기를 갖고 노는 모습을 보며 웃는다고 합니다. 동시를 쓴 아주머니는 이 모습을 슬프게 바라봅니다.

  사람이 ‘참새가 읊는 말’을 알아듣는다면, 섣불리 ‘참새 아기(새끼 참새)’를 붙잡아서 히히덕거리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사람이 ‘풀이 읊는 말’을 알아듣는다면, 함부로 농약을 치거나 땅바닥을 삽차로 파헤치는 일도 없으리라 봅니다. 더 헤아려 본다면, 우리는 ‘이웃인 사람’이 품는 마음도 잘 모르기 일쑤예요. ‘이웃인 작은 짐승과 벌레와 푸나무’가 읊는 말도 알아들으려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이웃인 사람’이 아프다 하거나 슬프다 하는 말을 알아들으려 하지 않아요.

  책 한 권을 손에 쥐어서 지식을 더 얻을 수 있습니다. 책 백 권을 신나게 읽어서 지식을 많이 쌓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잘 생각할 노릇입니다. 지식을 왜 더 얻으려 하는가요? 지식을 왜 많이 쌓으려 하는가요? 더 얻은 지식으로는 어떤 일을 할 생각인가요? 많이 쌓은 지식으로는 무슨 일을 하는가요?

  책으로 얻은 지식은 없으나 착하게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책이나 학교로 얻은 지식이 없지만 참답고 아름답게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신문이나 방송을 본 일조차 없는데 이웃과 사랑을 따스하게 나누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와 달리, 책으로 얻은 지식이 많지만 참답지 않고 착하지 않으며 아름답지 않은 사람이 있어요. 온갖 지식을 많이 쌓았는데 짓궂거나 얄궂거나 쓸쓸한 짓을 일삼는 사람이 있어요.

  책을 더 읽어야 훌륭한 사람이 되지 않습니다. 책에 앞서 마음을 아름답게 가꿀 때에 비로소 훌륭한 사람이 됩니다. ‘좋은 책을 더 많이 읽어’야 똑똑한 사람이 되지 않습니다. 이웃을 아끼고 돌볼 줄 아는 마음을 가다듬으면서, 따스하고 넉넉한 사랑으로 삶을 지을 수 있을 때에 비로소 똑똑한 사람이 됩니다.

  “아무도 모르는 들녘 끝에서 / 파란 작은 새가 죽었습니다. / 춥디추운 해 저물녘에 // 그 주검 묻어 주려고 / 하늘은 흰 눈을 뿌렸습니다. / 깊이깊이 소리도 없이(눈).” 같은 노래를 조용히 읽습니다. 내 이웃은 누구인지 생각하면서 삶노래를 가만히 읽습니다. 시는 삶노래라고 느낍니다. 삶을 노래하는 글이 바로 시로구나 하고 느낍니다. 나한테 아름다운 이웃을 그리는 노래가 바로 시이고, 내가 이웃한테 아름다운 벗님으로 다가서면서 부르는 노래가 바로 시로구나 하고 느낍니다.

  더 많은 책을 알아야 하지 않습니다. 책을 한 권만 읽었어도 마음자리에 사랑스러운 지식을 담으면 됩니다. 더 많은 이웃을 사귀어야 하지 않습니다. 이웃을 한 사람만 사귀어도 마음자리에 아름다운 숨결을 심으면 됩니다.

  볼볼볼 기어가는 개미 한 마리를 밟지 않으면서 걷습니다. 재빠르게 기어가는 땅강아지를 보고는 걸음을 멈춥니다. 땅강아지가 건너편으로 다 지나갈 때까지 기다립니다. 자전거를 몰다가 길섶에 나비가 앉아서 날개를 쉬는 모습을 보았으면 살며시 손잡이를 틀어 나비가 안 밟히도록 에돌아 갑니다. 아스팔트 바닥에 떨어진 꽃잎이나 나뭇잎을 주워서 흙땅으로 옮깁니다. 길을 걷다가 떠돌이 개를 만나면, 내 손이나 주머니에 있는 먹을거리를 땅바닥에 조용히 내려놓습니다.

  모두 사랑스러운 이웃입니다. 이 지구별에서 싱그러운 바람을 함께 마시면서 살아가는 이웃입니다. 나라마다 쇠가시그물을 잔뜩 박아서 ‘국경’을 세우기도 하지만, 지구별 테두리에서 보면 쇠가시그물이나 국경은 덧없습니다. 구름이나 바람한테는 아무런 국경이나 국적이 없습니다. 사람한테는 적이나 적군이 있을 까닭이 없습니다. 모두 이웃입니다. 이웃을 아끼려고 한다면 총칼을 비롯한 모든 전쟁무기와 군대를 녹여서 없앨 노릇입니다. 이웃이니까요. 이웃하고는 어깨동무를 해야지요. 쇠가시그물을 잔뜩 박으면서 총부리를 겨누느라 애먼 하루를 보낼 노릇이 아니라, 서로 빙그레 웃으면서 숲과 들을 아름답게 일굴 때에 비로소 사랑이 피어난다고 느낍니다.

  나는 네 이웃입니다. 너는 내 이웃입니다. 책 한 권을 읽으면서 먼먼 나라 이웃을 살갑게 느낍니다. ‘이웃이 나한테 베푼 아름다운 선물’인 책 한 권을 만난 기쁨을 곰삭이면서 글 한 줄을 즐겁게 씁니다. 4348.4.15.물.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청소년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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