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과 삶’ 사이, 두려움, ‘삶 되짚기’


  죽음과 삶 사이에 다리가 있습니다. 이승과 저승을 가로지르는 냇물이 있습니다. 이 냇물은 냇물이지만, 물이 흐른다기보다 그저 이승과 저승을 가르는 작은 금입니다.

  죽음 문턱에 이르면 두렵다고 느낄 수 있지만, 막상 죽음 문턱을 밟을 적에는 두려움보다는 ‘아무것도 없음’을 느끼지 싶습니다. 다른 사람들 말이나 책에 나오는 이야기가 아닌, 내가 스스로 겪은 이야기입니다.

  1998년 팔월 첫무렵 어느 날입니다. 나는 서울 이문동에서 자전거로 신문배달을 하며 살림을 꾸렸습니다. 한여름이었고, 신문배달을 마친 뒤 새벽 다섯 시가 채 안 되어 신문사지국으로 홀가분하게 자전거를 몰고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이른 새벽이기도 하고 휴가철이기도 해서, 참말 길거리에 자동차 하나 없는 때였습니다. 이무렵, 나는 새벽 한 시 반이나 두 시부터 신문을 돌려서 새벽 네 시 반에서 다섯 시 사이에 일을 마쳤습니다. 

  비탈길을 올라가야 해서 발판을 더 힘을 주어 구릅니다. 찻길을 달리며 골목 옆을 지나갈 때면 으레 옆을 살핍니다. 자동차가 언제 불쑥 튀어나올는지 모르니까요. 그런데, 이날 골목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까만 차는 아주 빠르게 달리면서 내 짐자전거 뒷바퀴를 치었습니다. 이 까만 차는 빠르기를 줄이지 않았습니다.

  이때 나는 ‘죽었구나! 죽음이란 이렇게 갑자기 찾아오는구나!’ 하고 깨달았습니다. 이러면서 생각했어요. ‘그래, 이렇게 죽는다면, 죽음이 무엇인지 찬찬히 지켜보자!’ 두려움이나 무서움 같은 느낌이 없이 ‘아, 사람은 죽으면 이렇게 가는구나.’ 하고 느끼면서 알았습니다.

  자동차에 치여 하늘로 날아오르던 이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했으나, 이제 와서 돌아보면, 나는 자동차에 치여 하늘로 날아오르면서 ‘넋’이 곧바로 몸에서 빠져나왔지 싶습니다. 드러누워서 고요히 숨이 멎는 사람과 달리, 차에 치이면서 갑자기 곧바로 넋이 빠져나왔다고 할까요.

  바깥에서 본다면, 자동차가 자전거를 치어서 자전거에 탄 사람이 하늘을 붕 날아서 길바닥에 떨어져 데굴데굴 구르기까지 몇 초 안 걸립니다. 나는 이때 하늘로 붕 날아오르면서 이 생각도 했습니다. ‘차에 치여서 하늘을 날아올랐는데 참 오래도 나는구나!’ 하고. 이런 생각이 지나가면서 곧바로 ‘내 지나온 나날’이 아주 빠르면서도 천천히 흘렀습니다. 자동차에 치여서 하늘을 날던 그무렵에는 그 그림이 무엇인지 몰랐으나 이제는 알아요. 바로 ‘내 삶 되짚기(인생회고)’를 했습니다. 갓 태어나던 날부터 신문배달을 하는 이날에 이르기까지 무엇을 했고 생각했고 보았는가 하는 대목이 그대로 영화처럼 흘렀습니다. 그리고 ‘잘 모르는 모습’도 보았는데, 아마 ‘잘 모르는 모습’은 오늘 이곳에서 이 몸으로 지내는 삶이 아닌, 예전 삶(전생)이었지 싶습니다.

  가만히 눈을 감고 이 그림(물결처럼 흐르는 그림)을 바라보았습니다. 기쁨도 슬픔도 아쉬움도 서운함도 없었습니다. 웃음도 눈물도 없이 그저 환하게 펼쳐진 빛살을 누리면서 이 그림을 보았습니다. 놀랍지도 않고 새롭지도 않았습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모두 ‘내가 스스로 살아온 모습’이니 놀라울 까닭도 새로울 까닭도 없습니다. ‘그래, 그동안 이렇게 살았지’ 하는 생각만 들엇습니다.

  이러다가 문득 ‘끝’을 보았어요. 환한 빛이라고 할는지, 빛이면서 빛이 아닌 것으로 하얗게, 이러면서 하얗지도 않게 눈부시도록 빛줄기가 퍼지는 곳에서 ‘내 삶 되짚기’를 하는데, 저 끝에 ‘까맣고 고요하면서 까맣지도 고요하지도 않은 작은 씨앗 같은 점’을 보았습니다. 스물 몇 해 앞선 그무렵에는 그 까맣고 작은 씨앗 같은 점이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이제는 그 까맣고 작은 씨앗 같은 점이 ‘고요누리(제로포인트)’인 줄 알지만, 그무렵에는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으나, 다른 한 가지 생각이 문득 떠오르면서 머리를 스쳤습니다. 나는 무엇을 생각했을까요?

  이때 나는 ‘내가 이렇게 신문배달을 하다가 죽으면, 내가 신문을 돌리는 구역은 어떻게 될까? 우리 지국장님은 내 구역 몫을 땜질을 하느라 힘드시겠네. 내 자리를 채울 사람은 언제 들어올까? 가뜩이나 우리 지국은 가난한데 자전거가 찌그러져서 망가지면 어쩌지?’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어느 모로 보면 터무니없는 생각을 한달 수 있는데, 사람이 삶을 내려놓고 죽음으로 건너갈 적에는 ‘이런 터무니없다 싶은 자잘한 생각’을 하는구나 싶습니다.

  이런 생각이 들고 난 다음에는, ‘내가 죽은 모습’을 지켜보면서 눈물을 짓는 지국장님과 지국 형들이 보입니다. 여느 때에는 늘 늦잠을 자면서 배달사고를 자주 일으키는 지국 형들이 내 주검을 둘러싸고 우는 모습을 보았어요. 그리고,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와 형이 나를 둘러싸고 눈물을 삼키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았다고 해서 ‘죽지 말아야지’ 하고 느끼지 않았어요. 그저 그런 모습을 보았을 뿐이고 ‘신문배달원이 새벽에 자동차에 치여 죽는다’고 해서 신문에 이런 기사가 실리지도 않겠다고 생각했어요. 아무래도 나는 신문배달원이었으니 이런 생각도 들었겠지요. 그리고, 다시금 새로운 생각 한 가지가 머리를 스쳤어요. 불현듯이 ‘아, 죽더라도 예쁘게 죽고 싶어!’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이런 생각이 들었는지 나 스스로도 잘 모릅니다. 다만, ‘저 차갑고 딱딱하고 새까만 아스팔트 길바닥에 머리통이 깨져서 박살이 나면 피가 여기저기 튈 텐데 하나도 안 예쁘잖아.’ 하고 생각했습니다. 새벽에 신문배달을 하다 보면, 밤새 술을 퍼마시고 여기저기에 게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고요한 새벽에 자전거를 달리다가 술떡을 보면 에그 지저분해라 하면서 못마땅해 했어요. 내 머리통이 길바닥에 찧어서 깨지면 핏자국으로 길바닥이 더러워지겠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청소하는 일꾼이 핏자국을 지우느라 얼마나 힘들겠니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이리하여, 나는 아주 부드러우면서도 가볍게 오른손으로 머리통을 감쌌습니다. 그리고, ‘내 신문배달 자전거! 자전거 다치면 안 돼!’ 하는 생각도 스치면서 왼손을 뻗어  자전거 손잡이를 잡았습니다. 이러면서 내 몸을 감싸던 ‘눈부신 하얀 나라’는 가뭇없이 사라졌습니다. 나는 내가 무엇을 하는지 모든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퍽 오랫동안 이 대목이 궁금했어요. 어떻게 나는 내가 어떤 몸짓으로 하늘을 날고, 자전거에서 떨어져 하늘을 날다가 자전거를 다시 붙잡고, 한손으로 머리통을 감쌌는지, 이런 모습을 어떻게 내가 스스로 다 지켜보았을까 하는 대목이 참 궁금했어요(그때에는 몰랐으나, 이제는 이 대목을 알 수 있는 까닭이, 내 몸에서 내 넋이 빠져나와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를 지켜본 줄 알았으니 이렇게 말할 수 있겠지요. 그때에는 넋이 몸에서 빠져나간다는 ‘지식’조차 없었습니다. 그저 몸에서 뭔가 빠져나간다는 느낌만 있었습니다). 이 모습을 다 보았다 싶을 무렵, 나는 쿵 하는 꽤 큰 소리를 내면서 땅바닥에 떨어졌고, 얼마나 먼 길을 굴렀는지 모르지만 한참 데굴데굴 굴렀습니다.

  자동차에 치이면서 곧바로 넋이 몸을 빠져나가서 ‘내 삶 되짚기’를 했고, 내 넋이 고요누리로 가지 않았기 때문에, 내 넋은 내 몸뚱이 바깥에서 나를 이끌어 오른손으로는 머리통을 감싸고 왼손으로는 자전거를 다시 붙잡도록 시킨 뒤, 몸뚱이가 길바닥에 찧고 나서 다시 내 몸으로 돌아왔구나 싶습니다. 넋이 내 몸으로 언제 돌아왔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어느 만큼 시간이 지났는지는 모릅니다. 한동안 넋을 잃었다가 문득 ‘숨을 쉬는 내 몸’을 느꼈고, 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어디에 있는지 하나도 모르지만, 어디엔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몸을 천천히 움직였고, 머리통을 감싸던 오른손을 끌어당겨서 피가 묻었는지 안 묻었는지 혀로 핥았습니다.

  피가 하나도 없더군요. 그래서 ‘아, 깨끗하게 죽었나 보네.’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몸이 가만히 있어요. ‘뭔가? 뭘까?’ 하고 생각하다가 일어납니다.

  둘레를 살펴보는제 까만 자동차만 있고 다른 아무것도, 다른 사람도 자동차도 없습니다. 까만 차를 몰며 나를 친 사람은 차에서 안 내리고 그저 나를 지켜보기만 했답니다. 그 사람 말로 나는 꽤 오래 길바닥에 자빠진 채 있었고, 죽은 줄 알았다고 했습니다. 나는 말을 못 했습니다. 넋이 아직 안 돌아왔는지, 넋이 돌아오기는 했는데 내 몸과 아귀가 덜 맞았는지 모를 노릇입니다. 다만, 한 가지 생각이 들었는데, ‘내가 꽤 오랫동안 길바닥에 자빠진 채 있었다면, 이 사람은 구급차이든 경찰차이든 부르든지, 아니면 차에 태워서 나를 병원에 데려가야 하지 않았나?’ 하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이 생각이 ‘말이 되어 입에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나를 친 사람은 나한테 만 원짜리 종이돈을 하나 쥐어 주더니 “저기 피가 나니 약국에서 밴드 사서 붙여.” 하고 말했습니다. 이러고 나서 자동차 유리문을 올렸고, 그대로 아주 빠르게 내뺐어요. 한참 뒤에서야 깨달았지만, 뺑소니를 친 셈이지요. 멍하니 그 까만 차를 바라보니, 자동차 뒷자리에 아이가 둘 있고, 앞자리에는 아주머니가 있습니다. 문득 ‘저 네 사람은 오늘 새벽에 여름휴가로 놀러가는 길이로구나. 여름휴가로 놀러가는 길인데 새벽부터 이런 사고를 냈으니 얼마나 찝찝할까. 그냥 잘 놀러가야지.’ 하고 생각했어요.

  뺑소니 자동차가 사라진 뒤 한동안 꼼짝을 못 했습니다. 이곳이 이승인지 저승인지 갈피를 잡지 못했고, 내가 죽다가 살았는지, 아니면 살다가 죽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얼마쯤 그렇게 찻길 한복판에 서서 있었는지 모르겠는데, 한 발짝을 떼니 다리가 움직입니다. 두 발짝을 떼니 다리가 움직입니다. 그렇지만 몸이 매우 무겁습니다. 한 걸음을 뗄 때마다 ‘이렇게 내 몸이 무거웠던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자전거를 다시 탈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천천히 가슴이 뛰고, 비로소 내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 알아차립니다. 자전거 바퀴가 터졌는지 안 터졌는지 모릅니다. 그냥 자전거를 끕니다. 신문사 지국에 닿으니, 지국장님이 나를 보더니 “야, 너 오늘 왜 이렇게 늦게 왔어? 밥 아직 안 했지? 어, 그런데 너 그 꼴이 뭐야? 왜 이렇게 됐어?” 하고 묻습니다. 그제서야 나는 내 차림새를 살펴보았고, 내 옷은 너덜너덜 찢어졌으며, 자전거 뒷바퀴는 일그러졌습니다. 피가 난 데는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그저 온몸이 아주 무겁고 뜨거우면서 어지러울 뿐입니다. “너 어떻게 됐니?” “아, 그러고 보니, 배달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자동차가 뒤에서 쳤어요.” “그래? 안 죽고 살았네. 다행이야.” “그런데 자전거는 다 망가졌네요. 어떡하지요?” “야, 자전거가 문제니? 너 어서 들어가서 옷 갈아입어. 다친 데는 없니?” ‘다친 데는 없니’ 하고 묻는 말에 문득 오른손목이 몹시 저리다고 느끼면서 아예 움직일 수 없습니다. 하늘을 붕 날다가 머리를 감싸면서 오른손목으로 길바닥에 찧었으니 오른손목은 모든 무게를 다 받치면서 내 목숨을 살려 주었겠지요. 신문사 지국으로 들어와서 자리에 드러눕는데 옷을 갈아입을 기운이 없습니다. 시계를 보니 새벽 여섯 시를 지났습니다. 곧 일곱 시입니다. 나는 얼마나 길바닥에 자빠진 채 있었을까요.

  이날부터 사흘 동안 신문배달을 할 때를 빼곤 어디로도 나다니지 못했습니다. 지국장님이 병원비를 대 줄 테니 병원에 가자고 했지만, 신문사지국 살림을 뻔히 아니 ‘그냥 누워서 자겠다’고만 했습니다. 그리고, 이날부터 한 달 동안 오른손을 아예 쓰지도 움직이지도 못하면서 지냈습니다. 왼손 하나로 신문자전거를 몰고, 왼손 하나로 신문을 3층까지 던져올렸고, 밥도 왼손으로 짓고, 빨래도 왼손으로 하고, 걸레질도 왼손으로 하고, 글씨도 왼손으로 쓰고, 이렇게 살았어요. 왼손은 아예 없다고 여기면서 한 달이 지나니 겨우 오른손을 움직일 수 있었지만, 움직이더라도 너무 아파서 눈물이 나왔습니다.

  이승과 저승 사이를 오가면서 ‘내 삶 되짚기’를 하고 ‘까맣고 작은 씨앗 같은 점’을 보며 ‘하얗게 눈부시기만 한 누리’에 있던 때를 돌이켜보면, 모든 모습이 아주 또렷하게 떠오릅니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두려움’은 깃들지 않았어요. 죽음으로 간다고 해서 두렵지 않았습니다. 낯설지만 ‘온 머리와 마음’을 깨우는 ‘새로움’이라고 느꼈습니다.

  나는 아직 헤엄을 치지 못해서, 바닷물에 몸을 담글 적에 허리춤에 물이 닿아 발바닥이 모래바닥에서 떨어지면 움찔하고 놀라면서 ‘아이고 무서워’ 하고 느끼는데, 무섭다고 느끼더라도 무서움이 두려움이지는 않아요. 신문배달을 하다가 자동차에 치였을 적에 하늘을 날며 ‘이제 죽으니 두렵다’와 같이 느끼지 않았어요. 바로 어떤 ‘다른 곳(또는 새로운 곳)’으로 나아가면서, 이제껏 내가 쌓거나 이루었거나 지내거나 갈무리한 ‘모든 것을 새롭게 바꾸면서 내려놓아야’ 하는 줄 느꼈습니다.

  그 뒤로 ‘자동차가 내 자전거를 쳐서 하늘을 난 적’이 두 차례 더 있었고, 큰아이를 자전거수레에 앉히고 자전거를 몰다가 길바닥에 있는 커다란 구덩이에 바퀴가 빠져서 크게 한 바퀴를 돈 적이 있어요. 이때에도 ‘내 삶 되짚기’를 했을까 하고 돌아보니, 이때에는 안 했다고 느낍니다. 왜냐하면, 이때에는 ‘하늘을 날면서, 아아 또 이렇게 가는구나’ 하고 여겼고, ‘내 삶 되짚기는 안 할래’ 하고 생각했습니다. 큰아이와 하늘을 날 적에는 ‘이 아이를 다치게 할 수 없어’ 하고 여기면서 ‘하늘을 날면서 자전거수레’를 바라보며 ‘큰아이가 다치지 않기를’ 하는 말을 마음속으로 외쳤습니다.

  두려움이란 무엇일까요. 아직 알지 못해서 섬찟하거나 까마득하거나 아찔하거나 떨리는 느낌이 두려움일까요? ‘죽을는지 모른다’는 느낌이 두려움일까요? 그런데, 막상 죽음 문턱에 발을 디디고 ‘삶 되짚기’를 하다 보면, 두려울 일이 없습니다. 한 발을 내디디면 ‘두려움’이라고 하는 느낌이란 ‘새로움’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가로막는 수많은 느낌(감정)덩어리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삶 되짚기’를 마치고 들어서는 ‘고요하면서 까맣고 작은 씨앗 같은 점’으로 접어들 때에 드는 느낌이 두려움일는지 모릅니다. 어떻게 될는지 모른다고 느껴서 두려움이 피어날 수 있습니다.

  어쩌면 나는 ‘한 번 죽음길에 다녀오면’서 두려움을 그곳에서 녹여 없앴는지 모릅니다. 이승을 보고 저승을 본다면, 두려움을 스스로 녹이는 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승길에 가기 싫어’ 하고 외치는 마음이 두려움을 일으키고 ‘죽음길이라는 자리는 너무 싫어’ 하고 부들부들 떠는 마음이 두려움을 끌어들이지 싶습니다. 4348.4.11.흙.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람타 공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