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리빵 6
토리노 난코 지음, 이혁진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1년 9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496



새와 사람이 사는 곳

― 토리빵 6

 토리노 란코 글·그림

 이혁진 옮김

 AK커뮤니케이션즈, 2011.9.25.



  나무가 없는 곳에는 새가 없습니다. 나무가 없으면 새가 깃들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나무가 있는 곳이어야 새가 있습니다. 나무가 있어야 새가 깃들 곳이 있기 때문입니다.


  새는 나뭇가지에 앉아서 날개를 쉽니다. 짝을 찾아서 노래를 하고, 짝을 찾지 않아도 노래를 합니다. 나무에 사는 벌레를 살피며 콕콕 찍어서 먹고, 짝을 지어 알을 낳을 즈음에는 깃털과 잔가지를 그러모아 둥지를 엮습니다.


  숲이 있을 때에 나무가 있고, 나무가 있을 때에 새가 있으며, 새가 있을 때에 노래가 있습니다.



- 어차피 아무 데도 갈 수 없다. 그저 매일을 살아간다. 평범한 풍경 달력이 사실은 무척 좋았다 … 국내선을 타고 훗카이도 상공을 날았을 때, 나는 이미 어디든 원하는 곳에 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계절의 방’의 원형은 옛날에 살던 작은 마을의 작은 보육원 홀이다. 나의 일부는 지금도 여전히 그곳에 머무르며, 아직 보지 못한 세계를 올려다보고 있다. (3∼4쪽)





  나무가 없는 곳에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나무가 없으면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나무가 없어도 사람들은 잘만 살 수 있는 듯이 여깁니다. 집이나 동네에 나무 한 그루 없으면서 연필과 종이와 책을 쓰고, 나무 한 그루 없는데 책걸상을 쓰며, 나무 한 그루 없는데 참말 이것저것 다 하는 듯합니다.


  사람은 나무그늘에서 더위를 식힙니다. 사람은 나무열매를 따서 먹습니다. 사람은 마른가지를 그러모아 불을 지핍니다. 사람은 우람한 나무를 베어 집을 짓습니다.


  숲이 있을 때에 나무가 있고, 나무가 있을 때에 사람이 있으며, 사람이 있을 때에 삶이 있습니다.



- 주택가를 조금 벗어난 곳에는 오래된 커다란 감나무가 여기저기 남아 있다. 옛날에는 열매로 곶감을 만들었을 테지만, 지금에 와선 일부러 올라가 따려는 사람도 없어져 열매가 푹 익는다. 다양한 새들을 먹이고 있는 모양이다. 먹을 만큼 먹은 새들이 떠나가고 빨갛고 투명한 열매에 아쉬운 듯 머뭇거리는 석양빛이 비치면, 큰 나무 한가득 등불이 켜진다. (12쪽)




  토리노 란코 님이 빚은 만화책 《토리빵》(AK커뮤니케이션즈,2011) 여섯째 권을 읽습니다. 만화책 《토리빵》을 빚은 아가씨는 새를 아끼고 보살핍니다. 사람이 굳이 새한테 먹이를 챙겨 주지 않아도 될 노릇이지만, 도시에서 새는 먹이를 찾기 어렵습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사람들이 도시를 이루려고 숲을 밀고 들을 짓밟았기 때문이에요. 숲이 그대로 있으면 새는 먹이 걱정이 없이 오붓하게 어울려 지낼 테지만, 숲이 사라지거나 망가지니까 새는 겨우내 힘든 하루를 보냅니다.


  새는 ‘공장에서 찍은 것’을 못 먹거나 안 먹습니다. 새는 숲이나 들에서 난 것을 먹습니다. 아주 마땅합니다. 사람은 무엇을 먹을까요? 사람은 공장에서 찍은 것도 더러 먹을 수 있으나, 사람도 숲과 들에서 난 것을 먹습니다. 숲과 들이 있어야 집을 짓고 밥을 지으며 옷을 지어요.



- 고양이는 추우면 달라붙는다. 십자매와 동박새도 달라붙는 걸 좋아한다. 참새는 무리지어 있지만 미묘한 간격을 유지. 그리고, 오리는 물가 블록을 좋아한다. 푹신푹신하니까 함께 달라붙어 있으면 따뜻할 텐데, 라고 생각해 만져 봤더니 표면이 얼었다. 서로 달라붙는 게 따뜻한 것은 열이 방출된다는 증거. 물새의 단열 효과는 완벽하다! (33쪽)





  숲에서 삶을 짓던 사람은 언제나 나무를 아끼면서 새를 이웃으로 삼았습니다. 새를 살가운 이웃으로 삼은 사람은 새가 들려주는 노래를 듣다가 이 노랫소리를 슬기롭게 익히기도 합니다. 새가 서로 속삭이는 말을 귀여겨들었으니 이 말을 똑같이 노래할 수 있어요. 예전에는 새 노랫소리를 내면서 새를 끌어들일 줄 아는 사람이 퍽 많았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어떤 소리를 흉내낼까요? 자동차 달리는 소리를 흉내낼까요? 승강기가 오르내리는 소리를 흉내낼까요? 텔레비전에서 흐르는 대중노래를 흉내낼까요? 텔레비전에 자주 나오는 사람들 목소리를 흉내낼까요?


  가만히 돌아보면, 예전에는 새노래뿐 아니라 바람노래를 고스란히 따라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풀잎이 사각이는 소리를 낼 줄 아는 사람이 많았고, 개구리나 매미가 노래하는 소리라든지, 풀벌레가 노래하는 소리를 낼 줄 아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 삼백초와 함께 골칫거리 취급을 받는 쇠뜨기이지만 나는 꽤 좋아한다. 이런 ‘분해놀이’도 할 수 있고. 예전에 도쿄에서 쇠뜨기로 가득 찬 공터를 본 적이 있다. 민들레 한 포기도 없어, 완벽한 진녹색! 지나가는 사람들은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쇠뜨기는 오래되어 말라붙은 고무처럼 딱딱하니까 누군가 들어가서 밟았다면 이렇게 멋진 모습으로 남아 있을 수는 없겠지. 초여름이 되면 쇠뜨기는 너무 자라서 푸석푸석해지고 만다. 그것은 봄에만 볼 수 있는 정원. 사람도 새도 꽃도 들어가서는 안 되는, 완벽한 녹색의 성역. (68쪽)





  새봄이 된 사월 첫머리에 들마실을 하면서 뱀밥을 뽑아서 먹습니다. 땅을 뚫고 솟은 모습인 쇠뜨기는 싱그러우면서 맑은 맛입니다. 뱀밥은 사람도 즐기지만 벌레도 즐겨요. 속속 솟은 쇠뜨기를 가만히 살피면, 벌레 먹은 자리가 꽤 있습니다.


  벌레 먹은 풀잎일수록 맛난 풀잎이라는 뜻입니다. 벌레가 잘 안 먹는 풀잎이라면 사람한테도 그리 맛있지 않은 풀잎이라는 뜻입니다. 벌레 먹는 열매도 사람한테 맛난 열매입니다. 벌레 안 먹는 열매라면 사람한테도 안 맛있을 만한 열매라는 뜻이에요.


  사람이 살 만한 곳은 언제나 새가 살 만한 곳이었습니다. 새가 살 만한 곳도 언제나 사람이 살 만한 곳이었어요. 그러면, 오늘날 도시에 가득한 아파트나 다세대주택은 새한테 얼마나 살 만한 곳이 될까요. 맨땅이 없는 도시는 새한테 얼마나 즐거운 곳이 될까요.


  우리 집 처마에 있는 제비집은 새끼 제비가 고스란히 물려받아서 이듬해에 새로 찾는 터전이 됩니다. 물려줄 만한 집을 튼튼하게 지어 기쁘게 물려주는 제비입니다. 우리 사람은 어떤 집을 마련해서 어떤 아이한테 어떻게 물려주는지 궁금합니다. 4348.4.4.흙.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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