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랑 놀자 123] 봄까지꽃, 봄까치꽃, 개불알풀꽃



  조그마한 봄꽃을 놓고 세 가지 이름이 있습니다. 이 가운데 ‘봄까지꽃’은 시골에서 조용히 쓰는 이름이라 할 만하고, ‘봄까치꽃’은 어느 수녀님이 쓴 시 때문에 퍼진 이름이라 할 만하며, ‘개불알풀꽃’은 이제 익히 알려진 대로 일제강점기에 일본 식물학자가 붙인 이름을 한국 학자가 고스란히 옮긴 이름이라 할 만합니다. 봄꽃 하나를 놓고 어느 이름으로 가리키면서 마주하더라도 대수롭지 않습니다. 우리 마음에 사랑이 있어서, 이 사랑으로 봄꽃을 마주하면 넉넉합니다. 그러면, 하나씩 찬찬히 헤아려 봅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 식물학자가 붙인 이름’을 그대로 쓰려는 사람은 참으로 이 봄꽃을 아끼거나 사랑하거나 돌보려는 마음인가요? 아니면 ‘개불알’이라는 이름이 이녁 마음에 들기 때문인가요? ‘봄까치’라는 이름을 그대로 쓰려는 사람은 참으로 이 봄꽃하고 ‘까치’라는 새하고 어울린다고 하는 생각 때문인가요, 아니면 어느 수녀님이 쓴 시가 마음에 들기 때문인가요? ‘봄까지’라는 이름을 쓰는 사람은 봄꽃을 그저 그대로 바라보는 마음입니다. 딱히 다른 데에 얽매일 일이 없습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봄까지꽃’은 겨울이 저물면서 봄이 될 때에 처음 피고, 봄이 저물 무렵까지 피기 때문입니다. 봄이 끝나면 봄까지꽃은 가뭇없이 사라집니다. 이름 그대로 “봄까지 피는 꽃”이 ‘봄까지꽃’입니다. 나는 세 가지 이름 가운데 ‘봄까지꽃’이라는 이름으로 작은 봄꽃을 마주합니다. 봄 내내 이 작은 꽃을 애틋하게 바라보면서 아끼려는 마음입니다. 4348.4.7.불.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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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07 16: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숲노래 2015-04-07 17:09   좋아요 0 | URL
저도 한동안(2010년까지) 봄까치꽃으로 잘못 알았어요.
그러다가 강운구 님이 쓴 글을 읽고 처음으로 알아차렸고
블로그 이웃님도 알려주셨고,
저 스스로 자료를 찬찬히 찾아보고
시골마을 할매와 할배한테 여쭙기도 하면서
이 꽃이름을 비로소 제대로 알았습니다.

그러니, 저도 고맙게 배워서 안 이름이라
얼마든지 둘레에 퍼뜨려 주셔도 되어요.

저로서는 참으로 고마운 일이랍니다 ^^
수녀님인 시인이 시에서 `치`로 쓰시는 바람에
갑자기 널리 퍼졌는데
그 수녀님이 `지`로 제대로 적으셨다면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하고 생각해 보곤 해요.

그런데, 그 수녀님이 시에 이 꽃 이야기를 안 쓰셨으면
저도 `봄까지꽃`이라는 이름을 아는 오랜 여행길을 걷지 못했겠구나 싶기도 해요~

2015-04-11 22: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숲노래 2015-04-12 00:03   좋아요 0 | URL
`일제`라고도 할 테지만,
한국 지식인과 학자 스스로 생각이 깊지 않은 탓이 짙어요.
왜냐하면, 예전에는 식민지라서 그랬다고 하지만,
오늘날에도 안 고치는 모습을 보면 `식민지 탓`은 할 수 없거든요.

저도 나중에서야 배웠지만
`며느리밑씻개` 같은 풀이름도 일본 이름을
엉터리로 아직까지 그대로 쓰는 풀이름이에요.

그러나, 풀이름뿐 아니라, 여느 말투도
`한국 말투`를 제대로 쓰는 사람이 아주 드물어요..

2015-04-13 10: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숲노래 2015-04-13 12:54   좋아요 0 | URL
네, 저도 그런 말을 하는 분을 참 많이 보았습니다.
제가 사는 이곳 전남 고흥에서도
들꽃 사진 찍는 분들 가운데 `봄까지꽃`으로 이름을 바로잡는 사람을
아직 한 사람도 못 보았습니다.

`개불알풀`이라는 이름이 얼마나 `멋지냐(?)`면서 그런 이름을
누가 어떻게 붙였든 아랑곳하지 않는 사람이 대단히 많습니다.

곰곰이 헤아려 보면,
풀이름뿐 아니라, `여느 한국말`도 제대로 안 살피는 사람이 아주 많고,
이는 `지식 있는 분`한테서 쉽게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애써 주시는데,
부디 마음 다치지 않으시기를 빌어요.
꽉 막힌 분을 보시더라도
너그러이 헤아려 주셔요.

그야말로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