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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꾼 하나 ㅣ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65
팻 허친스 글.그림, 홍연미 옮김 / 시공주니어 / 199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15
사냥꾼은 언제나 하나
― 사냥꾼 하나
팻 허친스 글·그림
홍연미 옮김
시공주니어 펴냄, 1996.12.16.
여기 사람 하나 있습니다. 사람 하나는 맨손입니다. 두 손에 아무것도 쥐지 않습니다. 사람 하나는 아직 눈을 감습니다. 눈을 뜨지 않았습니다. 고요히 있는 사람 하나는 바람을 살며시 마십니다. 바람을 마시니까 산 목숨입니다. 바람을 안 마신다면 죽은 몸이겠지요.
살며시 바람을 마시며 가만히 있는 사람 하나가 문득 한 가지를 생각합니다. 머릿속에 이야기 하나를 그립니다. 바야흐로 마음이 움직입니다. 스스로 떠올려서 이야기로 빚은 생각이 마음에 씨앗으로 깃들면서 비로소 눈을 뜹니다. 눈을 떠야 할 까닭이 생겼습니다. 마음에 그리는 생각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 사냥꾼 하나 .. (3쪽)

눈을 떠서 움직이는 사람은 슬기롭게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눈을 떠서 움직이기는 하되, 스스로 움직이려 하지 못하고 누군가 어떤 일을 시켜 주기를 기다릴 수 있습니다. 슬기롭게 사랑하려는 사람은 모든 일을 스스로 합니다. 굳이 다른 사람이 저한테 어떤 일을 시키도록 기다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누군가 어떤 일을 시켜 주기를 기다리는 사람은 드디어 누군가를 만나서 심부름을 합니다. 저한테 일을 한 가지 맡져 주어 몸을 움직일 수 있으니 고맙다고 여깁니다.
내가 스스로 생각해서 몸을 움직여 일을 찾는 사람은 슬기롭게 사랑할 수 있습니다. 스스로 삶을 짓는 모습입니다.
내가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남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사람은 어리석거나 바보스럽습니다. 제 생각이 없이 몸을 움직이기 때문인데, 남이 바라는 대로 움직이니 제 뜻이나 마음이 없어요. 스스로 기쁜 일인지 새로운 일인지 살피지 못한 채, 그저 허수아비나 꼭둑각시처럼 움직입니다.
‘움직임’이라는 대목에서는 두 사람이 같아 보이지만, ‘삶’이라는 대목에서는 두 사람이 다릅니다. 한 사람은 언제나 웃으면서 삶을 짓고, 다른 한 사람은 웃음이 무엇인지 모르는 채 쳇바퀴를 돕니다.
.. 앵무새 열, 뱀 아홉, 원숭이 여덟, 악어 일곱, 호랑이 여섯, 영양 다섯, 타조 넷, 기린 셋, 코끼리 둘 .. (22∼23쪽)

팻 허친스 님 그림책 《사냥꾼 하나》(시공주니어,1996)를 읽습니다. 이 그림책은 아이들이 ‘숫자’와 ‘이름’과 ‘모습’과 ‘흐름’을 헤아리도록 돕는 예쁜 길동무책이라고 할 만합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차근차근 세면서, 내 둘레 삶과 흐름을 가만히 살펴보도록 도와줘요.
이러면서 ‘언제나 하나’인 사람이 사냥꾼 차림으로 나와요. 굳이 사냥꾼을 안 그려도 되는데, 팻 허친스 님은 일부러 사냥꾼을 그립니다.
왜 사냥꾼을 그렸을까요? 구태여 사냥꾼을 그려야 할 까닭이 있을까요? 사냥꾼을 부러 그려서 우리한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까요? 사냥꾼 하나와 숲짐승 아홉 가지를 바라보는 아이들은 어떤 삶과 사랑과 꿈을 헤아릴 만할까요?
.. 그리고 사냥꾼 하나 .. (24쪽)

총을 든 사냥꾼은 마치 무엇이든 다 잡아먹을 듯이 눈을 부라리면서 달립니다. 옆도 둘레도 안 보고 앞만 보고 달립니다. 숲짐승은 이런 사냥꾼을 재미있다는 듯이 빙그레 웃으면서 바라봅니다. 아홉 가지 숲짐승이 모두 사냥꾼 하나를 바라봅니다. 사냥꾼 하나는 아무 숲짐승도 안 나오는 숲을 애써 달리다가, 어쩐지 뒷통수가 가려워서 문득 뒤를 한 번 돌아봅니다. 그러고는 깜짝 놀라지요. 사냥꾼 혼자서 몰랐을 뿐, 다른 숲짐승은 내내 사냥꾼을 지켜보았어요. 이제 사냥꾼은 화들짝 놀라서 총도 안경도 모두 내팽개친 채 꽁무니를 뺍니다. 불이야 하고 외치면서 내빼지요.
어리석게 총을 들고 숲으로 들어온 사냥꾼은 그야말로 어리석습니다. 숲짐승이랑 숲동무가 되려는 마음으로 숲에 들어왔으면, 이 사람은 놀랄 일이 없어요. 총이 아니라 따순 손길로 숲동무를 사귀려 했다면, 이 사람은 활짝 웃고 노래하면서 온갖 숲짐승하고 어깨동무를 했겠지요.
어리석은 사람은 늘 하나입니다. 슬기로운 사람도 늘 하나입니다. 바로 내가 어리석고, 다른 사람 아닌 내가 슬기롭습니다. 이 지구별 아이들은 언제나 어리석게 쳇바퀴 도는 삶에 얽매인 채 자랄 수 있습니다. 이 지구별 아이들은 늘 아름답고 슬기로우면서 사랑스럽게 자랄 수 있습니다. 자, 우리는 어떤 길로 가야 할까요? 우리는 어떤 길을 갈 때에 즐거울까요? 4348.4.12.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