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찍는 눈빛 117. 하루 내내



  하루 내내 사진만 찍으면서 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늘 바라보는 모습은 언제나 ‘사진이 될 만하’기 때문입니다. 어디 ‘좋은 데’에 가야 찍을 수 있는 사진이 아닙니다. 내가 사는 이곳에서 언제나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서 햇살을 찍을 수 있고, 햇살이 스미는 방문이나 창문을 찍을 수 있으며, 햇살을 받고 깨어나는 살림살이를 찍을 수 있습니다. 아침을 차리려고 부엌에서 일을 하며 부엌 모습을 찍을 수 있습니다. 도마질을 하다가 사진을 찍을 만하고, 잘게 썬 당근이나 무를 찍을 만해요.


  내 움직임을 따라서 무엇이든 사진으로 찍어도 됩니다. 또는, 우리 집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살피면서 하루 내내 사진을 찍을 만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움직이는 모습이든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이든, 모두 ‘그림이 되’니까요.


  그림이 되는 모습이란 ‘삶이 되’는 모습입니다. 삶이 되는 모습이란 ‘이야기가 있’는 모습입니다. 그럴듯하게 보이는 모습이나 괜찮아 보이는 모습이 아닙니다. 놀라워 보이는 모습이나 멋있어 보이는 모습이 아닙니다. 즐거워 보이는 모습이나 웃음이 묻어나는 모습이 바로 사진으로 담을 만한 모습입니다.


  가만히 지켜봅니다. 마음속에서 웃음이 피어날 때까지 가만히 바라봅니다. 무언가 ‘사진으로 찍을 만한 모습’을 찾지 말고, ‘삶을 즐기는 노래가 흐르는 하루’를 누리면서 가만히 마주합니다. 사진으로 안 찍어도 되기에 가만히 바라보고, 사진으로 찍어도 즐거우니 가만히 바라보며, 오늘 하루가 아름답구나 하면서 노래할 때에 웃음이 피어나니 가만히 마주합니다. 4348.1.5.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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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5-01-05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 하루가 세상의 종말. 이라는
책이 있는데 ,곧 멸망을
앞 둬도 한그루 사과나무를 ..하던 스피노자가 생각나며..함께살기 님의
삶이 가르키는 방향이 스피노자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느끼고 갑니다.
미래에 어떤 향을 가질지 ..모든 사과는 같으나..그 사과는 이 사과와 다를 것인데..
지상에 남을 그 향기로운 사과의 말간 모습..을 미리 당겨 보니..좋았네라...

숲노래 2015-01-05 13:11   좋아요 0 | URL
사과나무뿐 아니라 배나무도 감나무도...
나무를 심는 사람은 지구별이 무너지지 않게 하는구나 싶어요.
나무를 심지 않기 때문에 지구별이 무너지는구나 싶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