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맛



  집 바깥으로 나온다. 열흘에 걸쳐 배우는 곳에 있다. 이곳에서 배우는 사람은 ‘배우는 일’에 모든 마음과 기운을 쏟는다. 그래서, 밥은 다른 사람이 해 준다. 모처럼 열흘씩 ‘남이 해 주는 밥’을 먹는다고 할 텐데, 남이 해 주는 밥을 먹으면서, 이제껏 ‘밥맛’을 느낀 적이 드물다. 왜 그럴까?


  내 어머니나 곁님 어머니가 해 주는 밥에서는 밥맛을 느끼고, 곁님이 해 주는 밥에서도 밥맛을 느낀다. 그러나, 커다란 밥집이든 작은 밥집이든, 밥집에서는 좀처럼 밥맛을 못 느낀다.


  밥술을 들다가 생각한다. 나는 내가 손수 지어서 먹는 밥이 가장 맛있다. 다른 사람은 모르겠으나, 우리 아이들은 제 어버이가 차려서 주는 밥이 가장 맛있으리라 본다. 아니, 아이들은 제 어버이뿐 아니라 남이 차려서 주는 밥도 맛있다고 여길 테지. 왜냐하면, 아이들은 아직 손수 밥을 지어서 먹는 삶은 아니니, 다른 누가 무엇을 주더라도 고마우면서 반갑고 즐겁게 먹는다고 느낀다.


  나는 어떠한가. 다른 사람이 해 주는 밥은 무엇보다 ‘고맙다’고 느낀다. 그러니까, 내가 나한테 차려서 주는 밥, 손수 지어서 먹는 밥은, 내가 나한테 고마우면서 맛을 느낀다. 남이 나한테 차려서 주는 밥에서는 고마움을 느끼되 맛까지는 못 느낀 셈이다.


  너무 많은 사람한테 한꺼번에 차려서 주는 밥이기에, 누가 누구한테 주는지 모르는 채 짓는 밥이기에 밥맛을 못 느끼는 셈일까. 그러니까, 바깥밥을 먹는 자리에서도, 이 밥을 짓는 다른 사람이 나를 느끼면서 나를 생각해서 밥을 짓는다면 밥맛을 기쁘게 느낄 만하리라 본다. 그리고, 밥을 짓는 그분을 내가 마음속으로 그릴 수 있으면, 나로서는 밥맛을 새삼스레 느낄 만하리라 본다.


  이제껏 살면서 ‘남이 차려서 주는 밥’에서 맛을 느끼지 못했다면, 이제껏 나는 ‘나한테 밥을 차려서 주는 사람이 어떤 마음이요 숨결’인지 느끼려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4348.1.17.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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