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넋·삶 17 ‘차다’와 ‘모자라다’


  우리가 어떤 일이나 놀이를 할 적에는 ‘마음에 차’야 비로소 끝낼 수 있습니다. ‘마음에 차’지 않으면 일이나 놀이를 끝내고 싶지 않습니다. ‘마음에 덜 차’더라도, 다음에 다시 해서 ‘마음이 차’도록 하겠다고 생각하면 일이나 놀이를 끝냅니다.

  밥을 먹을 적에는 ‘배에 차’도록 먹습니다. ‘배부르다’라는 낱말로 ‘배에 밥이 찬’ 모습을 나타냅니다. 배에 차도록 밥을 먹지 않으면, 남이 보기에는 많이 먹었다고 여길지라도 ‘배고픈’ 모습이에요. ‘배에 차도록 먹는 밥’은 남 눈길로는 따질 수 없습니다. 어떤 이는 두어 숟가락으로도 배가 찹니다. 어떤 이는 두어 그릇이 되어야 배가 찹니다. 사람마다 먹는 부피가 다르니 ‘배가 차는 부피’가 다르고, 배가 차는 부피가 다른 만큼, 내 둘레에서 다른 사람이 먹는 모습을 놓고 이러쿵저러쿵 말하거나 따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에 차다’ 같은 말을 씁니다. 성에 차지 않으면 안 되지요. 옷을 손수 짓든, 아니면 옷집에서 옷을 사든, 이런저런 물건을 장만하든, 또는 이런저런 물건을 선물로 받든, ‘성에 찰’ 때에 비로소 즐겁거나 기쁩니다.

  차다 → 보람차다 . 알차다 . 올차다 . 옹골차다 . 기운차다 . 힘차다 . 우렁차다

  ‘차다’라는 낱말은 여러 가지로 가지를 뻗습니다. ‘찬 모습’에 따라 어떤 느낌이거나 마음인가를 놓고 ‘배부르다’라든지 ‘기쁘다’나 ‘좋다’ 같은 낱말을 쓰기도 하는데, ‘차다’를 넣는 낱말로 ‘올차다’가 있고, 이와 맞물려 ‘올차다’라든지 ‘옹골차다’ 같은 낱말이 있어요. 사람은 예부터 일과 놀이를 하면서 으레 노래를 불러요. 그래서, ‘우렁차다’ 같은 낱말이 있습니다. 일을 하든 놀이를 하든 기운을 씁니다. 마음으로 기운을 쓸 적에는 ‘기운차다’일 테고, 몸으로 힘을 쓸 적에는 ‘힘차다’일 테지요. 머리로 생각을 지어 내 숨결이 생각을 씨앗으로 받아서 마음에 심을 때에 기운이 생기니, ‘기운차다’라는 낱말을 먼저 썼을 테고, 기운차다라는 낱말과 함께 곧바로 ‘힘차다’라는 낱말이 태어났으리라 느낍니다. 마음과 몸이 함께 움직였을 테니, 두 낱말(기운차다·힘차다)은 같은 때에 태어났으리라 봅니다.

  오늘날에는 ‘보람차다’라는 낱말을 퍽 널리 씁니다. ‘차다’가 붙은 낱말 가운데 아마 가장 널리 쓰는 낱말이지 싶어요.

  이 여러 가지 낱말을 하나하나 살핍니다. 먼저 말뜻을 살핍니다. ‘차다’는 “가득 있어 흐뭇하다”를 뜻합니다. ‘보람’은 “잊지 않거나 다른 것과 잘 가려서 알아보도록 할 때에 쓰는 것”과 “어떤 일을 한 뒤에 반갑거나 좋은 열매를 맺어서 흐뭇한 마음”을 뜻합니다. ‘알차다’는 “속에 가득 있어서 아주 야무지다”를 뜻하고, ‘올차다’는 “풀(곡식)에 맺는 열매(알)가 일찍 들어서면서 가득 있다”와 “흐뭇하면서 기운이 가득 있다”를 뜻합니다. ‘옹골차다’는 “속이 매우 야무지게 꽉 차다”를 뜻하고, ‘우렁차다’는 “소리가 매우 크면서 힘이 가득 있다”를 뜻해요.

  ‘차다’와 맞서는 낱말은 ‘모자라다’입니다. ‘차다’는 사람마다 다 다른 부피와 무게와 모습이나 숫자가 되는데, ‘모자라다’도 사람마다 다 다른 부피와 무게와 모습이 되어요. 그래서, 어떤 사람은 밥을 네 그릇을 먹었으나 모자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루에 100억 원을 벌었으나 모자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말을 열 시간 동안 쉬잖고 했지만 모자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책을 100만 권 읽었으나 아직 모자라서 더 읽고 싶을 수 있습니다.

  ‘차다·모자라다’는 ‘많다·적다’하고는 사뭇 결이 다릅니다. 찬 모습이나 모자란 모습은 ‘많다’나 ‘적다’로 가리킬 수 없습니다. 마음에 들 때에 ‘차다’요, 마음에 들지 않을 때에 ‘모자라다’입니다. 마음대로 될 때에 ‘차다’요, 마음대로 안 될 때에 ‘모자라다’입니다. 이리하여, ‘차다·모자라다’를 읽을 수 있다면 ‘좋아하다·좋다·그리다·사랑’이 어떻게 다른지 더 깊고 넓게 헤아릴 만합니다.

  ‘좋아하다’는 차거나 모자란 모습을 따지거나 살피지 않습니다. 무턱대고 들이미는 몸짓이 ‘좋아하다’입니다. 하나도 안 찼어도 ‘마냥 좋아할’ 수 있습니다. ‘좋다’는 어느 만큼 마음에 찬 모습입니다. 어느 만큼 모자랐어도 어느 만큼 차다고 여기니까 ‘좋다’고 합니다. ‘그리다’는 ‘모자람이 없다’고 여기는 마음입니다. 다만, ‘마음에 차다’라고 할 수는 없어요. ‘차다’를 따지지 않고 ‘모자람이 없다’를 헤아리는 마음일 때에 ‘그리다’입니다. 그러면 ‘사랑’은 어떤 마음일까요? 네, ‘사랑’은 마음에 찬 모습입니다. 마음에 찰 적에는 ‘모자람이 없다’를 따지지 않습니다. 오로지 ‘마음에 차다’만을 헤아리는 마음이 바로 ‘사랑’입니다.

  ‘차다’를 더 생각하면, ‘올차다’는 “일찍 알이 차다”를 가리킨다 할 수 있고, ‘알차다’는 “알이 차다”를 가리킨다 할 수 있습니다. ‘알’은 ‘열매’입니다. 열매는 동그랗습니다. 동그란 모습이 바로 ‘찬’ 모습입니다. 찬 모습은 ‘가득’ 있는 모습입니다. 빈틈이 없고, 가장 튼튼하거나 단단한 모습입니다. 사랑이란 바로 동그라미 같은 모습이면서 빈틈이 없고 튼튼하면서 단단한 결이라고 할 만하지요. 4348.2.10.불.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람타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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