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글게 쓰는 우리 말
(1590) 동그라미를 그리다
동그라미 → 그리다
빗금 → 치다
줄(밑줄)·금 → 긋다
점 → 찍다
한국말사전에서 ‘치다’를 찾아보면 “붓이나 연필 따위로 점을 찍거나 선이나 그림을 그리다”로 풀이를 합니다. 한국말사전 보기글을 살피면 “밑줄을 치다”와 “동그라미를 치다”와 “사군자를 치다”와 “가위표를 치다”가 함께 나옵니다. ‘긋다’라는 낱말은 “금이나 줄을 그리다”로 풀이하고, ‘그리다’라는 낱말은 “연필, 붓 따위로 어떤 사물의 모양을 그와 닮게 선이나 색으로 나타내다”로 풀이합니다. 세 낱말이 어떤 뜻인지 찾아보면서 고개를 갸우뚱할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치다 = 그리다’이고, ‘긋다 = 그리다’인 셈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뜻과 쓰임새가 같다면, 세 낱말을 굳이 다른 모습으로 드러내어 쓸 까닭이 없다고 할 만합니다.
우리가 한국사람이라면 한국말을 옳고 바르게 다룰 줄 알아야 합니다. “점을 찍다”라 하고, “줄(밑줄)을 긋다”와 “금을 긋다”라 하며, “빗금을 치다”라 하고, “동그라미를 그리다”라 해야 올바릅니다. 점을 종이에 나타내려면 연필이나 붓을 쥐고 가만히 눌러 줍니다. 그래서 이 몸짓을 ‘찍다’라고 합니다. 줄이나 금은 어느 한 곳(점)에서 다른 한 곳(점)으로 이어지도록 하면서 나타납니다. 그래서 이러한 몸짓은 ‘긋다’라는 낱말로 나타냅니다. 붓에 먹을 묻혀서 난잎을 담으려 할 적에도 어느 한 곳에서 다른 한 곳으로 이어지도록 죽 ‘긋는다’고 할 테지만, “난을 친다”처럼 ‘치다’라는 낱말을 씁니다. 왜냐하면, 이때에는 붓을 가볍게 튕기듯이 다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빗금도 ‘치다’라는 낱말로만 나타내요. 시험종이에서 맞고 틀린 문제를 가르면서 재빠르게 튕기듯이 동그라미를 나타내려 한다면, 이때에는 “동그라미를 치다”라 할 수 있을 테지요. 다만, 이때가 아닌 다른 자리에서는 동그라미는 모두 ‘그리다’라는 낱말로 나타내야 올바릅니다. ‘그리다’는 어떤 모습이 나타나도록 하는 몸짓을 가리키니까요.
표시(표) → 하다
가위표 → 하다
때로는 한자말 ‘표시·표’를 쓸 수 있는데, 이때에는 “표시(표)를 하다”처럼 씁니다. 한국말사전에서는 “가위표를 치다” 같은 보기글을 싣지만, ‘가위표’는 금을 둘 엇갈라 놓은 모습입니다. 금을 둘 엇가를 적에는 ‘표시(표)’와 같으니, 이때에는 “가위표를 하다”라 말해야 올바릅니다. 이리하여, 우리가 쓰는 낱말은 때와 곳에 따라 모두 다릅니다. 이를 제대로 살펴서 제대로 쓸 줄 알아야겠습니다. 한국말사전 말풀이도 하루 빨리 바로잡아야겠습니다. 4348.2.23.달.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