섣달그믐 빨래
오늘치 빨래를 할까 살짝 망설이다가 새해로 넘기지 말자고 생각한다. 한 해 마지막 날에 빨래를 하든 새해 첫날에 빨래를 하든 대수로울 일은 없다. 더욱이 새해 첫날에 아이들을 씻기면서 빨랫감이 잔뜩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섣달그믐에도 즐겁게 빨래를 해 보자고 생각한다. 큰아이와 작은아이가 입는 도톰한 조끼를 빨고, 작은아이가 빨래터에서 적신 바지와 양말을 빤다. 손닦개 한 장을 함께 빨아서 바람이 싱싱 불지만 겨울볕은 포근한 마당에 넌다. 이렇게 하고 나서 큰아이를 불러 읍내에 저잣마실을 간다. 올 한 해에도 빨래를 신나게 했고, 새해에도 빨래를 신나게 할 테지. 새해에는 큰아이가 제 옷가지 가운데 양말이나 속옷쯤은 혼자서 빨래를 할 수 있을까. 여덟 살부터는 큰아이한테도 손빨래를 시켜 볼까 싶다. 4347.12.31.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빨래순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