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넋·삶 36 ‘밭’과 ‘마당’



  어느 한 가지가 모인 곳을 ‘밭’이라 합니다. 배추밭이나 무밭이나 능금밭이나 포도밭처럼 ‘밭’이라는 낱말을 씁니다. 텃밭이라는 데에 온갖 푸성귀를 심거나 가꾸기도 하지만, 밭은 으레 어느 한 가지가 자라기에 너그러운 품입니다. 어느 한 가지가 튼튼하게 자라면서 다른 여러 가지도 이 밭에서 함께 자랄 수 있습니다. ‘마당’은 밭과 달리 모든 것이 모여서 어우러지는 곳입니다. 마당은 놀이터이면서 일터입니다. 마당은 삶터이면서 사랑터입니다. 마당은 이야기터이면서 노래터요 춤터입니다.


  밭은 ‘터’가 아닙니다. 밭은 ‘바탕’입니다. 밭이 있기에 모든 목숨이 자랍니다. 밭이 있어서 모든 목숨이 새로운 숨결을 얻어서 씩씩하게 태어나거나 깨어날 수 있습니다.


  밭에는 씨앗이 깃듭니다. 씨앗을 심는 곳은 밭입니다. 씨앗은 마당에 심지 않습니다. 씨앗을 마당에 심었다가는 그만 밟혀서 죽거나, 눌려서 깨어나지 못해요. 왜냐하면, 마당은 온갖 것이 날뛰거나 춤추면서 움직이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밭에 씨앗을 심듯이, 어미는 제 몸과 마음에 씨앗을 심습니다. 마당에서 온갖 것이 어우러지듯이, 아비는 제 몸과 마음을 넓게 펼칩니다. 흔히 하는 말로 ‘어머니는 너른 사랑’이라 하지만, 제대로 말하자면 ‘어머니는 고운 꿈’이라 해야 합니다. 어머니는 꿈입니다. 아버지가 사랑입니다. 어머니는 꿈으로 모든 길을 차근차근 아이(씨앗, 새로운 목숨)한테 물려줍니다. 어머니는 제 품에 씨앗으로 심어서 키우는 아이한테 새로운 숨결을 빚어서 베푸는 동안, 앞으로 밤에서 낮으로 나아갈 적에 마음에 담을 꿈을 가르칩니다. 아이는 새로운 씨앗 하나에서 깨어나면서 맨 먼저 고요한 밤인 어머니 품에서 꿈을 물려받습니다.


  꿈을 물려받고 열 달을 자란 목숨이 밤에서 낮으로 나오면서 ‘아기’라는 몸을 입습니다. 이제 아기는 어머니 품을 떠나 아버지 가슴으로 나옵니다. 아버지는 어머니 품에서 열 달을 자라면서 ‘갓난쟁이’로 웃고 우는 아기를 사랑으로 다스립니다. 다스리지요. 아기가 천천히 아이로 거듭나면서 스스로 뒤집고 기고 서고 걷고 달리고 뛰고 노래하고 춤추고 말을 짓도록 다스리지요. 아버지는 아이가 짓는 모든 삶을 너그럽게 받아들입니다. 아버지는 아이가 지으려는 모든 꿈을 넉넉하게 맞아들입니다. 아이는 아버지 가슴에서 뛰놀면서 해맑게 자랍니다. 아이는 아버지 가슴에서 신나게 뛰고 달리면서 아름답게 자랍니다.


  밭에서 태어난 숨결은 마당에서 큽니다. 밭에서 키운 숨결은 마당에서 홀로섭니다. 밭에서는 홀로서지 못합니다. 밭에서는, 씨앗이 눈을 떠서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도록 합니다. 마당에서는, 눈을 떠서 새로운 삶으로 나아간 씨앗이 한껏 춤추고 노래하면서 모든 사랑을 짓고는 어깨동무하면서 누리도록 합니다.


  ‘보금자리’가 되려면 밭과 마당이 함께 있어야 합니다. 부동산이나 재산이 되는 집이 아닌, 보금자리가 될 만한 곳에는 밭과 마당이 나란히 있어야 합니다. 밭에 씨앗을 심습니다. 마당에서 뛰놉니다. 밭 한쪽에서 나무가 쑥쑥 오르면서 그늘을 드리우고 열매를 맺습니다. 마당 한쪽에 살림살이를 놓고 집안을 가꿉니다. 밭일은 어머니 몫입니다. 마당일은 아버지 몫입니다. 밭놀이는 어머니가 물려줍니다. 마당놀이는 아버지가 물려주지요.


  밭도 없고 마당도 없는 도시 사회에서는, 밭도 마당도 헤아리지 않는 아파트에서는, 사람이 사람다운 길을 갈 수 없습니다. 조그마하든 커다랗든, 밭과 마당을 생각해서 우리 보금자리에 마련해야 합니다. 아이가 아이답게 자라고 어른이 어른답게 살려면, 우리 보금자리에는 ‘집’과 ‘밭’과 ‘마당’이 있어야 합니다. 4348.2.28.흙.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람타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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