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겁게 노래하면서 쓰기



  머리로 꾸민 글이 있고, 마음으로 지은 글이 있습니다. 두 가지는 겉모습으로는 모두 글이지만, 속내를 살피면 하나는 글이되 다른 하나는 글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머리로 꾸밀 적에는 글이 아니고 그림이 아니며 사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겉모습으로 꾸민다고 해서 ‘알맹이’가 되지 않아요. 속내를 살피면서 가꿀 때에 비로소 ‘알맹이’가 됩니다. 알맹이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알맹이는 없이 껍데기만 있을 적에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니, 껍데기만 있다면 껍데기요, 알맹이가 있을 적에 비로소 알맹이요 글이고 사진이고 그림입니다.


  볍씨를 심어서 벼를 거두어야 쌀밥입니다. 볍씨를 심었는데 쭉정이만 나온다면 쌀밥이 아닙니다. 한낱 쭉정이입니다. 동시 모양이 나도록 글을 썼기에 모두 동시라고 하지 않습니다. 동화 얼거리가 되도록 글을 썼으니 모두 동화라고 하지 않습니다. 신문 꼴이 되었으니 모두 신문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거짓을 다루어도 신문은 신문이라고 할는지 모르나, 참다운 모습이나 얼거리나 알맹이가 아니라면, 꼴만 신문일 적에는 신문이 아닙니다. 참답게 제대로 쓰지 않았으면, 모양이나 시늉으로만 동시나 동화라 하더라도 동시나 동화가 될 수 없습니다.


  종이를 묶는다고 하더라도 모두 책이 되지 않습니다. 책이라는 이름을 얻으려면, 종이를 펼쳐서 눈으로 읽고 마음으로 새길 만한 이야기가 깃들어야 합니다. 아무런 이야기가 없고, 참답게 제대로 줄거리가 없으면 책이 아닙니다. 그저 종이만 묶은 꾸러미라면 불쏘시개일 수 있어요.


  즐겁게 아이와 노래하면서 저절로 쓴 동시일 때에, 아이도 어른도 다 함께 좋아하면서 즐기는 동시입니다. 즐겁게 아이와 꿈꾸면서 사랑으로 쓴 동화일 때에, 아이도 어른도 다 함께 아끼면서 누리는 동화입니다. 즐겁게 노래하지 않는다면 동시가 태어나지 않습니다. 즐겁게 꿈꾸지 않는다면 동화가 태어나지 않습니다. 글솜씨로는 동시나 동화를 못 씁니다. 문학창작이나 문예창작으로는 동시나 동화를 못 씁니다. 사랑스레 부르는 노래요 아름답게 짓는 꿈일 때에 비로소 동시나 동화를 씁니다. 4348.1.5.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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