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디스커넥트 - 자본주의는 어떻게 인터넷을 민주주의의 적으로 만들고 있는가
로버트 맥체스니 지음, 전규찬 옮김 / 삼천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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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04



정치권력은 민주와 평화를 안 바란다

― 디지털 디스커넥트

 로버트 W.맥체스니 글

 전규찬 옮김

 삼천리 펴냄, 2014.12.12.



  홀가분하게 앞을 바라보다가 문득 두 손을 바닥에 대고 두 발을 하늘로 뻗으면 가볍게 물구나무서기가 됩니다. 이때에는 벽에 두 발이 닿지 않아도 몸이 가만히 선 채 무척 느긋하게 두 팔로 땅을 짚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홀가분하지 않은 마음으로 바닥을 살피다가 영차 하고 힘을 주면 물구나무서기가 안 되거나 두 발이 벽에 쿵 소리를 내면서 닿아요.


  물구나무서기를 할 적마다 느끼는데, 힘으로 하려 하면 안 됩니다. 그리고, 힘으로 하려 하면 힘이 들어요. 힘을 굳이 주지도 빼지도 않으면서 물구나무서기를 하면 아늑하고 느긋하면서 재미있습니다. 즐거우면서 신나는 놀이입니다.


  셈틀을 켜서 인터넷을 열 적에도 늘 같아요. 홀가분하게 인터넷을 누비면 내 마음 그대로 즐겁게 여러 가지를 누립니다. 홀가분하지 않은 마음으로 셈틀을 켜서 이것저것 하려고 들면 여러모로 골이 아프기도 하고, 막상 하려던 일도 엉키거나 힘이 들기 일쑤입니다.



.. 학자들이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를 조사하고 탐색할 때, 정치적으로 민주적인 국가에서조차 상층부를 차지한 채 현 상태에서 이익을 보는 사람들의 특권에 도전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금기 사항이다. 구소련에서와 마찬가지로, 미국에서도 이런 상황은 거의 진실에 가깝다. 미국에서 진짜 권력은 가장 많은 돈을 소유한 자들에게 있다는 점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 경제학은 기업이 비용보다 더 큰 수익을 창출하는 한도 안에서만 노동자를 고용한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 기업들은 경쟁 업체와 차별화된 것으로 인식될 브랜드를 창조하는 데 혼신의 힘을 기울인다. 광고는 상표에 일종의 아우라를 부여하는 데도 매우 중요하다 … 상표에 내재하는 제품의 차별성은 거의 피상적인 수준에 그칠 뿐이며, 효용성과는 사실상 아무 관련이 없을 것이다 ..  (48, 69, 88, 89쪽)



  시골에는 사람이 적습니다. 시골에는 젊은이가 매우 적습니다. 시골에는 어린이도 푸름이도 참으로 적습니다. 사람도 적고, 젊은이도 적으며, 어린이와 푸름이도 참으로 적은 시골에서는 신문을 읽는 사람이 대단히 드뭅니다. 집집마다 텔레비전은 있으나, 셈틀을 놓아 인터넷을 살피는 사람도 퍽 드뭅니다. 시골마을 할매나 할배는 텔레비전에 기대어 ‘새로운 정보’를 얻습니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정보가 아니라면 듣지 않고 믿지 않으며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기에 하나 더 있다면, 군청이나 면사무소 공무원이 알려주는 정보를 듣습니다. 이밖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도시에는 사람이 많습니다. 도시에는 젊은이도 매우 많습니다. 도시에는 어린이도 푸름이도 참으로 많습니다. 도시에서는 신문 읽는 사람도 많으며, 아침마다 거저로 나눠 주는 신문도 많고, 텔레비전뿐 아니라 인터넷으로 이것저것 살피는 사람도 몹시 많습니다. 도시에서는 정보를 얻는 길이 참으로 많습니다. 도시에서는 온갖 정보가 넘치고 또 넘치며 자꾸 넘칩니다. 도시에는 극장도 많고 문화시설도 많습니다. 도시에는 찻집이나 옷집이나 온갖 가게도 많습니다. 그야말로 도시에서는 ‘알아야 할 것’투성이입니다.


  나는 시골에서 살며 둘레를 가만히 돌아봅니다. 시골에서는 신문을 읽을 일이 없고, 텔레비전을 들여다볼 일이 없습니다. 우리 집에 텔레비전이 없기도 하지만, 어쩌다가 이웃집에 들러서 텔레비전을 함께 들여다보노라면, 참말 볼거리가 없습니다. 시골사람한테 이바지할 만한 이야기는 어느 한 가지조차 없다고 할 만한 텔레비전입니다.


  도시에서 사는 이웃은 무엇을 그리 많이 알아야 할까 궁금합니다. 사건과 사고를 왜 그리 많이 살펴야 할까 궁금합니다. 정치와 경제와 교육과 문화와 예술과 과학을 왜 그리 많이 헤아리면서 갖가지 ‘새 정보’를 날마다 머릿속에 넣으면서 ‘어제 정보’는 곧바로 쓰레기통에 넣어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하루가 지나서 쓰레기통에 넣어야 하는 정보라면, 처음부터 쓰레기통에 넣을 정보이지 싶습니다. 몇 시간쯤 지나면 쓰레기통에 들어가는 소식이나 기사나 이야기라면, 이런 소식이나 기사나 이야기는 처음부터 만들지도 퍼뜨리지도 읽지도 않아야 홀가분한 노릇이지 싶습니다.



.. 기업체들이 경쟁사로부터 자사의 제품을 차별화하기 위해 더 많은 광고를 하면 할수록 미디어와 문화에는 더 많은 상업적 ‘정보 혼란’ 상태가 야기된다 … 정치경제의 기본 내용들에 관해 민주당과 공화당 양당은 사실상 뜻을 같이한다. 따라서 이런 내용이 공적인 토론이나 논쟁의 테이블 위에 오르는 경우가 드물다. 맥퍼슨의 견해에 따르면, 양당 시스템은 특히 경제 스펙트럼의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시민의 무관심과 탈정치화를 조장하고 엘리트의 지배를 유지하는 데 아주 이상적이다 … 지금도 소수의 대형 업체들이 영화 제작과 네트워크 텔레비전, 케이블 텔레비전 시스템과 채널, 출판, 음반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 생산자 주권이 소비자 주권을 대신하게 된다. 미디어 기업들은 이제 자신들이 무엇을 제작하고 무엇을 제작하지 않을지에 관해 상당한 권력을 갖게 된다 ..  (90, 117, 137쪽)



  로버트 W.맥체스니 님이 쓴 《디지털 디스커넥트》(삼천리,2014)를 읽습니다.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자본주의가 민주주의를 어떻게 좀먹는가 하는 대목을 밝히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입니다.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자본주의가 인터넷을 앞세워 민주주의를 어떻게 갉아먹거나 무너뜨리려 하는가를 알려주려는 책입니다.


  마음 착한 사람이 인터넷을 다루면, 인터넷으로 사랑과 평화를 이룬다고 합니다. 마음 궂은 사람이 인터넷을 다루면, 인터넷으로 전쟁과 차별과 독점을 이룬다고 합니다.


  깊이 헤아리지 않아도 아주 마땅한 노릇입니다. 돈만 밝히려고 하는 사람이 인터넷을 거머쥔다면, 오직 돈굴리기에 매달릴 테지요. 권력만 밝히려고 하는 사람이 인터넷을 손아귀에 넣는다면, 오로지 정치권력이나 경제권력을 더 세게 움켜쥐려고 할 테지요.


  《디지털 디스커넥트》는 ‘미국’ 이야기를 다루는데, 미국에 있는 회사 이름을 한국에 있는 회사 이름으로 바꾸면, 이 책에서 흐르는 이야기는 ‘한국’ 이야기라고 할 만합니다. 아니,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함께 있는듯이 보이는 모든 나라에서 똑같이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 실제에서는 결국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노출되는 게 그들이 이후에 원하게 되는 바를 중요하게 결정한다 … 오늘날 미국의 초등교육은 사실상 상업주의 가치관에 따라 이루어지고 있는 듯하다 … 대다수 사람들이 어린 시절부터 기억하고 있던 상표를 주로 이용하며, 어린이들 또한 부모들의 구매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 … 이익에 굶주린 몇몇 발행인들은 황색 저널리즘이라 이름 붙여질 선정주의가 돈 되는 길이라는 점을 곧 깨닫는다 … 오늘날 미국에는 민주적 지배 구조에 관한 이해할 만한 수준의 냉소주의가 팽배하다. 권력을 가진 상업적 이해 당사자를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도 발언권을 갖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이 사실상 희망을 포기해 버린 탓이다 … 독점 방송 면허권과 저작권 연장, 세금 보조 같은 특혜가 항상 베풀어진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  (140, 141, 155, 165쪽)



  한국이라는 나라에 민주가 있을까요? 이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는 눈이 우리한테 있을까요? 투표하는 민주 제도는 있으나, 이 다음으로 정치권력이나 경제권력을 지켜보는 민주 제도는 있을까요? 평화로 나아가도록 북돋우는 민주 제도가 한국에 있을까요? 전쟁무기와 군대와 경찰이 맡는 몫은 ‘평화’가 아닌 ‘전쟁’이 아닌가요? 전쟁무기와 군대와 경찰이 ‘지키는’ 자리는 정치권력자와 경제권력자 울타리일 뿐 아닌지요? 우리는 우리 주머니를 털어서 권력자 울타리를 지키는 허수아비나 꼭둑각시 노릇만 하지 않나요?


  사회에서도 민주를 찾아보기 어려운 한국이요, 학교에서도 민주를 찾아내기 어려운 한국입니다. 초등학교이든 중·고등학교이든 모두 매한가지입니다. 한국에 있는 학교에서는 입시교육만 있습니다. 입시교육에 따라 아이들을 줄세우고, 똑같은 제복(죄수 옷차림)을 비싼 값을 치러서 입도록 내몰면서 ‘다 다른 모든 아이’들을 ‘다 같은 종(노예)’이 되도록 길들입니다.


  아이들은 삶을 배우지 못합니다. 집에서는 어버이가 집 밖으로 나가서 돈을 버느라 바빠 아이한테 삶을 물려주거나 가르치지 못합니다. 학교에서는 어른들이 입시지도만 하느라 아이들한테 삶을 보여주거나 알려주지 못합니다. 아이들은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그저 시험공부만 합니다. 아이들은 동네나 마을에서도 아무런 삶을 보거나 배우거나 익히지 못합니다. 아이들은 언제 어디에서나 그저 물질문명과 소비사회만 바라보고 이런 흐름에 젖어듭니다.



.. 정부 규제의 핵심은 한마디로 기업이 기익을 극대화시킬 수 있도록 도움 주는 게 되어 버렸다. 이게 바로 새로운 공익 개념이다 … 규제가 더욱 줄어든 상태에서, 더 적은 수의 거대기업들만 살아남게 된다 … 미디어 기업들이 지난 15년 동안 사실상 인터넷의 개방성과 평등성을 제한하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 시스템을 최대한 폐쇄하고 사적으로 소유할 수 있도록 하고, 기업이나 국가가 인터넷 이용자들을 은밀하게 모니터링하도록 하며 … 1970년대 베트남전쟁 직후의 짧은 기간을 제외하면 이 군산복합 시스템은 그 어떤 도전도 받지 않았다. 군사와 안보 예산 지출이 계속해서 늘어났으며, 경제의 상당하고 지속적인 일부로서 자리잡아 왔다 ..  (192, 197, 219, 278쪽)



  시골에서 사는 사람은 신문도 방송도 볼 일이 없습니다. 더 헤아린다면, 시골에서는 인터넷도 할 일이 없습니다. 더 들여다본다면, 시골에서는 전화를 할 일이 없습니다. 시골에서는 그저 시골살이만 하면 넉넉합니다.


  왜 그러할까요? 시골에서는 왜 신문도 방송도 학교도 인터넷도, 여기에 전화도 책도 부질없을까요? 시골에서는 사람들 누구나 ‘삶’을 이루는 얼거리가 어떠한 줄 몸과 마음으로 깨달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를 깨닫자면 겉치레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이를 알아차리려면 겉옷을 벗어야 합니다. 남들과 비슷한 모습이 되어 ‘모난 돌’이 되지 않겠다고 하는 생각을 털어야 합니다.


  나는 너하고 다릅니다. 나는 너하고 다르기에 나입니다. 나는 나입니다. 너는 너입니다. 내가 너와 똑같은 차림새로 있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네가 나와 똑같은 몸짓이나 얼굴짓을 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씨앗을 심을 적에도 너와 내가 똑같이 해야 하지 않습니다. 호미질도 낫질도 삽질도 괭이질도 저마다 다르게 제 보금자리 밭을 일구는 몸짓으로 하면 됩니다.


  주어진 틀에 맞추어 밥을 빨리 먹어치워야 하지 않습니다. 하루 세 끼니를 맞추어야 하지 않습니다. 나이에 맞추어 어떤 학교에 보내야 하지 않습니다. 어느 나이가 되면 시집장가를 보내야 하지 않습니다. 어느 나이가 되면 죽어야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죽음으로 달리는 사람이 아니라, 날마다 새로운 하루를 지으며 살 사람입니다.



.. 미국식 선거라는 웃기지도 않은 모습을 생각해 보자. 대통령 선거를 제외한 거의 모든 선거에서 지역 선거는 뉴스로 잘 보도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무의미한 것들, 종종 TV 광고가 만들어 내는 것들이 선거 뉴스가 된다. 홍보 전략에 대한 평가나 후보자의 말실수, 여론조사 따위가 선거 뉴스를 이룬다 … 우리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넘쳐나는 뉴스에 파묻혀 산다. 그러나 이런 뉴스의 상당수는 기업과 정부가 은밀히 생성하여 기자에 의해 전혀 걸러지지 않은 홍보성 기사들이다 … 미국은 역사상 가장 큰 경제적 잠재력을 지닌 나라가 아니라 점점 발전도상국을 빼닮아 가고 있다. 돈이 될 수 있는 것이라면 거의 모두 사유화하거나 아웃소싱시켜 버리는 그런 나라이다 ..  (316∼317, 318, 389쪽)



  《디지털 디스커넥트》는 “지금대로 내버려진 채 자본의 필요에 따라 계속 달리게 한다면, 인터넷은 자유와 민주주의의 가치를 놀랍도록 위배한 채 좋은 삶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방식으로 굳어질 수 있다(400쪽).”와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책을 맺습니다. 오늘 이곳에서 우리가 스스로 삶을 제대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찬찬히 들려주려 합니다. 자본주의 노예가 되어 내 삶을 잊으려 하겠는지, 내 삶을 손수 짓는 씩씩하고 사랑스러운 사람으로 거듭나려 하겠는지, 어느 길로 가든 내 몫이니, 스스로 슬기롭게 생각하라는 이야기를 밝힙니다.


  우리 삶은 자유로울 때에 자유입니다. 우리 삶은 평화로울 때에 평화입니다. 우리 삶은 민주로 이루어질 때에 민주입니다. 자유도 평화도 민주도 남이 우리한테 선물로 주지 않습니다. 스스로 씨앗을 뿌리고 가꾸고 일구고 보듬고 돌보고 거두고 갈무리하고 손질할 때에 비로소 모든 자유와 평화와 민주를 기쁘게 누립니다.


  손수 짓는 삶일 때에 자유와 민주와 평화입니다. 정치권력이 우리한테 자유를 주지 않습니다. 학교교육이 우리한테 민주를 주지 않습니다. 전쟁무기가 우리한테 평화를 주지 않습니다. 내가 나를 제대로 바라보면서 내 이웃을 사랑스레 바라보며 어깨동무할 수 있는 마음으로 삶을 가꿀 때에, 비로소 자유와 민주와 평화가 내 보금자리에서 깨어납니다. 바로 오늘 이곳에서 눈을 떠야 합니다. 신문을 읽든 텔레비전을 켜든 인터넷을 열든, 나 스스로 오늘 이곳에서 눈을 떠야 합니다. 4348.3.1.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인문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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