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사람이 쓰는 글은



  나는 시골사람이다. 그러니 시골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글로 쓴다. 그런데, 시골사람이 시골에서 살며 누리는 이야기를 글로 써도, 이를 실을 자리(매체)는 매우 드물다. 거의 모든 책이나 신문이나 잡지는 도시에만 있기 때문이다. 시골사람 이야기를 귀여겨듣는 사람이 드물 뿐 아니라, 도시에서 살며 시골로 가겠노라 꿈꾼다는 사람도 시골 이야기를 그리 귀여겨듣지는 않는다.


  날마다 새롭게 나오는 수많은 책 가운데 ‘시골사람이 사서 읽으라’는 뜻으로 나오는 책은 찾아볼 수 없다. 시골사람 삶자리와 눈높이에 맞추어서 새롭게 태어나는 책은 참말 찾아볼 수 없다. 모든 책은 ‘도시사람이 사서 읽으라’는 뜻으로 엮어서 나온다. 이런 흐름이니, 그나마 아직 시골에 있는 어린이와 푸름이와 젊은이는 ‘시골 이야기를 다룬 책’은 읽을 수 없다. 다들 ‘도시 이야기’만 읽는다. 신문도 그렇고 방송도 똑같다. 시골아이가 도시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도시에서 사는 어린이한테 들려주는 ‘글쓰기 길잡이 이야기책’에 실을 글을 지난해에 썼다. 글을 마친 지 여섯 달이 지났다. 엊그제, 이 글을 받은 출판사에서 글을 고치거나 손질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이야기한다. 가만히 헤아려 보니 출판사에서 바라는 생각이 맞다. 오늘날 나오는 ‘모든 책’은 ‘도시사람이 읽으라고 내는 책’이다. 그런데, 내가 쓴 글은 ‘시골사람이 읽으라고 쓴 글’이거나 ‘시골사람 눈높이에 맞춘 글’이다. 도시 어린이가 시골을 생각해 보기를 바라는 마음이 나쁠 까닭이 없다. 그러나, 도시 어린이가 도시에서 도시를 가만히 헤아리면서, 시골이라고 하는 이웃을 함께 돌아보도록 돕는다면 한결 나으리라 생각한다.


  이리하여, 글을 몽땅 고쳐쓰기로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고쳐쓰자고 생각한다. 이러면서 글을 새로 쓰는데, ‘도시사람이 도시사람한테만 읽히려고 쓰는 글’이든 ‘시골사람이 시골사람한테만 읽히려고 쓰는 글’이든 모두 똑같은 굴레가 되겠다고 느낀다. 도시이든 시골이든 떠나서, 사람이 사람으로서 누릴 글을 쓰고, 이 지구별에서 서로 이웃이요 동무로 지내는 기쁜 사랑을 나누는 글을 쓸 노릇이다.


  왜 이 대목을 놓친 채 지난해에 그 글을 썼을까. 그래도, 여섯 달이 지난 오늘 그 글을 돌아보면서 기쁘게 손질할 수 있으니 고맙다. 새봄에 퍼지는 따스한 기운을 느끼면서 하나하나 매만진다. 4348.3.5.나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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