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말도 익혀야지

 (446) 포문을 열다


야당은 합법적으로 반대 운동을 펴 달라는 등의 7개 항의 성명을 내고 본격적으로 개헌 추진의 포문을 열었다

《정운현-호외 100년의 기억들》(삼인,1997) 172쪽


 개헌 추진의 포문을 열었다

→ 헌법을 고치려는 첫발을 뗐다

→ 헌법을 고치려는 첫걸음을 뗐다

→ 헌법 고치기에 팔을 걷고 나섰다

→ 헌법 고치기에 소매를 걷어올렸다

 …



  ‘포문’이라는 한자말은 ‘대포 구멍’을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대포라고 하는 전쟁무기가 이 땅에 깃들기 앞서까지 “포문 열다” 같은 낱말이 쓰일 일은 없습니다. 대포라고 하는 전쟁무기를 이 땅에서 처음으로 들이거나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은 “포문 열다” 같은 말을 쓸 일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싸움터가 아니면 대포를 볼 일도 없을 뿐 아니라, 싸움터에 끌려간 여느 시골사람은 거의 칼받이나 총알받이나 화살받이가 되었으니까요.


  가만히 헤아리면, “포문 열다”는 일제강점기 언저리부터 해방과 한국전쟁 둘레에 널리 퍼졌다고 할 만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말마디는 한국사람이 손수 지어서 썼다기보다, 일본을 거쳐서 들어왔을 테지요.


  “포문(을) 열다”라고 하는 말마디는 관용구라 하고, “1. 대포를 쏘다 2. 상대편을 공격하는 발언을 시작하다”를 뜻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개헌 추진의 포문을 열었다”처럼 쓰는 일은 알맞지 않습니다. 공격하는 말을 처음으로 꺼내는 모습을 가리키는 “포문 열다”인 만큼, “개헌 추진을 하려는 첫걸음을 뗐다”처럼 고치거나 “개헌을 하려고 팔을 걷고 나섰다”처럼 고쳐야 올바릅니다. 한국말사전에 나오는 보기글에서 “반론의 포문을 열었다”는 “반론을 했다”나 “받아치는 말을 했다”나 “맞받아 말을 했다”나 “꼬집었다”쯤으로 손질할 수 있습니다.


 상대편이 주장한 내용의 허점을 지적하며 반론의 포문을 열었다

→ 상대편이 말한 내용에서 빈틈을 짚으며 반론을 했다

→ 저쪽에서 말하는 이야기에서 허술한 대목을 받아쳤다

→ 저쪽에서 내세우는 이야기에서 잘못된 곳을 꼬집었다


  한국말을 올바로 하자면 “첫머리를 열다”나 “처음으로 하다”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됩니다. 전쟁을 좋아한다면 “포문(열) 열다” 같은 말마디를 쓸 만할 테지만, 전쟁에서 비롯한 이 말마디는 일제강점기 언저리부터 차츰 퍼졌다고 할 수 있는 만큼, 이러한 말마디는 우리 입과 손과 마음에서 말끔히 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일제강점기 언저리부터 퍼지지 않았다 하더라도, ‘전쟁과 얽혀 서로 죽이고 죽는 몸짓’을 가리키는 이 같은 말마디를 쓰는 일은 조금도 아름답지 않습니다. 삶을 가꾸는 말을 쓸 때에 넋을 가꾸고, 넋을 가꾸려는 몸짓으로 말을 하는 사이에 삶을 가꿉니다. 4338.10.14.쇠/4348.2.16.달.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야당은 법에 맞게 반대 운동을 펴 달라는 뜻을 담은 일곱 가지 항의 성명을 내고 바야흐로 헌법을 고치려는 첫발을 뗐다


‘합법적(合法的)으로’는 ‘법에 맞게’나 ‘법에 어긋나지 않게’로 손보고, “펴 달라는 등(等)의”는 “펴 달라는 한편”으로 손보며, “7개(七個) 항의 성명”은 “일곱 가지 항의 성명”으로 손봅니다. ‘본격적(本格的)으로’는 ‘바야흐로’나 ‘비로소’로 손질하고, “개헌(改憲) 추진(推進)”은 “헌법을 고치려는”으로 손질합니다.



포문(砲門) : 대포의 탄알이 나가는 구멍

포문을 열다

1. 대포를 쏘다

2. 상대편을 공격하는 발언을 시작하다

   - 상대편이 주장한 내용의 허점을 지적하며 반론의 포문을 열었다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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