읍내마실을 다녀오면



  읍내마실을 다녀오면 아이들은 졸립다. 졸리면서 배고프다. 작은아이는 으레 버스에서 잠드니 아버지가 안아서 내려야 하고, 집까지 짐을 짊어지면서 땀을 쪽 뺀다. 그런데, 작은아이는 잠자리에 눕히면 눈을 번쩍 뜬다. 버스에서 내려 집까지 영차영차 안고 오는 동안 눈을 질끈 감으며 자더니, 어떻게 자리에만 눕히면 벌떡 일어날 수 있을까. 아무튼, 짐을 풀어 냉장고로 옮기면서 곧바로 밥을 끓인다. 마당에는 걷어야 하는 빨래가 있다. 다리와 등허리가 뻑적지근하지만 밥에 온마음을 쏟는다. 이리하여 새 밥과 국과 반찬을 마무리짓고 밥상에 올려 아이들을 부르면 신나게 퍼먹는다. 이즈음 마당으로 가서 빨래를 걷는다. 덜 마른 옷가지는 옷걸이에 꿰어 방 곳곳에 넌다. 이러는 동안 꽤 오래된 모습을 가만히 떠올린다. 어머니는 저자마실을 다녀오고 나서 다리쉼을 할 겨를이 없이 이모저모 챙겨서 제자리에 놓고는 곧바로 저녁을 차린다. 저녁을 차려서 우리한테 먹도록 하고는 함께 수저를 들지 않고 다른 집일을 건사한다. 툇마루에 넌 빨래를 걷고, 꽃그릇에 물을 주고 이것저것 집일이 많다. 나는 밥을 먹으면서도 이 모든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니, 밥술을 들면서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데, 어머니는 이때에 한 번도 집일을 시키지 않았다. 집일을 거들면 “하지 마. 안 해도 돼.” 하고 짧게 말씀할 뿐인데, 이 말을 한귀로 흘리고 그대로 집일을 거들면 “고마운데, 미안해서 어떻게 시키니.” 하고 덧붙이신다.


  옛 생각에서 오늘 이 자리로 돌아온다. 우리 집 두 아이는 밥을 웬만큼 배불리 먹었는지, 마루와 마당을 넘나들면서 개구지게 뛰논다. 4348.4.3.쇠.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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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윤재 2015-04-03 22:04   좋아요 1 | URL
어릴적 바닥에 잠들면 이불이 펴질때까지 아버지가 안아주셨습니다. 아버지가 안아주시는게 왜그리 좋은지 우리는 경쟁적으로 자는 척 했습니다. 오늘밤에도 우리 아버지는 구름이불을 목까지 올려주고 이젠 흰머리가 더 많은 늙은 딸내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겠지요.

숲노래 2015-04-04 01:20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아이를 따스한 사랑으로 어루만지는 손길이란 참으로 아름답구나 싶어요. 저도 그 따사로운 사랑이 어리는 손길이 되도록 삶과 생각과 몸짓을 슬기롭게 가다듬으려고 해요. 아침저녁으로 고운 생각을 가슴에 심어야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