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찍는 눈빛 122. 새로운 맛을 겪는다
고구마를 삶을 적에는 감자를 함께 삶습니다. 단호박이 있으면 단호박도 함께 삶는데, ‘그냥 호박’이 있으면 ‘그냥 호박’도 함께 삶고, 당근이나 달걀도 함께 넣습니다. 커다란 냄비에 여러 가지가 함께 어우러집니다.
아이들이 기다리는 밥상에 그릇을 올릴 적에는 으레 단호박을 먼저 올립니다. 아이들은 언제나 ‘먼저 먹고 싶은 것’이 따로 있어서, 먼저 먹고 싶은 것만 먹다가 배가 다 부르기 마련이거든요. ‘먼저 먹고 싶은 것’은 배가 부른 뒤에도 먹지만, ‘나중에 먹고 싶은 것’은 배가 고프지 않다면 먹지 않으려 합니다. 아무래도, 밥상에 두 가지가 있으면 ‘굳이 다른 한 가지를 안 먹는다’고 할 만합니다. 둘 다 있으니까요.
처음부터 두 가지를 함께 올리면 ‘따끈따끈 단호박’이 얼마나 맛있는지 아예 못 느끼거나 못 겪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단호박만 먼저 올려’서 아이들이 어느 만큼 먹을 때까지 기다립니다. 이러고 나서 감자를 올리고, 맨 나중에 고구마를 올립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중국집에서 여러 가지 밥을 흐름에 따라 올리는 결하고 닮은 셈입니다. 차츰 더 맛나거나 새로운 밥을 올리듯이, 단호박이랑 당근이랑 감자랑 고구마, 이러한 흐름으로 하나씩 올립니다. 네 가지 모두 새로운 맛으로 느끼고, 맨 마지막에는 ‘물로 삶지 않’고 ‘김으로 삶’은 남다른 맛을 느끼기를 바라요.
사진을 찍는 사람마다 ‘더 마음이 끌리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더 마음이 끌리는 이야기’를 사진으로 담기 마련입니다. 아주 마땅한 흐름입니다. 그런데, 어느 한 가지 이야기만 사진으로 찍다 보면, 어느 한 가지 이야기를 ‘그예 한 가지 눈길’로밖에 못 보는 굴레에 갇힙니다. 그래서, 다른 여러 가지 이야기를 꾸준하게 돌아보도록 스스로 다스릴 수 있으면, 다른 여러 가지를 ‘내가 마음이 끌리는 이야기를 바라보’듯이 바라볼 수 있는 한편, ‘내가 마음이 끌리는 이야기’를 ‘다른 여러 가지 이야기를 마주하’듯이 마주하면서, 이제껏 느끼지 못하는 새로운 눈길이나 손길이나 마음길이 될 수 있습니다. 4348.2.4.물.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