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 실천시선(실천문학의 시집) 213
강형철 지음 / 실천문학사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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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노래하는 시 92



푸른 별에서 파란 별로 찾아온

― 환생

 강형철 글

 실천문학사 펴냄, 2013.12.6.



  내가 혼자 나들이를 다닐 적에, 나를 처음 만나는 사람은 으레 외국사람인 줄 여기면서 영어로 무언가 묻습니다. 두 아이를 데리고 나들이를 다닐 적에조차, 나를 처음 마주하는 사람은 곧잘 외국사람으로 여기며 영어로 말을 겁니다. 이러기를 스무 해 남짓 지냈어요. 영어로 나더러 ‘어디에서 왔느냐?’ 하고 묻는 말에 이제껏 한 차례도 대꾸를 한 적이 없지만, 엊저녁에도 이런 소리를 듣고는 앞으로는 대꾸를 해야겠다고 느낍니다.


  ‘나는 푸른 별에서 왔습니다’ 하고 영어로 말하려 합니다. 내 마음속에서 외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내 넋은 푸른 별에서 지구별로 왔다고 합니다. 푸른 별은 어디일까요? 나는 아직 잘 모릅니다. 아마, 예전 삶을 잊거나 잃었을 수 있어요. 내 마음 깊은 곳에서 내 예전 삶 이야기가 조용히 잠든 채 내가 깨어나는 날을 기다릴 수 있어요.



.. 한 방울의 빗물에도 / 온몸의 주름을 펴며 안아 주는 호수 ..  (눈인사)



  푸른 별에서 살던 내 넋은 왜 지구별로 왔을까 하고 꿈을 꿉니다. 수많은 별 가운데 왜 지구별을 골라서 몸을 빌어 이곳에서 지낼까 하고 꿈을 꿉니다. 문득 싹이 하나 틉니다. 자그마한 씨앗에서 싹이 하나 돋습니다. 작은 싹은 무럭무럭 오르면서 줄기가 되고, 새로운 잎이 돋으면서, 새로운 꽃이 핍니다. 새로운 열매가 맺고, 새로운 열매에는 새로운 씨앗이 깃들어요. 새로운 씨앗은 새로운 곳으로 새로운 바람을 타고 날아갑니다. 새로운 곳에서 새롭게 뿌리를 내리고, 다시금 새롭게 싹이 터서 무럭무럭 자라요.


  이윽고 수많은 새로운 씨앗은 새로운 나무가 됩니다. 새로운 숲이 하나 태어납니다. 이때 문득 잠에서 깹니다. 그래, 그렇구나 하고 알아차립니다. 내가 지구별로 온 까닭은 지구별에 푸르게 우거진 숲이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처음 태어난 푸른 별에서는 언제나 푸른 별빛이 감돌았고, 이 별빛은 지구별에 닿아서 푸른 숲이 우거지도록 까만 씨앗을 낳았어요.


  그러니까, 지구별은 숲이 우거질 수 있는 별입니다. 지구별은 나무가 가득하여 숲내음이 넘실거릴 수 있는 별입니다. 지구별은 풀과 나무과 어깨동무하면서 숲으로 노래할 수 있는 별입니다.



.. 도토리 두 발로 껴안고 / 앞니 두 개로 / 뇸뇸거리는 다람쥐 ..  (은적운 13)



  지구를 지구 바깥에서 보면 어떤 빛깔일까요? 숲빛이 가득해서 푸른 빛깔일까요? 아니면 바닷빛을 뿜으면서 파란 빛깔일까? 지구별이 파랗게 보인다면, 바닷빛이 파랑이기 때문일 텐데, 바닷물에는 딱히 아무런 빛깔이 없어요. 바닷물은 맑습니다. 바닷물이나 냇물은 모두 맑아서 모든 빛깔을 받아들여요. 숲에서는 맑으면서 푸른 물입니다. 새파란 하늘만 있는 드넓은 바다에서는 파란 물입니다. 지구는 아무래도 바다가 한결 넓으니, 지구 바깥에서는 ‘파란 별’로 보일 만해요. 하늘빛을 닮은 바닷물이요, 하늘과 바다가 파랑으로 한몸이 되어 빛나는 지구라고 할까요. 파란 지구별에 푸른 숲이 얼크러져서 곱게 빛난다고 할까요.



.. 어머니 일흔아홉이니 / 쌀 씻어 밥 안치는 일은 칠십 년은 됐으리라 / 짚풀은 부지깽이로 아궁이에 넣어 지피고 / 한참 후엔 전기밥통에 쌀 씻어 안쳤으리라 ..  (환생)



  강형철 님이 쓴 시를 그러모은 《환생》(실천문학사,2013)을 읽습니다. 강형철 님이 손수 짓는 삶을 싯말 하나로 읊고, 강형철 님을 낳고 기른 어머니가 늙어서 ‘늙은 아이’가 된 강형철 님이 어머니를 보살피고 헤아리는 삶을 누리는 하루를 싯말 둘로 읊습니다. 시집 《환생》은 다시 태어나서 새로우면서 아름답게 누리는 이야기를 가만히 보여줍니다.



.. 그 이름도 곱고 고운 장미아파트 / 동 이름도 순 조선말로 가동과 나동 / 사이 / 그러니까 한 이십여 미터쯤 되는 거리에서 / ‘베란다 담뱃불’을 돋운 것에 / 약간 미안해하며 고개 돌린 사람에게 ..  (차나 한 잔)



  우리 몸은 푸릅니다. 우리 몸은 숲에서 난 것을 받아들여서 기운을 얻거든요. 우리 마음은 파랗습니다. 우리 마음은 하늘을 흐르는 바람을 맞아들여서 기운을 얻어요. 밥을 먹으면서 몸이 푸르고, 바람을 마시면서 마음이 파랗습니다. 우리 몸에는 푸른 기운과 파란 기운이 함께 얽히고, 두 가지 기운은 빨간 빛깔로 흐르는 물(피)이 사이에 깃들면서 고운 숨결이 됩니다. 그리고, 우리 머리는 생각을 지어서 마음에 심는데, 우리 머리가 지은 생각은 노란 해님처럼 빛나면서 까만 씨앗이 되어요. 우리 마음에는 머리가 지은 노란 해님처럼 빛나는 까만 씨앗이 깃들고, 이 씨앗은 하얗게 깨어납니다. 몸과 마음에서 온갖 빛깔 무지개가 태어난다고 할까요.



.. 바람 지나간 자리 / 가을이면 익힐 / 포도송이 닮은 열매 / 눈짓처럼 감춰 두고 ..  (노래-담쟁이덩굴)



  시집 한 권을 읽으면서 내 몸을 생각합니다. 시집 한 권을 찬찬히 읽고 덮으면서 내 마음을 헤아립니다. 내가 태어난 별을 그리고, 내가 삶을 짓는 별을 돌아봅니다. 푸른 별에서 파란 별로 찾아온 내 넋은, 바로 오늘 이곳에서 곱다랗게 노래하려는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내 이웃이 쓴 시를 읽으면서 하하 웃습니다. 나 스스로 시를 새롭게 써서 우리 아이들과 함께 읽으면서 나긋나긋 노래합니다. 내 동무가 쓴 시를 읽으면서 깔깔 웃습니다. 나 스스로 시를 다시금 새롭게 써서 우리 아이들과 같이 읽으면서 기쁘게 노래합니다. 4348.2.8.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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