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말도 익혀야지

 (215) 부르다 1


뭐든지 저질러 놓고 보자는 메리의 생각은 팀 전체의 운영에 심각한 차질을 부르기 때문이다

《야마모토 토시하루/문종현 옮김-세상에서 가장 수명이 짧은 나라》(달과소,2003) 121쪽


 운영에 심각한 차질을 부르기 때문이다

→ 운영이 어렵도록 하기 때문이다

→ 운영이 안 되도록 하기 때문이다

→ 운영이 크게 어긋나도록 하기 때문이다

→ 꾸릴 수 없도록 하기 때문이다

→ 꾸리지 못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 꾸리기 힘들도록 하기 때문이다

 …



  1958년에 나온 《중사전》(한글학회 펴냄)을 보면 ‘부르다’를 다섯 가지로 풀이합니다. “1. 소리를 쳐서 남을 오라고 하다 2. 글이나 또는 기호로써 알려서 사람을 청하여 오게 하다 3. 물건의 값을 말하다 4. 이름을 외치다 5. 소리를 내서 노래를 하다” 1940년에 나온 《조선어사전》(문세영 엮음)을 보아도 이 다섯 가지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요즈음에는 ‘부르다’에 두 가지 쓰임새가 새로 생겼다고 합니다.


ㄱ. 어떤 방향으로 따라오거나 동참하도록 유도하다

  - 조국이 우리를 부른다 / 푸른 바다가 우리를 부른다

ㄴ. 어떤 행동이나 말이 관련된 다른 일이나 상황을 초래하다

  - 화는 또 다른 화를 부른다 / 피는 피를 부르기 마련이다


  문학을 하는 이들이 ㄱ처럼 쓰기에 “어느 곳으로 이끈다”는 뜻으로 ‘부르다’를 쓰는구나 싶습니다. 예부터 한국사람은 “나라가 우리를 오라고 한다”라든지 “나라가 우리더러 오라고 외친다”처럼 썼어요. “바다가 우리를 부른다” 같은 말마디도 ‘부르다 1’처럼 썼다고 해야 옳구나 싶습니다. 말뜻 그대로 “오라고 하다”라는 뜻으로 쓰는 ‘부르다’입니다. 이 같은 쓰임새로 뜻을 넓힐 만하리라 봅니다.


  ㄴ을 살피면, 예부터 ‘일으키다’라는 낱말을 따로 썼으니 ‘부르다’를 ㄴ처럼 쓸 일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학문을 하거나 번역을 하는 이들이 ‘일으키다’를 올바로 쓰지 않으면서 ㄴ 같은 쓰임새가 퍼지는구나 싶습니다. ‘부르다’를 잘못 쓰는 자리는 바로 ㄴ이라고 할 만합니다.


  국립국어원에서 펴낸 《표준국어대사전》을 보면, ‘부르다’라는 한국말을 풀이하면서 ‘초래(招來)’라는 한자말을 씁니다. “불러서(招) 온다(來)”는 소리입니다. 그러니까, 한자말 ‘초래’를 쓰면서, 이 낱말을 한국말로 ‘부르다’나 ‘불러오다’로 풀이한 셈입니다. 이밖에 ‘환기(喚起)’를 ‘불러일으킨다’로 옮기고, ‘소집(召集)’을 ‘불러 모으다’로 옮기는 지식인이거나 학자입니다.


  사회와 문화가 달라지면 말도 달라지기 마련이니, ‘부르다’라는 낱말에도 얼마든지 새로운 뜻이 붙을 만합니다. 그러나, 한국사람 스스로 한국말을 갈고닦으면서 넓히는 뜻이나 쓰임새가 아니라면 곰곰이 돌아볼 노릇입니다. 영어나 한자말을 잘못 옮기면서 퍼지는 뜻이나 쓰임새라면 찬찬히 되새길 노릇입니다. 왜냐하면, 한국말은 한국말일 뿐, 한자말이나 영어나 일본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한국말사전을 더 살피면, 한자말 ‘초래(招來)’를 “1.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함 2. 불러서 오게 함”으로 풀이합니다. ‘초래’ 둘째 뜻풀이가 한국말에서 잘못 쓰인다고 밝혔는데, ‘초래’ 첫째 뜻풀이도 얄궂습니다. “결과를 가져오게 함”은 한국말이 아닙니다. “결과가 나타나게 함”이나 “결과가 나오게 함”이나 “결과가 있게 함”처럼 고쳐써야 올바릅니다. 결과나 결말은 ‘가져오지’ 않습니다. 결과나 결말은 ‘나타나’게 하거나 ‘나오’게 하거나 ‘있’게 합니다.


 화는 또 다른 화를 부른다

→ 화는 또 다른 화로 이어진다

→ 화는 또 다른 화가 된다

→ 화는 또 다른 화로 흐른다

 피는 피를 부르기 마련이다

→ 피는 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 피는 피로 되기 마련이다

→ 피는 피로 흐르기 마련이다


  싸움은 또 다른 싸움으로 이어집니다. 웃음은 또 다른 웃음으로 이어집니다. 노래는 또 다른 노래가 되고, 춤은 또 다른 춤이 됩니다. 이제는 ‘부르다’라는 낱말도 ‘이어지다·되다·흐르다’처럼 쓸 만하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만, 한국말을 한국말답게 쓰는 결부터 제대로 살핀 뒤에 천천히 쓰임새를 넓힐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한국말을 서양말이나 한자말이나 일본말처럼 얄궂게 쓰지는 않기를 바랍니다. 4337.5.7.쇠/4348.2.1.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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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든지 저질러 놓고 보자는 메리는 모둠을 꾸리기에 어렵도록 하기 때문이다

뭐든지 저질러 놓고 보자는 메리는 모둠을 꾸릴 적에 크게 어긋나게 하기 때문이다

뭐든지 저질러 놓고 보자는 메리 생각은 팀 전체를 운영하기 어렵도록 하기 때문이다


“메리의 생각은”은 “메리 생각은”이나 “메리는”으로 다듬습니다. “팀(team) 전체(全體)의 운영(運營)에”는 “팀 전체를 운영하기에”로 손보면 ‘-의’를 덜 수 있고, 더 마음을 기울여 “모둠을 꾸리기에”로 손볼 만합니다. “심각(深刻)한 차질(蹉跌)을”은 “크게 어렵도록”이나 “크게 어긋나도록”으로 손질합니다.


..



 우리 말도 익혀야지

 (365) 부르다 2


그는 자신의 ‘젊은 날의 기념물’이라고 부르는 굵은 대나무를 늘 가지고 다녔다 … 고대 인도에는 아슈람이라 부르는 숲 속 학교가 있었다

《하진희-샨티니케탄》(여름언덕,2004) 19, 35쪽


 젊은 날의 기념물이라고 부르는 굵은 대나무

→ 젊은 날 기념물이라고 하는 굵은 대나무

→ 젊은 날을 기념하는 것이라는 굵은 대나무

→ 젊은 날 발자취로 삼는 굵은 대나무

 아슈람이라고 부르는 숲 속 학교

→ 아슈람이라고 하는 숲 속 학교

→ 아슈람이라는 숲 속 학교

 …



  한국말 ‘부르다’는 “이름을 외치다”를 뜻하는 자리에 씁니다. “이름을 붙이다”를 뜻하는 자리에는 ‘부르다’를 쓰지 않습니다. 그러니, 이 보기글에서는 “(무엇)이라고 하는”으로 바로잡아야 올바릅니다. 또는 “(무엇)으로 삼는”으로 바로잡습니다. 숲 속 학교 이름을 밝히려고 하는 자리라면 “아슈람이라는 숲 속 학교”처럼 단출하게 적을 수 있습니다. “한국이라고 하는 나라”나 “한국이라는 나라”처럼 쓰는 말투를 헤아리면 됩니다. 4337.10.26.불/4348.2.1.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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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스스로 ‘젊은 날 기념물’이라고 하는 굵은 대나무를 늘 가지고 다녔다 … 옛 인도에는 아슈람이라는 숲 속 학교가 있었다

그는 스스로 ‘젊은 날 발자취’이라고 하는 굵은 대나무를 늘 가지고 다녔다 … 옛 인도에는 아슈람이라 하는 숲 속 학교가 있었다


‘자신(自身)의’는 ‘스스로’로 다듬고, “젊은 날의 기념물(紀念物)”은 “젊은 날 기념물”이나 “젊은 날 발자취”로 다듬습니다. ‘고대(古代)’는 ‘옛’으로 손질합니다.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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