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찰을 전하는 아이 푸른숲 역사 동화 1
한윤섭 지음, 백대승 그림, 전국초등사회교과 모임 감수 / 푸른숲주니어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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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84



역사를 다루는 ‘동화’와 ‘이야기’

― 서찰을 전하는 아이

 한윤섭 글

 백대승 그림

 푸른숲주니어 펴냄, 2011.10.31.



  한윤섭 님이 쓴 《서찰을 전하는 아이》(푸른숲주니어,2011)를 읽습니다. 이 책은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나던 조선 사회 가운데 봇짐장수가 바라보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양반이나 임금이나 지식인 눈높이에서 바라보는 이야기도 아니고, 농민 눈높이에서 바라보는 이야기도 아닙니다. 여러 신분과 계급을 이루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쪽 물건을 저쪽으로 잇고, 저쪽 물건을 이쪽으로 잇는 사람 이야기가 천천히 흐릅니다.


  봇짐장수는 조선 사회에서 무엇을 바라보았을까요. 봇짐장수가 봇짐에 넣어 이쪽과 저쪽을 이은 글월에는 어떤 생각이 깃들었을까요. 글월을 주고받는 사람들은 어떤 마음을 품으면서 어떤 뜻을 펼치려 할까요.



.. “피노리에서 잡히지 않았어도 아마 다른 곳에서 잡혔겠지. 내 운이 다한 것뿐이다.” “좋은 세상 만들겠다고 하셨잖아요! 양반 천민 없는 평등하고 살기 좋은 세상, 행복한 세상을 만드셔야지요.” “그 말이 듣기 좋구나. 아이야, 고맙다. 이제 가거라.” “장군님을 만나러 오는 동안 처음으로 행복했어요.” “그래, 나도 널 만나서 행복하구나.” ..  (155쪽)



  글월을 나르던 봇짐장수는 그만 길에서 죽습니다. 봇짐장수가 건사하는 아이가 제 아버지가 못 다한 일을 마무리지으려 합니다. 아이는 거칠고 고단한 길을 걷고 걸어서 비로소 뜻을 이룹니다. 그런데, 봇짐장수 아이가 건넨 글월을 받은 ‘전봉준’은 글월에 적힌 이야기를 따르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책에서는, 함께 일하는 동무(동지)를 믿지 않으면 어떡하느냐고 말했다고 적습니다.


  틀린 말은 아니라고 느낍니다. 함께 일하는 사람을 안 믿으면 누구를 믿을까요? 그러나, 함께 일하는 사람 가운데 거짓쟁이가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 눈길이 닿지 않도록 조용히 글월을 띄우고 받’지요. 함께 일하는 동무를 믿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함께 일하는 사람을 제대로 다스리라는 뜻으로 글월을 주고받아요.



.. “아버지, 산에는 왜 다녀온 건가요?” “스님이 눈이 침침해져 책을 못 보신다는 소식을 듣고, 안경을 드리러 온 것이다.” “정말 안경을 드리러 온 것뿐이에요?” 내가 믿지 못하겠다는 투로 말하자, 아버지가 걸음을 멈추고 나를 보았다. “그래, 네 짐작이 맞다. 또 다른 할 일이 있어서 온 것이다. 스님의 서찰을 어떤 분에게 전해야 하는 일이다.” ..  (16쪽)



  한윤섭 님이 쓴 책은 《서찰을 전하는 아이》입니다. 그렇다면, 이 책에서 ‘글월(서찰)’은 아주 커다란 고빗사위라고 할 만합니다. 아이가 목숨과 똑같이 여기면서 건사한 글월입니다. 그리고, 아이가 아닌 아이 아버지가 이 글월을 건넸을 적에도 늘 목숨을 걸고 건넸을 테지요. 다시 말하자면, 글월을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 모두 목숨을 겁니다. ‘함께 일하는 사람’만 대수로이 여길 대목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한윤섭 님은 바로 이 대목, 아이가 전봉준한테 글월을 건네서 전봉준이 글월에 따라 움직이는 얼거리를 더 깊게 차근차근 다루어야 하지 않았을까요? 그저 한 줄로 “내가 나와 함께한 동지도 믿지 못한다면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느냐(155쪽)” 하고 적으며 끝낼 만한 이야기책은 아니라고 느낍니다. 왜냐하면, 글월을 띄운 스님도, 글월을 건네는 봇짐장수도 ‘함께하는 동지’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한 사람은 믿고 다른 한 사람은 못 믿은 셈인데, 이렇게 어영부영 끝을 맺는다면, 이 책을 읽을 아이들은 무엇을 느끼거나 생각할까 아리송합니다.


  역사를 다룬 동화라고 해서 ‘역사에 기록된 대로 끝을 맺어’야 하지 않습니다. 역사를 다룬 동화이든 생활을 다룬 동화이든, ‘생각’을 넓혀서 ‘이야기’를 담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얼마든지 ‘전봉준이 거짓쟁이(배신자)를 시골로 돌려보내고 새로운 뜻을 품으며 동학혁명을 다시 일으키는 얼거리’로 이 이야기를 끝맺을 수 있습니다. 거짓쟁이 한 사람은 찾아내어 시골로 돌려보냈으나, 다른 거짓쟁이가 또 있다는 얼거리로 이야기를 짤 수 있습니다.



.. “나이가 열셋이면 나와 동갑이다. 동갑이면 다른 사람들은 친구라고 한다. 다음에 만나거든 그때는 친구로 지내자.” 그 말에 놀라 내가 말했다. “도련님은 양반입니다.” “아니다, 나도 친구가 생겨서 좋다. 이제 차츰 세상도 그렇게 바뀔 거라고 하더라.” … “이 세상이 어찌 되려고 관군이 일본군과 합세해 조선 사람을 그렇게 죽인다는 말이냐?” 주막 아주머니의 말에 또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아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어 주막 아주머니에게 내밀었다. 그러자 주막 아주머니가 손사래를 쳤다 ..  (100, 124쪽)



  《서찰을 전하는 아이》를 더 살펴보면, 이 책을 이루는 뼈대는 ‘걸어서 삼천리강산을 돌아다니는 봇짐장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 책을 보면, 봇짐장수가 이 땅을 두루 밟고 돌아다니면서 ‘무엇을 보았’고 ‘무엇을 느꼈’으며 ‘무엇을 생각하는’가 하는 대목은 거의 안 드러납니다. 어느 철에 돌아다니고, 철마다 어떤 날씨요 들빛이며 마을살이인가 하는 모습을 하나도 안 그립니다.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는 오직 ‘주막’ 언저리입니다. 주막에서 하룻밤 묵는 이야기만 잇달아 나옵니다.


  봇짐장수가 주막에서 잠을 자기도 했을 테지만, 주막 아닌 데에서 한뎃잠도 으레 잤을 테고, 여느 시골집에서도 잠을 잤을 테지요. 봇짐장수 삶이 이 책에 제대로 드러나지도 못했고, 옛날에는 모두 시골 흙길이었을 테고, 숲도 우거졌을 텐데, 숲길과 시골길을 걸어서 다니면서 ‘아이가 삶을 새롭게 읽고 생각하는 이야기’도 한 줄조차 담지 못합니다.



.. “알고 싶은 것이 글자 두 자라고 했으니, 한 자에 한 냥을 쳐서, 나에게 두 냥을 주면 알려주겠다. 결정은 네 몫이다.” 두 냥을 달라니 노인은 도둑이 분명했다. 두 냥이면 이틀 동안 편히 자고, 밥도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 “네가 여기 이렇게 온 것도 그분이 이끄신 거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나 스스로 온 것이다. 춘천으로 가지 않고 아버지가 전하지 못한 서찰을 전달하러 내 발로 온 것이었다 ..  (43, 73쪽)



  아무래도 ‘동학혁명 역사’를 다루어야 한다는 생각에 너무 얽매인 탓이지 싶습니다. 역사동화이니 역사를 다루면 되지만, 역사는 ‘한문 지식을 익힌 지식인이 적은 책에 적힌 이야기’만 역사이지 않습니다. 사람들 입과 입으로 오르내리면서 흐르는 이야기도 역사입니다. ‘기록된 역사’를 다루어야 한다면, 아이들이 굳이 이 책을 읽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기록된 역사’를 잘 갈무리한 다른 책을 읽으면 돼요. 굳이 ‘역사동화’라는 이야기를 쓰는 까닭은 ‘기록되지 않은 역사’와 ‘기록되지 않은 삶’을 새롭게 살피고 살려서, 이를 아름다운 꿈과 사랑으로 들려주면서 아이들한테 마음밥으로 삼도록 할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문학 짜임새’로 본다면 《서찰을 전하는 아이》는 나쁘지 않습니다. 여러모로 훌륭하다고 할 만합니다. 그러나, 봇짐장수 삶이 거의 드러나지 못했고, 1800년대 끝자락 시골사람 삶이 하나도 나타나지 못했으며, 그무렵 삼천리강산 숲과 들이 어떠한가를 그리지 못했으며, 열세 살 아이가 누리면서 느낀 넋을 제대로 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1800년대 끝자락을 살던 ‘양반 아닌 사람이 쓰던 말씨’를 거의 못 살렸습니다. 이 책을 보면 ‘행복’이라는 한자말이 끝에서 자꾸 나오는데, 이런 한자말은 요새나 쓰는 한자말입니다. 옛날 사람들은 ‘기쁨’이라는 한국말을 썼을 테지요. 역사를 다루는 동화라면, ‘오늘날 쓰는 말투’가 아니라 ‘예전에 살던 사람이 쓰던 말투’도 잘 헤아려서 다룰 수 있어야 합니다. 4348.3.13.쇠.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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