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넋·삶 7 ‘함께살기’와 ‘쇠북꾼’



  나는 스무 살 언저리에 내 이름을 찾았습니다. 내 어버이가 나한테 물려준 이름은 ‘종규’인데, 내 어버이한테서 벗어나고 싶은 꿈을 키우면서 내 이름을 스스로 지었습니다. 그무렵, 그러니까 스무 살 언저리에 내가 스스로 지어서, 그때부터 스무 해 남짓 아끼면서 섬기는 내 이름은 ‘함께살기’입니다.


  어버이가 나한테 물려준 이름은 ‘종규’는 한자로 ‘鐘圭’로 적습니다. 어버이한테 이 이름이 무슨 뜻이냐 하고 여쭈었을 적에, 어버이는 이 이름이 무슨 뜻인지 말해 주지 못했습니다. 어버이는 이 이름을 ‘항렬 돌림자’로 붙였을 뿐입니다. 어버이 스스로 이 이름이 무슨 뜻인지 짓지 않았어요.


  한자로 내 이름을 살피면 ‘쇠북(鐘) + 홀(圭)’입니다. 그러니까, “쇠북을 홀로 치는 사람”인 셈이지요. 절집이라든지 서울 종로에 보면 ‘커다란 종’이 있습니다. ‘종’은 한자말이고, 한국말은 ‘쇠북’입니다. 쇳덩이로 지은 북이기에 ‘쇠북’이고 ‘종’입니다.


  어릴 적에는 “쇠북을 홀로 치는 사람”이 무엇을 나타내는지 몰랐고, 알고 싶지 않기도 했습니다. 나 스스로 철이 들 무렵 찾아와서 내가 기쁘게 맞아들여서 나한테 붙인 이름 ‘함께살기’는 ‘쇠북꾼’하고는 아주 맞서는 낱말이라 할 만합니다. 하나는 하나요, 다른 하나는 다른 하나입니다. 하나(쇠북꾼)는 ‘1차 의식’이고, 다른 하나(함께살기)는 ‘2차 의식’입니다. 내 어버이가 나한테 물려준 ‘1차 의식’에서 내가 작은 점을 찾아내어 ‘2차 의식’을 지은 뒤, 나로서는 내 나름대로 ‘엄청나고 새로운 경험’을 여태 스스로 지으며(창조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니까, ‘쇠북꾼’과 ‘함께살기’는 다르면서 같은 말이고, 같으면서 다른 말입니다.


  ‘함께살기’는 겉으로 보자면, 겉뜻으로 보자면 “함께 살기”입니다. 속으로 보자면, 속뜻으로 보자면, “함께 보고 함께 느끼고 함께 생각하고 함께 사랑하고 함께 꿈꾸고 함께 노래하여 함께 살다”입니다. ‘함께살기’라는 이름에는 일곱 가지 흐름이 있습니다. 일곱 빛깔 무지개이고, 일곱 가지 조각(씰)입니다. ‘보다’에서 ‘느낌’이 태어나고, ‘생각’이 다시 태어나서 ‘사랑’으로 이어집니다. ‘꿈’이 자라서 ‘노래’가 되고, 이윽고 시나브로 ‘삶’이 됩니다.


  우리가 어버이한테서 물려받은 이름은 모두 ‘밭’이요 ‘바탕’이면서 ‘뿌리’입니다. 이러한 밭과 바탕과 뿌리에 씨앗을 심지요. 이 씨앗을 심으면서 ‘내 이름을 내가 손수 새로 짓기’를 할 수 있으며, 이렇게 내 손에 숨결을 담아서 ‘내 이름을 새롭게 처음 지으’면, 내 몸은 어느새 바람이 되어 하늘을 납니다.


  우리는 모두 두 가지 이름이 있는 사람이고, 두 가지 이름은 함께 맞물리면서 흐릅니다. 함께 맞물리면서 흐르는 이름은 서로 아끼고 섬기는 넋이고, 서로 아끼고 섬기는 넋은 언제나 ‘사랑’이라는 징검다리를 기쁘게 밟고 노닐면서 자랍니다. 고맙습니다. 4348.1.22.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람타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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