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글게 쓰는 우리 말
(1584) 고요누리
zero point : 영점(零點)
영점 : 섭씨온도계·열씨온도계에서, 물이 어는점
아이들은 작습니다. 이 작은 아이들은 모든 것을 이룰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주 조그마한 씨앗과 씨앗이 만나서 태어난 아이들한테는 모든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모든 것을 이루려는 길을 걸어가면서 모든 것을 바라보고 듣고 받아들이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은 모든 것을 배우고 헤아리고 삭이고 지켜보면서 자랍니다.
아이들은 고요하면서 기운이 넘칩니다. 아이들은 작으면서 큽니다. 아이들은 두 손에 아무것도 쥐지 않으나 모든 것을 가슴에 가졌습니다. 이리하여, 아이들을 바라보면 ‘이렇게 고요하면서 이렇게 기운찰 수 있구나’ 하고 느낍니다. ‘이처럼 고요하기에 온누리가 바로 이곳에 있구나’ 하고 느껴요.
영어를 쓰는 나라에서는 ‘zero point’를 말합니다. 한자를 쓰는 나라에서는 ‘零點’을 말합니다. 한글을 쓰는 나라에서는 아직 아무 말을 짓지 않습니다. 그냥 영어로 ‘제로포인트’라 하거나 한자말로 ‘영점’이라 합니다.
영어를 쓰든 한자말을 쓰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어떤 말을 쓰더라도 우리 스스로 생각을 기울여서 마음을 움직일 수 있으면 됩니다. 우리 스스로 마음을 움직여 몸도 함께 움직이도록 하고, 삶을 지을 줄 알면 됩니다. 이러면서 자꾸자꾸 더 헤아리고 살펴야지요. 우리 스스로 슬기로운 사람이 되도록 생각날개를 펼쳐야지요.
고요누리
고요나래
고요한 것에 모든 것이 있다는 뜻으로 ‘고요누리’라는 낱말이 태어납니다. 고요한 몸짓으로 모든 것을 이루는 길로 나아간다는 뜻으로 ‘고요나래’라는 낱말이 태어납니다.
‘고요(고요하다)’에는 소리도 몸짓도 없습니다. 고요에는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고요(고요하다)’라는 낱말을 쓰는 자리를 헤아려 보셔요. 참말 ‘고요(고요하다)’에는 모든 것이 없고 멈춘듯이 느낍니다. 그런데, 모든 것이 없고 멈춘듯이 느끼는 고요한 곳에서 ‘싹이 트려는 기운’을 함께 느껴요. 언제나 고요하지만 언제나 환하면서 우렁차게 피어나려고 하는 숨결을 함께 느끼지요.
수수께끼 같으나 수수께끼가 아니라, 실마리가 없는 듯하지만 모든 곳에 실마리가 있는 결이 바로 ‘고요(고요하다)’라고 할 만합니다. 그래서 ‘제로포인트’는 바로 ‘고요누리’가 될 수 있습니다. 한국말로 ‘고요누리’를 생각하면, 모든 것이 그대로 있으나 모든 것이 새롭게 바뀌는 대목, 그러니까 ‘영점(어는점)’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제로(zero)’와 ‘영(零)’과 ‘0’은 한국말에서는 ‘고요’입니다. ‘포인트(point)’와 ‘점(點)’은 한국말에서 ‘누리’입니다. 4348.2.16.달.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