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랑 놀자 121] 까만조개



  껍데기가 새까만 조개를 한 꾸러미 얻습니다. 수세미로 껍데기를 박박 문지릅니다. 뻘물이 거의 빠졌다 싶어 커다란 냄비에 넣어 펄펄 끓입니다. 껍데기가 새까만 조개를 끓이니 국물이 파르스름합니다. 어쩜 이런 국물 빛깔이 나올까 늘 놀라면서 소금으로 간을 맞춥니다. 밥상에 국물과 조개를 올리니 아이들이 묻습니다. “까만 조개야?” “응, 까만 조개야. ‘홍합’이라고도 해.” 아이들은 ‘홍합’이라는 말은 못 알아듣습니다. 낱낱으로 뜯어 ‘홍·합’이라 말하니 비로소 알아듣지만, 아이들 눈으로 볼 적에 껍데기가 까만 빛깔이니 ‘까만조개(또는 깜조개)’라는 이름을 써야 제대로 알아보겠구나 하고 느낍니다. 그러고 보면, 어른들은 조개를 두고 ‘조개’라 하기보다 ‘蛤’이라는 한자를 자꾸 쓰려 합니다. 커다란 조개라면 ‘큰조개’라 하면 될 텐데 굳이 ‘대합’이라 하고, 하얀 조개라면 ‘흰조개’라 하면 될 텐데 애써 ‘백합’이라 해요. 꽃과 같이 고운 무늬라 하면 ‘꽃조개’라 할 때에 쉬 알아들을 텐데 왜 ‘화합’이라 해야 하는지 아리송합니다. 4348.3.11.물.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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