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넋 삶'을 읽는 분이 미리 알아둘 대목 :
이 글은 1번 글부터 차근차근 이어지는 글이니
어느 하나만 따로 떼어서 읽으면 실타래가 엉킵니다.
실타래가 엉켜도 그냥 읽으려 한다면
그대로 하셔도 괜찮으나,
말과 넋과 삶을 제대로 읽고 싶다면,
1번 글부터 차근차근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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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넋·삶 39 이야기와 말·글
귀로 들을 수 있도록 흐르는 결이 있습니다. 이러한 결을 ‘소리’라고 합니다. 소리는 사람이 입으로 낼 수 있고, 손이나 발로 낼 수 있으며, 눈을 깜빡일 적에도 조그마하지만 언제나 소리가 납니다. 연필을 손에 쥐고 종이에 무언가 끄적일 적에도 소리가 납니다. 나뭇잎이 바람 따라 살랑일 적에도 소리가 납니다. 입으로 소리를 질러서 무엇을 알리기도 합니다.
입으로 소리를 내되, 이 소리에 ‘생각’을 담으면 ‘말’이 됩니다. 그러니까, ‘말’이란 “생각을 담은 소리”입니다. 생각을 담지 않으면 그냥 ‘소리’일 뿐입니다. 생각을 느끼지 못하는 말이 둘레에서 퍼지거나 넘치면, 이때에는 이웃이 들려주려는 생각을 맞아들이지 못하니까 ‘시끄럽다’고 여깁니다.
“생각을 담은 말”을 ‘귀’가 아닌 ‘눈’으로 읽거나 보도록 그림으로 나타내면 ‘글’이 됩니다. 그러니까, ‘글’이란 “그림으로 담은 말”이면서 “생각을 그림으로 담은 말”입니다. 사람들이 멀리 떨어졌으면 말로 생각을 나누기 어렵습니다. 이때에는 종이에 글을 써서 띄웁니다. ‘글월(편지)’이라고 하지요. 인터넷에서 띄우는 글월은 ‘누리글월(누리편지)’입니다. 그리고, 한 사람이 쓴 글을 수많은 사람한테 널리 알리려고 ‘책’이나 ‘신문’을 엮습니다.
‘말’이나 ‘글’은 “낱낱으로 떨어진 채 흐르는 생각조각”입니다. 글을 엮어서 글월을 이루듯이, 말을 엮어서 ‘이야기’를 이룹니다. 글은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었고, 말은 사람과 함께 태어났습니다. “낱낱으로 떨어진 채 흐르는 생각조각”을 엮어서 서로 ‘생각을 널리 주고받으면서 키우거나 북돋우려는 뜻’으로 이야기를 짓습니다. ‘이야기’에는 “사람이 살아오면서 가꾸거나 나누거나 북돋우거나 살찌우는 수많은 삶”이 깃듭니다.
어른이 아이를 낳아 어버이가 되면, 아이한테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야기란 삶인 만큼, 어른(어버이)이 아이한테 이야기를 들려줄 적에는 ‘삶을 물려준다’고 할 만합니다. 예부터 이야기(옛이야기, 옛날이야기)는 아이가 삶을 새롭게 받아들이고 배울 수 있도록 돕는 ‘말월(조각으로 있던 말을 엮은 꾸러미)’입니다. 아이들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마음이 자랍니다. 이야기란 ‘마음밥’입니다. 마음을 살찌우는 밥이 되는 이야기입니다. 이야기는 아이만 듣지 않습니다. 다른 어른도 이야기를 함께 듣습니다.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어른과 아이는 삶을 새롭게 바라보고, 삶을 새롭게 가꾸는 슬기를 더 생각하며, 삶을 새롭게 누리는 길을 다시금 기쁘게 헤아립니다.
곧, 말을 하거나 글을 쓸 적에는 ‘이야기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이야기가 되도록 하지 못하는 말이나 글이라면, ‘낱낱으로 흩어진 채 떠도는 생각조각’이 될 뿐입니다.
아무 말이나 할 수 없고, 아무 글이나 쓸 수 없습니다. ‘생각을 담은 소리’가 꽃처럼 피어나도록 말과 글을 가꿀 수 있어야 합니다. ‘생각을 담은 소리’를 알뜰살뜰 엮어서 ‘이야기꽃’이 되도록 보살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이야기잔치’를 나눌 수 있습니다. 이야기로 잔치를 나누어요. 그리고, 누구나 즐겁고 홀가분하게 생각을 펼치면서 ‘이야기마당’을 엽니다. 서로 사랑을 주고받으려는 뜻으로 이야기마당을 열고, 이야기자리를 마련합니다.
이야기를 담은 글을 실을 때에 비로소 책입니다. 이야기를 담은 말을 들려줄 때에 비로소 강의요 교육입니다. 이야기가 없이 ‘조각난 지식’만 담는 교과서라면, 이런 교과서로 아이들을 길들이는 학교에서는 ‘사람’이 아닌 ‘종(노예)’을 부리는 셈입니다. 4348.3.1.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람타 공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