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라는 곳에 스스로 갇힌 사람



  엊그제에 아이들과 도시로 마실을 오면서 새삼스레 느낀다. 도시라는 곳에서 살려면, 어버이로서 아이한테 날마다 잔소리를 할 수밖에 없든지, 잔소리가 아닌 이야기가 되도록 스스로 생각을 크게 고쳐먹어야 하는구나 하고.


  고작 서른 해쯤 앞서만 하더라도, 시골에서 태어나든 도시에서 태어나든 아이들한테 놀이가 있었다면, 이제는 시골에서 태어나든 도시에서 태어나든 아이들한테 놀이가 없다. 아이들한테는 보육원과 어린이집 조기교육이 있으며, 보육원과 어린이집을 마치면 곧장 입시지옥 학교와 학원이 있다. 아이들한테 아무런 삶도 놀이도 노래도 춤도 이야기도 없이 쳇바퀴로 굴러야 하는 감옥만 있다.


  마음껏 뛰놀지 못한다면, 아이로서는 어디이든 감옥일 수밖에 없다. 둘레를 살펴보라. 아이들이 집에서 뛰거나 구를 수 있는가? 아파트나 다세대주택에서 아이들이 마음 놓고 하루 내내 신나게 뛰거나 구르면서 놀 수 있는가? 아이들이 목청껏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어도 될 만한 동네가 이 나라 어디에 있을까?


  아이들이 느긋하게 돌을 치거나 구슬을 굴리거나 딱지를 치거나 고무줄을 잡거나 달리기를 하거나 연을 날릴 만한 빈터도 골목도 들도 없다. 도시나 시골이나 똑같다. 예전에 어른들은 샅바조차 없어도 어디에서나 씨름을 놀거나 닭싸움을 할 수 있었다면, 이제 어른들이 이런 놀이조차 할 만한 데란 없다. 오늘날 도시나 시골 모두, 어른한테는 술집과 찻집과 노래방과 맛집 따위밖에 없다. 아이한테는? 아이한테는 그저 학교와 학원뿐이다. 공원에 간들 풀밭에 앉을 수 있겠는가. 공원에서 나무 옆에 드러누워 낮잠을 잘 수 있겠는가. 이런 곳에서 무슨 생각이 자라고, 무슨 꿈을 키우며, 무슨 사랑을 속삭이겠는가.


  감옥에서도 책은 읽고, 글은 쓰며, 공부도 하고, 명상도 할 테며, 몸도 씻고, 똥오줌도 누며, 밥도 먹고, 텔레비전도 보고, 전화도 하고, 뭐 이런저런 것은 다 하리라. 그러나, 감옥에서는 씨앗을 심지 못하고, 나무를 기르지 못하며, 삶을 돌보지 못한다. 어떤 번듯한 일자리가 있거나, 자가용을 굴리거나, 문화예술을 누린다고 해서 삶이 아니다. 삶이 되려면, 꿈을 생각으로 지을 수 있어야 하며, 삶을 노래하듯이 춤추는 하루가 되어야 한다. 꿈을 생각으로 짓지 못하는 곳이라면 감옥이고, 삶을 노래하듯이 춤추는 하루가 되지 못한다면 그예 감옥일 뿐이다.


  우리는 도시라는 곳에 스스로 갇힌다. 우리는 도시라는 곳에 아이들을 가둔다. 도시를 감옥으로 삼으면서, 시골도 감옥으로 바꾸려고 애쓴다. 시골마을을 가로지르는 고속도로나 기찻길이나 송전탑을 함부로 쏟아붓고, 시골마을에 핵발전소나 골프장이나 관광단지나 공장이나 ‘공장 같은 돼지우리·닭우리·소우리’를 잔뜩 세운다. 지구별은 아름다운 숲이 될 수도 있지만, 끔찍한 감옥이 될 수도 있다. 지구별에서 도시와 시골 모두 아름다운 보금자리가 될 수도 있지만, 그악스러운 감옥이 될 수도 있다. 그러니까, 우리는 감옥에 갇힌 채 또 다른 감옥을 자꾸 스스로 세워서 더 깊은 감옥에 갇힌 삶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아름다운 보금자리를 일군 뒤, 이 아름다운 보금자리에서 한결 아름다운 새로운 쉼터를 사랑스레 지을 수 있다. 어느 길로 갈 때에 노래와 춤과 이야기와 웃음이 흐를까? 4348.2.8.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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