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기를 두려워 말아요 - 미술 치료사 정은혜의 공감 노트
정은혜 지음 / 샨티 / 2015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읽기 삶읽기 180



즐거움과 두려움은 늘 함께

― 행복하기를 두려워 말아요

 정은혜 글

 샨티 펴냄, 2015.1.30.



  물구나무서기를 하면 내 팔과 다리가 거꾸로 섭니다. 그런데, 물구나무를 서서 가만히 있다 보면, 거꾸로 서는 모습이란 무엇인가 하고 다시금 돌아보곤 합니다. 거꾸로란 무엇일까요. 어떤 모습이 거꾸로일까요. 두 다리로 땅을 디디면 ‘바로’이고, 두 팔로 땅을 디디면 ‘거꾸로’일까요. 동그란 모습인 지구별에서 북녘과 남녘은 서로 어떤 자리가 되고, 어느 쪽이 ‘바로’이고 어느 곳이 ‘거꾸로’일까요. 지구별 바깥쪽과 안쪽은 서로 어떤 터전일까요.


  몸이 무거울 적에는 물구나무를 서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몸이 무겁다면, 몇 킬로그램쯤 되어야 무거운 셈일까 궁금합니다. 무겁다와 가볍다를 가를 만한 잣대나 틀이 있을까요. 키가 몇 센티미터에 몸무게가 몇 킬로그램이면 무겁거나 가벼울까요.


  힘이 있으면 물구나무서기를 잘 할는지 궁금합니다. 힘이 없으면 물구나무서기를 못 할는지 궁금합니다. 힘이 있거나 없다는 잣대는 어떤 크기로 따질 만한지 궁금합니다. 어느 만큼 힘이 있으면 힘이 ‘있’거나 ‘없’어서 물구나무서기를 ‘하’거나 ‘못 할’까요.



.. 이러한 일들을 계속 겪으니 짜증이 났다. 그런데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자 이것이 왜 그 사람들 잘못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돈 없고 가족 없고 소외당하고 무시당하고 정신병이 있어서 사회의 언저리에서 멍하게 삶을 보내는 그들이 그렇게나마 나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 아닌가? 하는 일 없이 하루 종일 미국의 쓰레기 같은 낮 텔레비전 방송을 보며 시간을 보내고 홍콩 무술 영화 비디오를 보고 또 보는 이들이 이렇게라도 나에게 관심을 갖는 것 아닌가 … ‘당신은 참 아름다운 사람이에요.’ 이 말을 열심히 텔레파시로 보내니 그것을 받았는지 어쨌는지 그녀의 입술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간다. 내가 따라서 살짝 웃으니 그녀도 살짝 웃는다 ..  (31, 50쪽)



  밥을 잘 짓는 길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냥 잘 지으면 됩니다. 밥을 못 짓는 길도 어렵지 않습니다. 그냥 못 지으면 됩니다. 잘 지으려고 하면 잘 지을 수 있지만, 못 지으려고 하면 못 지을 수 있습니다. 불을 살짝 잘못 맞추어도 밥을 못 짓고, 물을 살짝 잘못 맞추어도 밥을 못 짓습니다. 다 그렇습니다. 국을 끓일 적에도 이와 같아요. 간을 살짝 잘못 맞추어도 국맛이 떨어지고, 간을 살짝 잘 맞추어도 국맛이 나아져요.


  그러니까, 언제나 내 마음에 따라서 달라지는 삶이라고 느낍니다. 내 마음이 너그럽다면, 내가 하는 일은 언제나 너그럽습니다. 내 마음이 괴롭거나 고단하다면, 내가 하는 일은 언제나 괴롭거나 고단합니다. 내 마음이 사랑으로 가득하다면, 내가 하는 말은 언제나 사랑으로 가득해요. 내 마음이 미움이나 시샘으로 넘친다면, 내 입에서 흐르는 말은 으레 미움이나 시샘이기 마련입니다.



.. 정상인이든 정신병자이든 “당신은 미쳤소. 그러니 당신 이야기도 다 미친 거요.”라고 하면 대화할 여지가 없어진다 … 그들의 작품을 보면 우리가 그들을 정신병이 있는 사람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정신병과 동일시하는 건 아닌가 하는 부끄러운 생각이 들곤 한다 … 실제로 우리와 같은 방법으로 느끼지 못한다고 해서 감정이 없는 사람으로 치부되어 어렸을 때부터 엄하고 호된 행동 요법을 치료라는 이름으로 받아 온, 그래서 마치 사육당하다시피 살았다며 그러한 치료를 거부하는 자폐운동가의 말이 생각난다 ..  (67, 83, 130쪽)



  정은혜 님이 쓴 《행복하기를 두려워 말아요》(샨티,2015)를 읽습니다. 정은혜 님은 ‘미술 치료사’로 일한 이녁 삶을 조곤조곤 들려줍니다. 이 책은 ‘미술 치료’란 무엇이고, ‘미술 치료’를 어떻게 했는가를 밝힌다고 할 만합니다.


  그러나, 미술 치료는 그리 대수롭지 않습니다. 미술 치료이면 어떻게 마술 치료이면 어떠하겠습니까. 글쓰기 치료도 사진찍기 치료면 또 어떠하겠어요. ‘무엇’으로 ‘치료’를 하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대수롭게 돌아볼 대목은, ‘무엇’을 다루어서 ‘어떤 일’을 하든, 이러한 일을 하는 사람이 어떤 마음이 되어 어떤 삶을 짓느냐에 있습니다.


  스스로 즐겁게 삶을 일구면 삶이 즐겁습니다. 스스로 고단하게 삶을 돌보면 삶이 고단합니다. 스스로 웃음으로 삶을 엮으면 삶에 웃음이 가득하고, 스스로 눈물로 삶을 쥐어짜면 삶에 눈물만 흘러요.



.. 중심으로 들어가 보면 우리가 정말로 두려워하는 것은 손에 꼽힐 정도의 몇 가지 주제의 변주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 제일 어려웠던 일은 바늘에 손가락이 찔리지 않게 하는 것이 아니라 꼬맹이 남자애들에게 바느질은 여자만 하는 게 아니라 멋있는 남자도 하는 것이라고 꾀는 일이었다 … 내게 선물로 주어진 간결한 음식을 앞에 놓고, 그 음식이 어디서 왔는지, 이 나무 그릇이 어디서 왔는지, 이 음식을 키운 땅이 어떻게 왔는지 등을 생각하면 감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  (177, 199, 232쪽)



  귀를 기울여 소리를 듣습니다. 귀가 있으니 소리를 듣지요. 눈을 크게 뜨고 온갖 모습을 봅니다. 눈이 있으니 온갖 모습을 보아요. 그러면, 우리는 또 무엇을 할까요? 살갗이 있어서 서로 만지거나 쓰다듬거나 얼싸안습니다. 머리가 있어서 생각을 합니다. 마음이 있으니 사랑을 길어올립니다.


  곰곰이 보면, 우리는 우리한테 있는 모든 것을 골고루 써서 삶을 아름답게 누릴 수 있습니다. 돈이 있으면 돈을 다루어 삶을 누릴 테지요? 그런데, 돈은 있되 사랑이 없다면? 이때에는 돈은 넘쳐도 사랑이 메말라서 삶이 썩 아름답지 않습니다. 거꾸로, 사랑은 가득하되 돈이 없으면?


  사랑은 가득하면서 돈이 없을 적에도 삶이 메마를까 궁금합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이때에도 삶이 메마르리라 여길 수 있으나, 정작 ‘사랑 가득 돈 없는’ 사람들을 보면, 삶이 메마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밥은 돈이 있어야 먹지 않거든요. 손수 흙을 일구어도 밥을 먹어요. 손수 집을 지어서 살림을 하지요.



.. 밖에 나가는 시간이 아주 적고, 나가도 단체로 우르르 가거나 운동을 하는 것이 대부분이므로, 이렇게 남몰래 꽃 한 송이를 옮겨 심고 돌보고 있다는 것은 참 대단한 일이다 … 다른 날은 비가 내렸는데, 숲에 누워서 빗방울 하나가 높은 나무 꼭대기에서 더 이상 볼 수 없을 때까지 떨어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마치 비가 오는 것을 태어나서 처음 보는 것마냥 신비로웠고, 그 신비로운 경험에 눈물이 났다 … 대다수의 미술 치료사들도 자신을 위한 치유적이고 창조적인 작업을 할 시간과 여유가 없는 경우가 태반이다 … 사람들은 치료사가 없어서 불행한 것이 아니라 친구가 없어서 불행하다 ..  (247, 255, 278, 314쪽)



  있어야 할 것이 있을 때에 삶이 아름답습니다. 있어야 할 것이 없을 때에 삶이 고단합니다. 우리한테는 무엇이 있어야 할까 하고 생각할 노릇입니다. 우리가 먼저 갖추면서 다스릴 대목은 무엇인지 돌아볼 노릇입니다. 나 스스로 내 삶을 아름답게 가꾸려는 길에서 무엇을 즐겁게 먼저 해야 할까 하고 헤아릴 노릇입니다.


  즐거움과 두려움은 늘 함께 있습니다. 두 가지 느낌은 모두 같은 자리에 있습니다. 멀리 떨어진 데에 있는 두 마음이 아닙니다. 그래서, 똑같은 일을 놓고도 어느 때에는 즐겁고 어느 때에는 두렵습니다. 이 대목을 슬기롭게 읽어야 합니다. 똑같은 일을 마주하고도 어느 때에는 왜 즐겁고 어느 때에는 왜 두려운지 또렷하게 헤아려서 알아야 합니다.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제대로 느끼지 못하며, 제대로 알지 못할 때에는, 우리 삶은 늘 즐거움과 두려움이 엇갈리고 맙니다. 제대로 바라볼 수 있다면, 즐거움이기에 더 좋고 두려움이기에 더 나쁘지 않은 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즐거움과 두려움을 모두 내려놓을 수 있으면, 내 삶을 슬기롭게 헤아리면서 온통 사랑으로 넘실거리는 노래를 부르면서 웃는 하루를 엽니다. 4348.2.25.물.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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