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살이 일기 84] 밥빛

― 더 맛있는 밥이 아닌



  아이들과 밥을 먹습니다. 아이들과 아침저녁을 함께 먹습니다. 우리는 맛난 밥을 먹지 않습니다. 우리는 늘 밥을 함께 먹습니다. 이 밥은 그저 내 손으로 차리는 밥이요, 아이들이 저희 손으로 받아들이는 밥입니다. 밥을 다 차린 뒤 설거지를 하거나 빨래를 하거나 이런저런 일을 하느라 아이들보다 늦게 밥상맡에 앉습니다. 아이들이 으레 먼저 먹습니다. 밥술을 뜨던 아이들이 “아, 맛있다!” 하고 외치기도 하고, 느즈막하게 밥상맡에 앉아 밥술을 뜨다가 나도 모르게 “오, 맛있네!” 하고 외치기도 합니다.


  내가 차린 밥이라서 맛있지 않습니다. 시골에서 지어 먹는 밥이기에 맛나지 않습니다. 몸으로 스며드는 따스한 기운이 반가우니 맛있구나 하고 느낍니다. 손수 차린 밥이라서 맛나다기보다, 아이들과 즐겁게 둘러앉아 사랑스레 밥술을 뜰 수 있어서 맛있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국 한 그릇이 맛있고, 밥 한 그릇이 맛납니다. 어버이 스스로 사랑을 심어서 지은 밥일 때에 맛있고, 어버이가 아이와 하루를 누리는 기운을 얻으려고 차린 밥일 적에 맛납니다.


  오징어볶음을 먹을 적에 “오징어 한 점 무 한 점 당근 한 점 파 한 점, 이렇게 넉 점으로 네 가지 빛이 되었네.” 하는 말이 저절로 나옵니다. 아버지는 스스로 즐거워서 이렇게 먹습니다. 이 모습을 본 큰아이도 제 숟가락에 넉 점을 하나씩 올리고는 “나도 네 가지 빛깔이야. 아, 맛있겠다.” 하고 말합니다. 작은아이는 누나 숟가락을 보고는 저도 네 가지 빛깔이 되고 싶습니다. 우리는 다 함께 밥상맡에서 ‘맛있는 밥맛’을 스스로 짓습니다. 재미나게 놀이를 하면서 맛나게 밥 한 그릇 비웁니다. 4348.1.29.쇠.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고흥 이야기)







댓글(2)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희망찬샘 2015-01-31 0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삶이 바로 배움이네요.

숲노래 2015-01-31 11:39   좋아요 0 | URL
날마다 새로 배우는 하루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