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넋·삶 49 콩씨와 팥씨
한겨레가 먼 옛날부터 주고받는 말 가운데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가 있습니다. 이 말은 아주 옳습니다. 그야말로 옳습니다. 대단히 옳고 바르면서 멋진 말입니다. 콩을 심으니 콩이 납니다. 팥을 심기에 팥이 나요. 달리 말할 수 없습니다. 사랑을 마음에 심으면 사랑이 자랍니다. 꿈을 마음에 심으면 꿈이 자라요. 더할 나위 없이 올바른 말입니다.
내 마음에 미움을 심으면 무엇이 자랄까요? 미움이 자라지요. 내 마음에 시샘을 심으면 무엇이 자라나요? 시샘이 자라지요. 내 마음에 기쁨이나 웃음을 심으면 기쁨이나 웃음이 자라고, 기쁨이랑 웃음을 함께 심으면 ‘기쁜 웃음’이나 ‘웃는 기쁨’이 자랍니다.
나무를 심기에 나무가 자랄 수 있습니다. 나무를 보살피고 아끼기에, 나무는 우리한테 사랑스럽고 맛난 열매를 고맙게 베풉니다. 씨앗 한 톨을 흙땅에 정갈한 손길로 기쁜 꿈을 품으면서 심으니, 씨앗 한 톨은 흙 품에 안겨서 씩씩하게 자랍니다.
한편, 한겨레 옛말은 다르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콩을 심은 데에 팥이 나거나, 팥을 심은 데에 콩이 날 수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까요? 심기는 콩을 심었는데 왜 팥이 나지요? 콩을 심으면서 콩이 아닌 팥을 생각하니까 팥이 납니다. 팥을 심으면서 팥이 아닌 콩을 생각하니 콩이 납니다. 이 또한 아주 옳습니다. 그래서, 한겨레는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 갚는다.”와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 진다.”고도 이야기합니다. 똑같은 말이지만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아주 다른 열매를 맺습니다.
씨앗 한 톨을 심으면서 ‘씨앗 한 톨’을 생각하지 않고 다른 것을 생각한다면, 씨앗이 제대로 자라지 않습니다. 그래서, 콩씨를 심어도 콩알이 안 맺을 수 있습니다. 씨앗 한 톨을 심으면서 ‘열매가 잔뜩 열리면 돈을 많이 벌어야지’ 같은 생각을 한다면, 이때에도 열매가 제대로 안 맺을 수 있습니다. 첫발(첫걸음)을 내디디는 우리는 새발(새걸음)을 내딛으려고 해야 합니다. 첫발을 내딛으면서 끝(열매)을 지레 생각하니까, 첫발부터 어긋나고 맙니다.
다시 말하자면, 콩씨를 심으면서 팥을 생각한 사람은 처음부터 ‘콩을 심지’ 않고 ‘팥을 심는구나’ 하고 여길 만합니다. 씨앗을 심으면서 ‘씨앗’이 아닌 ‘다른 것’을 생각하는 사람은, 처음부터 ‘다른 것’을 심은 셈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늘 ‘우리가 손수 심은’ 대로 거둡니다. “뿌린 대로 거둔다.”는 옛말처럼, 생각을 마음자리에 심거나 뿌린 대로 삶이 나타납니다.
말이 씨가 됩니다. 씨가 삶이 됩니다. 말은 언제나 씨앗과 같습니다. 씨앗과 같은 말을 함부로 뇌까린다면, 나는 내 삶을 스스로 함부로 망가뜨리려는 셈입니다. 언제나 씨앗과 같은 말이니, 말을 정갈하고 아름답게 가꾸어서 슬기로운 생각으로 마음자리에 둘 수 있으면, 이 말은 마음자리에서 사랑스레 깨어납니다.
어떤 씨앗을 심을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어떤 씨앗을 바라보면서 내 손에 쥐었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선 땅에 어떤 씨앗을 쥐고 어떤 몸짓으로 어떤 삶을 지으려 하는가를 또렷이 바라보아야 합니다. 내 손에 쥔 씨앗을 제대로 바라볼 때에 내 길을 제대로 걷습니다. 내 손에 쥔 씨앗을 제대로 바라보지 않는다면 내 길은 그예 어긋나기만 합니다. 4348.3.3.불.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람타 공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