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말도 익혀야지

 (213) -에 있어/-에게 있어 1


채마밭 가꾸기는 사람에게 있어 최상의 기쁨 중 하나이다

《헬렌 니어링/권도희 옮김-헬렌 니어링의 지혜의 말들》(씨앗을뿌리는사람,2004) 111쪽


 사람에게 있어

→ 사람한테

→ 사람이 하는 일에서

 …



  이 보기글에 나오는 ‘-에게 있어’는 일본 말투입니다. 한국 말투가 아닙니다. ‘-에 있어’도 일본 말투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본 말투는 일제강점기 언저리부터 한국말에 스며들었고, 일본책을 한국말로 옮기던 지식인이 한국 말투로 제대로 가다듬거나 풀지 못한 탓에 자꾸 퍼지고 퍼져서, 이제는 돌이키기 아주 어려울 만큼 깊이 뿌리를 내렸다고 할 만합니다. 이리하여, 국립국어원조차 이 일본 말투를 이럭저럭 받아들여서 쓰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아주 잘못 쓰는 말투라 한다면, 더 마음을 기울여서 다듬거나 고쳐쓰도록 이끌어야 할 텐데, 팔짱을 끼고 구경하거나 모르쇠로 지나가는 셈이라고 할까요.


 텃밭 가꾸기는 사람을 무척 기쁘게 하는 일이다

 텃밭 가꾸기는 우리를 아주 기쁘게 한다

 밭을 가꾸는 사람은 누구나 기쁘기 마련이다

 밭일은 아주 기쁘다


  한국사람이니 한국 말투를 써야 마땅하기도 합니다만, 때때로 어설프거나 엉뚱한 말투가 한국말에 깃들었다면, 이를 슬기롭게 털어낼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홀가분하게 즐겁게 한국 말투를 익히고 가다듬을 수 있기를 빕니다. 4337.5.1.흙/4348.2.23.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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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 가꾸기는 사람한테 아주 기쁜 일 가운데 하나이다

밭일은 우리를 무척 기쁘게 한다

밭일을 하면 매우 기쁘다

밭일은 늘 몹시 기쁘다


‘채마(菜麻)밭’은 ‘텃밭’이나 ‘밭’으로 손질합니다. 밭은 푸성귀를 심어서 돌보는 곳이니 ‘채마밭’이나 ‘푸성귀밭’처럼 적으면 겹말이기도 합니다. “최상(最上)의 기쁨 중(中) 하나”는 “아주 기쁜 일 가운데 하나”로 손봅니다.


..



 우리 말도 익혀야지

 (256) -에 있어서/-에게 있어 2


남들은 ‘칭찬이 뭐가 좋아’ 할지 몰라도 나에게 있어서는 가족 간의 사랑을 더 절실하게 느낄 수 있게 해준 일종의 다리 같다

《김상복-엄마 힘들 땐 울어도 괜찮아》(21세기북스,2004) 86쪽


 나에게 있어서는

→ 나한테는

→ 나로서는

→ 나는

 …



  이 보기글은 중학교 3학년 푸름이가 썼다고 합니다. 열여섯 살 푸름이도 ‘-에게 있어서’ 같은 일본 말투를 아무렇지 않게 쓰는 셈이라 할 텐데, 학교와 사회와 교과서와 방송 모두 이러한 일본 말투를 바로잡으려 하지 않으니, 이러한 말투는 더 널리 퍼지지 싶습니다.


  가만히 보면, 이 보기글을 쓴 푸름이는 ‘가족’이라는 일본 한자말을 쓰기도 하고, “일종의 다리”처럼 ‘-의’를 붙인 말씨까지 씁니다. 둘레 어른이 이런 낱말을 흔히 쓰니, 이 보기글을 쓴 푸름이도 이런 낱말을 가볍게 썼을 테지요. 4337.6.26.흙/4348.2.23.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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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은 ‘칭찬이 뭐가 좋아’ 할지 몰라도 나한테는 우리 식구 사랑을 더 깊이 느낄 수 있게 해 준 다리 같다


“가족(家族) 간(間)의 사랑을”은 “우리 식구 사랑을”로 손봅니다. ‘가족’은 일본 한자말입니다. ‘절실(切實)하게’는 ‘깊이’나 ‘뼈저리게’나 ‘뼛속 깊이’로 손질하고, “일종(一種)의 다리 같다”는 “이를테면 다리 같다”나 “이른바 다리 같다”나 “다리 같다”로 손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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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도 익혀야지

 (768) -에 있어/-에게 있어 3


어떤 사람들은, 김광섭에 있어서의 참다운 시는 병을 앓음으로써 지난날 김광섭 자신의 것이 아니었던 모든 교양과 위장과 작품에의 평범한 실험 등을 탈피한 최근의 시집 《성북동 비둘기》(1969)로써만 평가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조태일-고여있는 시와 움직이는 시》(전예원,1980) 111쪽


 김광섭에 있어서의 참다운 시는

→ 김광섭한테 참다운 시는

→ 김광섭이 쓴 참다운 시는

→ 김광섭이 보여준 참다운 시는

→ 김광섭을 알 수 있는 참다운 시는

→ 김광섭을 드러내는 참다운 시는

 …



  한국 말투로 수수하게 쓰자면 ‘-에’나 ‘-에게/-한테’ 같은 토씨를 붙이면 됩니다. 이뿐입니다. 달리 더 할 말은 없습니다. 말투를 살짝 바꾸고 싶다면 사이에 다른 낱말을 넣을 수 있고, ‘-다운’이나 ‘-로서’를 넣을 수 있습니다.


 김광섭다운 참다운 시

 김광섭답구나 할 만한 참다운 시

 김광섭을 말하는 참다운 시

 김광섭을 보여주는 참다운 시


  사회가 달라지니 말도 달라집니다. 그런데, 다른 나라 문화를 받아들이기도 하니 다른 나라 말씨를 받아들여서 한국말을 바꾸어도 될는지 생각할 노릇입니다. 번역 말투나 일본 말투를 굳이 한국사람이 받아들일 만한지 곰곰이 되새길 노릇입니다. 한국말을 한국말 아닌 일본말이나 영어처럼 써도 괜찮을는지 낱낱이 따질 노릇입니다. 4340.10.10.물/4348.2.23.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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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들은, 김광섭한테 참다운 시는 병을 앓으며 지난날 김광섭 것이 아니던 모든 교양과 거짓과 작품에 쏟은 수수한 실험 모두를 벗어난 요즈막 시집 《성북동 비둘기》(1969)로만 바라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병을 앓음으로써”는 “병을 앓으며”로 다듬고, “김광섭 자신(自身)의 것”은 “김광섭 것”으로 다듬으며, ‘위장(僞裝)’은 ‘거짓’으로 다듬습니다. “작품에의 평범(平凡)한 실험 등(等)을”은 “작품에 쏟은 수수한 실험 모두를”로 손보고, ‘탈피(脫皮)한’은 ‘벗어난’으로 손보며, ‘최근(最近)의’는 ‘요즈막’으로 손봅니다. ‘평가(評價)되어야’는 ‘말해야’나 ‘다루어야’나 ‘바라보아야’로 손질합니다.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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