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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카코 5
쿄우 마치코 지음 / 미우(대원씨아이) / 2012년 12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478
봄바람이 가볍게 분다
― 미카코 5
쿄우 마치코 글·그림
한나리 옮김
미우 펴냄, 2012.12.30.
이웃집 할아버지가 쪽파를 열 꾸러미 건네주십니다. 열 꾸러미나 되는 쪽파를 한꺼번에 먹을 수 없으니, 울타리를 따라 한 줄로 옮겨심습니다. 우리 집도 이웃집도 모두 시골집이기에, 흙에서 캔 쪽파는 다시 흙을 파서 뿌리를 잘 덮어 주면 두고두고 먹을 수 있습니다. 게다가, 흙에 뿌리를 심으면 줄기(잎)는 다시 올라옵니다. 봄부터 여름을 지나 가을까지 내내 먹을 수 있어요. 쪽파는 뿌리만 살짝 다듬어서 써도 되지만, 알뿌리를 땅속에 그대로 두면서 언제까지나 기쁘게 새로운 잎을 얻을 수 있습니다.
쪽파가 아닌 큰파도 뿌리를 땅에 심으면 꾸준하게 새 잎을 얻습니다. 우리가 먹는 모든 풀은 푸르게 다시 돋기 마련이라, 한 번 심으면 이 아이들은 오래도록 우리한테 고마운 밥이 되어 줍니다. 겨울을 앞두고 꽃이 피고 씨앗이 맺도록 지켜보면, 새로운 씨앗이 퍼지면서 이듬해에는 더 넉넉히 열매를 얻어요.
들딸기도 이와 같습니다. 먹을 수 있을 만큼 훑어서 먹고, 나머지를 그대로 두면 해마다 덩굴을 뻗으면서 이듬해에는 더 넉넉히 열매를 베풀어요. 열매나무도 이와 같지요. 가지치기를 굳이 해야 하지 않습니다. 줄기가 튼튼하고 굵으면서 우람하게 자라도록 돌보면, 열매나무는 해마다 더욱 싱그럽고 맛난 열매를 나누어 줍니다.
- ‘심장이 뛰는 건 달려서 그런 게 아니다.’ (9쪽)
- ‘어제랑 똑같은 시간에 나와 어제랑 똑같이 천천히 걸었다.’ (13쪽)
여덟 살 큰아이와 아침에 쑥을 뜯는데, 큰아이가 묻습니다. “아버지, 왜 여기저기 돌아가면서 뜯어?” “응, 한곳에서만 뜯으면 이 아이들이 더 못 자라잖아. 돌아가면서 조금씩 뜯으면 더 오래 더 많이 뜯을 수 있어.”
많이 심기에 많이 거둔다지만, 많이 거둔다고 해서 모두 다 먹지 못합니다. 모두 다 먹지 못하면 이웃하고 나누거나 다시 흙한테 돌려줍니다. 그러니, 처음부터 굳이 많이 심어야 하지 않습니다. 먹을 만큼 심되, 조금 넉넉히 심으면 됩니다. 즐겁게 누릴 만큼 심고, 즐겁게 돌보면서 봄과 여름을 지냅니다. 즐겁게 돌보아 가을에 거두면, 겨울에 다시금 즐겁게 추위를 나면서 고마운 밥을 누려요.
- ‘한 번도 좋아한다고 말한 적이 없다. 빨간 열매. 아직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다.’ (58쪽)
- ‘카토를 좋아하지만, 진짜 사랑과는 다른 느낌이 든다.’ (67쪽)
- ‘흘러가게 두는 거 그만할래. 이 빨간 구두는 어디에도 날 데려다주지 않으니, 나 스스로 걷기로 했다.’ (69쪽)
쿄우 마치코 님 만화책 《미카코》(미우,2012) 다섯째 권을 읽습니다. 다섯째 권 끝자락을 보면 2013년에 여섯째 권을 곧 선보인다는 광고가 있습니다. 그러나, 2014년을 지나고 2015년이 되어도 《미카코》 여섯째 권은 한국말로 나올 낌새가 없습니다. 출판사에서 곧 내놓겠노라 밝힌 여섯째 권이라도 나와야 할 텐데, 책에 나오는 광고는 그냥 광고로 끝날까요. 아니면, 여러 해 동안 겨울잠을 자던 책이 새봄에 새롭게 나올 수 있을까요.
- “이거, 나오 엄마가 드리래.” “그러고 보니, 둘 다 새엄마네.” (86쪽)
- “괜찮지 않을까? 이치무라 네 일이니까, 네 결정이 제일 옳아.” ‘미도리카와의 침묵은, 좋은 바람을 기다리는 시간 같다.’ (106쪽)
봄바람이 가볍게 붑니다. 삼월 팔일 낮에는 우리 집 마당에서 나비를 처음으로 봅니다. 벌은 지난달부터 보았고, 나비는 어제부터 봅니다. 우리는 우리 집에서 나비를 어제부터 보았지만, 이 나비는 더 일찌감치 다른 곳에서 깨어났을 수 있어요. 아니면, 우리 집 풀숲이나 나무 한쪽에서 조용히 깨어났을 수 있습니다.
이제 무당벌레를 꽤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갓잎과 유채잎은 올해에 새로 깨어난 벌레가 갉아먹은 자국이 많습니다. 모과나무에 움이 터질 듯 말 듯 부풀고, 매화나무는 며칠 뒤면 꽃망울이 터질 듯합니다. 이웃집은 벌써 닥나무 꽃이 피었고, 이웃 여러 마을에서는 매화꽃이 가득 터지기도 했는데, 우리 집 나무는 조금 늦습니다.
그런데, 우리 집 나무가 꽃을 조금 늦게 피운다면, 다른 마을 나무보다 더 오래 피우는 셈입니다. 늦꽃이 오래 간다고 할까요. 그야말로 따사로운 볕과 바람이 아침저녁을 감돌 무렵에 우리 집 나무들이 기지개를 마치고 깨어난다고 할까요.
- ‘만약에 지금, 입시를 포기하겠다고 하면, 엄마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114쪽)
- “어떤 집이 지어질까? 모른다는 건 제일 좋을 때라고 생각해. 뭐든 될 수 있다는 거니까.” (119쪽)
- “버렸다고? 어째서. 좋은 추억이었는데!” “또 그릴게. 천재소년이 아니라, 이번엔 천재가 되어 보일게.” (124쪽)
만화책 《미카코》에 나오는 ‘이치무라 미카코’는 천천히 ‘제 길’을 걸으려 합니다. 이제껏 ‘제 마음’에 따라 걷지 않던 길이지만, 이제부터 제 길을 걸으려 합니다. 이냥저냥 휩쓸리듯이, ‘제 마음’은 드러내지 않으면서 둘레에서 바라는 대로 떠돌며 다녔지만, 이제부터는 다른 사람 마음이 아닌 ‘내 마음 바라보기’를 하려고 합니다.
내 마음으로 바라본다면 어떻게 될까요? 내 길을 갑니다. 내 길을 갈 적에는 내 둘레에서 깜짝 놀랄 수 있어요. 그렇지만, 다 괜찮아요. 내가 말을 안 하고 지냈다고 해서 ‘네 생각을 모두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뜻이 아니었음’을 밝힌 셈이니, 내 둘레에서도 ‘내 생각’을 처음으로 제대로 바라보면서 ‘내 마음대로 걷는 길’을 꾸밈없이 바라보아 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내 둘레에서 내 길을 꾸밈없이 바라보아 주지 않는다면? 아마 이때에는 내 둘레에 있던 사람이 나를 떠나겠지요. 그러면, 이들더러 떠나라고 하면 됩니다. 나는 너를 굳이 붙잡아야 하지 않습니다. 나는 나를 바라보면서 내 삶으로 가야 합니다. 내가 네 삶을 뒤따라가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너는 네 삶으로 가야 하고, 나는 내 삶으로 가야 합니다. 사랑이 아닌 곳으로 따라간다고 해서 사랑이 되지 않습니다. 사랑을 하려면 사랑인 곳으로 가야 합니다.
‘이치무라 미카코’는 시나브로 제 길을 찾아서 걷습니다만, 이 아이와 맞물리는 ‘미도리카와’라는 아이는 아직 제 길을 제대로 찾지 못합니다. 그러나 미도리카와라는 아이도 앞으로 제 길을 제대로 찾고 싶습니다. 《미카코》 여섯째 권에서는 이 이야기가 더욱 넓고 깊으면서 따사로이 흐를 테지요. 아무튼, 너무 늦지 않게 여섯째 권이 한국말로 나오기를 빕니다. 4348.3.9.달.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