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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티풀 선셋 ㅣ 코다마 유키 단편집 2
코다마 유키 지음 / 애니북스 / 2011년 7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487
저물녘에 고운 해를 보다
― 뷰티풀 선셋
코다마 유키 글·그림
이정원 옮김
애니북스 펴냄, 2011.7.8.
여덟 살 어린이가 휘파람을 불려고 합니다. 여덟 살이어도 휘파람을 솜씨있게 잘 부는 아이가 있고, 아직 휘파람을 어떻게 내는지 알아채지 못하는 아이가 있습니다. 마흔 살이 되어서야 비로소 휘파람을 부는 어른이 있고, 여든 살이 되어도 도무지 휘파람을 못 부는 어른이 있습니다.
휘파람을 불 수 없는 사람이 있을는지 모릅니다. 나도 마흔 살까지는 내 혀와 입술과 입으로는 휘파람을 못 불 줄 알았어요. 그런데 마흔 줄을 넘어선 뒤 숨쉬기를 새롭게 가다듬던 어느 날, 내 입에서 휘파람 소리가 터졌습니다. 휘파람 소리가 끊이지 않습니다.
마흔 해 넘게 휘파람하고 담을 쌓았는데, 나는 어떻게 하루아침에 휘파람을 불 수 있을까요? 이제껏 내 혀와 입술과 입으로는 휘파람을 불 수 없겠거니 여겼는데, 나는 어떻게 이 혀와 입술과 입으로 휘파람을 불 수 있을까요?
- ‘아아, 안 되겠어. 눈길이, 눈길이 자꾸 그쪽으로 가 버리는걸.’ (13쪽)
- ‘어느 순간부터 무척이나 냉정해져 있었다. 평소에 짝사랑했던 선생님과 느닷없이 드라이브를 하게 되었으니 정신없이 떨렸었지만, 그것은 끓는점에 닿아 있던 내 마음을 단번에 영하로 떨어뜨렸다. 내가 타기 전부터 컵 거치대에 놓여 있던 빈 음료수 캔. 거기에 남아 있는 붉은 립스틱 자국.’ (47∼48쪽)


다섯 살 어린이가 춤을 추려고 합니다. 누구한테서 배운 춤이 아니라 저절로 나오는 춤입니다. 텔레비전에서 본 춤이 아니라 스스로 우러나오는 춤입니다. 우리는 연예인이나 춤꾼이 보여주는 어떤 ‘틀에 박힌’ 몸짓을 따라해야 하지 않습니다. 이런 춤 저런 춤을 학원을 다니면서 배워야 하지 않습니다.
춤은 늘 우리 몸에서 흐릅니다. 우리가 스스로 춤을 안 느끼려고 하니 춤을 못 춥니다. 우리가 스스로 춤을 생각하려 하지 않으니 춤을 안 춥니다.
남이 하는 몸짓을 따라할 때에 춤이 되지 않습니다. 이때에는 시늉이나 흉내일 뿐입니다. 춤은 시늉도 아니고 흉내도 아닙니다. 춤은 그저 춤입니다. 내 몸에서 흐르는 기운을 제대로 바라보면서 받아들여 살릴 때에 춤이 됩니다.
노래도 이와 같습니다. 말도 이와 같습니다. 생각과 사랑도 모두 이와 같습니다. 언제나 나한테 있어서 고요히 흐르는 결을 읽을 수 있어야, 휘파람을 불고 춤을 춥니다. 내 숨결을 차분히 헤아릴 수 있어야, 꿈을 꾸고 사랑을 합니다.
- ‘아이들은 낮에 어른들은 밤에 노인들은 아침에 논다. 그럼 중학생은? 그들이 가장 빛나는 시간은 언제일까.’ (5쪽)
- “그, 그 정도 키스가 뭐 어떠냐고 생각했겠지만! 중학생이라고 얕보는 거 아냐!” (80∼81쪽)

코다마 유키 님 만화책 《뷰티풀 선셋》(애니북스,2011)을 읽습니다. 일본에서 나온 책이름이 영어로 ‘뷰티풀 선셋’이었으면, 한국에서도 이를 그대로 영어로 적을 수 있을 테지만, ‘아름다운 저녁놀’이라든지 ‘해질녘 고운 빛’ 같은 이름으로 옮길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일본사람은 이곳저곳에 아무렇게나 툭툭 영어를 쓰거든요.
그런데, 한국말을 쓰려고 해도 한국말사전이 몹시 얄궂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저물녘’ 한 마디는 한국말사전에 나오지만, ‘해질녘’과 ‘동틀녘’은 안 나옵니다. 더군다나 ‘해지다’라는 낱말은 한국말사전에 없고, ‘동트다’와 ‘저물다’ 두 가지만 한국말사전에 나와요. 그렇지만 ‘동트다 + 녘’은 ‘동틀 녘’으로 띄어서 적으라 하고, ‘저물다 + 녘’은 ‘저물녘’처럼 붙여서 쓰라고 하는 정부 맞춤법이에요. 아주 뒤죽박죽인 한국말사전이라서, 정부 맞춤법대로 하자면 ‘해 질 녘, 동틀 녘, 저물녘’처럼 적어야 하는데, 참으로 말이 안 되는 맞춤법입니다.
아무튼, 바보스러운 한국말사전은 덮고, 우리는 아름다운 ‘해질녘’과 ‘동틀녘’과 ‘저물녘’을 누리면 됩니다.

- ‘똑같이 살아 있는 인간인데도 이렇게나 감촉이 다르다니. 할아버지도 예전엔 아키토처럼 뜨겁고 믿음직한 몸으로 살아갔겠지.’ (114쪽)
- ‘아담과 이브 사이에, 깊디깊은 틈이 있을까?’ (148쪽)
해질녘에 붉게 물드는 하늘빛이 아름답습니다. 동틀녘에 붉게 물드는 하늘빛도 아름답습니다. 저물녘에 차츰 붉게 물들면서 수없이 새로운 빛깔로 달라지는 하늘빛은 그지없이 아름답습니다.
그러면, 이 빛은 왜 우리한테 아름다울까요. 해가 뜨고 지는 빛은 왜 우리한테 뜨겁게 파고들까요. 햇빛은 우리한테 어떤 숨결로 스며들어서 새로운 느낌을 자아낼까요.
만화책 《뷰티풀 선셋》에 나오는 사람들이 웃거나 웁니다. 기쁨에 웃고 슬픔에 웁니다. 한창 웃다가도 아주 조그마한 일에 걸려서 그만 웁니다. 한창 낯을 찡그리면서 슬프다가도 아주 조그마한 일을 겪으며 갑자기 웃습니다.

- ‘이 아이도 저 아저씨도 저 사람도 모두 저마다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누군가가 있겠지. 입 냄새 나는 이 사람조차? 이 전철에는 수많은 사랑이 들어차 있는지도 몰라.’ (158∼159쪽)
- ‘켄이 혼자 노는 모습은 지금 봐도 무척이나 즐거워 보여서, 나도 모르게 …….’ (179쪽)
웃음과 울음 사이에는 아무것이 없습니다. 어떤 실마리가 있어야 웃지 않고, 어떤 실타래가 엉켜서 울지 않습니다. 나 스스로 웃고 싶기에 웃습니다. 나 스스로 울고 싶기에 웁니다. 아무리 기쁜 일이 있어도 웃지 않으면서 기쁨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어요. 아무리 슬픈 일이 있어도 울지 않으면서 슬픔을 삭이는 사람이 있어요. 왜냐하면, 기쁨도 슬픔도 모두 우리 삶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삶을 그대로 맞아들이니 따로 웃음이나 울음이 아니더라도 기쁨을 기쁨대로 누리고, 슬픔을 슬픔대로 맛봅니다. 이러면서 찬찬히 사랑으로 나아갑니다. 어느 흐름에도 들뜨지 않으면서 흐르는 사랑으로 나아갑니다.
이리저리 뭇느낌에 휘둘리다가 어느덧 사랑길로 접어드는 사람은 고요하면서 차분하게 마음을 다스립니다. 고요하면서 차분한 마음이 되면, 웃음짓는 낯이나 눈물짓는 낯이 아니면서 아름다운 몸짓이 되어요.
네 사랑과 내 사랑이 만나고, 내 사랑이 네 사랑한테 갑니다. 우리 사랑은 이곳에서 손을 맞잡습니다. 붉게 물들면서 아름답게 지는 해를 바라보듯이, 우리는 고요하고 차분하게 사랑을 짓는 아름다운 사람이 됩니다. 4348.3.23.달.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