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백의 소리 8
라가와 마리모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4년 12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453



내가 걷고 싶은 길은

― 순백의 소리 8

 라가와 마리모 글·그림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4.12.25.



  내가 걷고 싶은 길은 아름다운 길입니다. 내가 걷고 싶은 길은 사랑스러운 길입니다. 내가 걷고 싶은 길은 꿈과 같은 길입니다. 그러니, 내가 걷고 싶은 길은 나한테 즐거우면서 내 이웃과 동무 모두한테 즐겁습니다.


  네가 걸을 길은 내가 걷는 길처럼 너한테 아름답고 사랑스러우며 꿈과 같은 길이리라 생각합니다. 나와 너는 같은 마음이요 같은 숨결일 테니까요. 나도 너도 저마다 아름답게 걷는 길에서 다 함께 사랑을 키우고, 다 함께 사랑을 키우기에, 날마다 새롭게 꿈을 짓습니다.



- “관객의 반응도 굉장했는데! 점수를 무슨 기준으로 매기는 거람?” “그기다. 세츠에게, 점수를 매기기가 어려웠을 기라.” (36∼37쪽)

- ‘내는, 할배가 아이다! 어떻게 연주하면 좋았다는 거지?’ (48쪽)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길을 걷습니다. 파랗게 눈부신 하늘이면 파랗게 눈부신 하늘을 두 눈에 담고, 하얗게 구름이 낀 하늘이면 하얗게 구름이 낀 하늘을 마음에 담으며, 구름 사이로 햇발이 퍼지는 하늘이면 구름 사이로 햇발이 퍼지는 하늘을 가슴에 담습니다. 어떤 하늘이든 내 몸에 담으면서 걷습니다. 높다란 건물이 줄지어 선 도시라 하더라도, 걸리적거리는 것이 하나도 없는 시골이라 하더라도, 늘 한결같이 하늘을 보면서 걷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빛과 숨결을 받고, 하늘에서 퍼지는 소리를 바람과 함께 받습니다.


  내가 걷는 길에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길가에 돋는 풀포기한테 이야기가 있고, 풀포기에서 줄기가 올라 꽃이 피면 꽃 이야기가 있습니다. 나무가 자라니 나무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있고, 나무가 자라기에 새가 나뭇가지에 앉아서 새들이 일구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나무가 한 그루 두 그루 모여 숲을 이루니, 숲이 빚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걷다가 쉬면서 이야기가 태어납니다. 자전거를 달리니 이야기가 자랍니다. 마음에 드는 곳을 찾아 조그맣게 집을 지어 보금자리로 삼으니 이야기가 거듭납니다.



- “심사위원에게는, 명인 마츠고로 씨의 소리건, 네 본래의 소리건, 아무래도 상관없는 거야. 필요한 것은, 소리 내부에 흐르는 ‘하나의 큰 줄기’. 너는 그 줄기를 갑자기 바꿔 버렸지. 표현이 달라지면 듣는 사람은 당황하게 돼. 그것도 옛 주법과 새로운 주법의 양 극단을 오갔으니.” (70쪽)

- ‘하지만, 사와무라 세츠가 이대로 끝날 거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가 더 많은 청중에 의해 갈고닦이면, 과연 어떻게 될까?’ (78쪽)





  라가와 마리모 님이 빚은 만화책 《순백의 소리》(학산문화사,2014) 여덟째 권을 읽습니다. 샤미센으로 빚는 이야기는 어디에서 어디로 흐를까 하고 생각합니다. 샤미센을 켤 적에 줄이 똥똥 떨리면서 내는 소리는 어디에서 태어나 어느 곳으로 퍼지는지 곰곰이 헤아립니다.


  더 나은 소리가 있을까요. 더 낮은 소리가 있을까요. 더 빼어난 소리가 있을까요. 더 아름다운 소리가 있을까요.


  갈고닦는 소리는 무엇일까요. 가다듬는 소리는 무엇일까요. 노래가 되는 소리는 어디에 있고, 꿈처럼 빛나는 소리는 누가 빚을까요.



- ‘저 작고 오래된 무대. 나란히 붙어 있는, 연주자며 노래꾼의 이름. 얼마나 많은 연주자가, 관객이, 여기서.’ (104쪽)

- “너는, 왜 여기 올 결심을 한 거냐?” “저는, 샤미센으로 먹고살기로 결심했으니까요.” (120∼121쪽)





  샤미센으로 살고 싶은 아이는 샤미센이 아이 몸과 마음을 고루 싣습니다. 아이 넋이 샤미센을 거쳐 새롭게 태어납니다. 학교를 다니면서 샤미센을 동아리에서 켜는 아이는 틈틈이 샤미센을 켜면서 아이 생각을 한 올 두 올 싣습니다.


  온몸을 실은 노래가 흐릅니다. 온마음을 담은 노래가 흐릅니다. 모든 꿈이 깃든 노래가 흐르고, 모든 사랑이 피어나는 노래가 흐릅니다.


  돈을 벌려고 샤미센을 켜는 사람이 있고, 할배한테서 물려받은 샤미센을 켜는 아이가 있습니다. 노래가 그저 좋아 샤미센을 켜는 사람이 있고, 어버이한테 물려받은 솜씨를 키워 아주 멋지게 살고 싶은 아이가 있습니다. 다 다른 사람이 다 다른 노래를 짓습니다. 다 다른 아이가 다 다른 생각으로 다 다른 꿈을 짓습니다.



- ‘뒷배가 없다는 것은, 속박도 없다는 뜻이다.’ (169쪽)

- “인자 학교 안 온다.” “뭐? 안 오다니, 전학 가?” “아니, 그만둘 끼다.” “어, 어째서? 학교는 중요하잖아! 장래 같은 걸 생각하면.” “나는, 샤미센이 있으면 된다. 쭉 그걸 켤 끼다. 이것만 있으면 된다. 내 안에서 학교는 늘 어렵고, 이게 아이다 싶었다.” (174∼175쪽)



  샤미센은 악기이면서 말입니다. 샤미센은 노래이면서 이야기입니다. 샤미센은 연장이면서 징검다리입니다. 샤미센은 넋이면서 마음입니다.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아직 모릅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직 모릅니다. 그러나 꼭 한 가지를 알아요. ‘샤미센을 켜는 동안 마음이 차분’하고 ‘샤미센을 듣는 동안 마음이 자라’는 줄 압니다. 그래서, 한 사람은 샤미센을 켜는 길을 걷고, 다른 한 사람은 샤미센을 듣는 자리에 섭니다. 모두 이웃이면서 따사로운 동무입니다. 4348.1.18.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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