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사람들
나는 한국에서 태어났으니 한국말을 씁니다. 그러나 내가 하는 말을 따로 ‘한국말’이라고 여기는 때는 드뭅니다. 나는 그저 ‘말’을 한다고 느낍니다. 나는 한국에서 태어났으니 ‘한국땅’에서 산다고 할 만하지만, 나는 ‘한국’에서 산다고 느끼기보다는 ‘내 보금자리’에서 산다고 느낍니다.
남녘에서는 ‘한국’이라는 이름을 쓰고 북녘에서는 ‘조선’이라는 이름을 씁니다. 중국과 일본과 러시아와 중앙아시아에서 사는 한겨레는 ‘조선’이라는 이름을 쓰거나 ‘고려’라는 이름을 씁니다. 모두를 아우를 만한 이름이라면 ‘한겨레’일 텐데, 정작 ‘한겨레’라는 이름을 널리 쓰려는 몸짓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곰곰이 돌아보면, 굳이 이런 나라나 저런 겨레라고 이름을 꼭 붙여야 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어떤 틀이나 무리에 깃들어서 삶을 일구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언제 어디에서나 우리는 우리 삶을 가꾸면서 사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서로서로 사귀거나 가리키거나 부를 적에는 ‘이웃’이나 ‘동무(벗)’라는 이름을 쓰면 넉넉하리라 느낍니다. 지구라는 별에서 함께 사는 지구이웃이요, 지구벗입니다.
우리는 ‘한국 문화’나 ‘조선 미술’을 살필 일이 따로 없다고 느낍니다. 우리는 그저 ‘삶’을 헤아리고 ‘그림’을 즐긴다고 느낍니다. ‘한국 역사’도 아니라 ‘삶자취’요, ‘한국 문학’도 아니라 ‘이야기’입니다.
나는 ‘그냥 사람’입니다. 내 이웃도 ‘그냥 사람’입니다. 서로 오붓하게 만나서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함께 춤추고 노래하면서, 같이 어깨동무를 하고 두레를 합니다. 4347.12.30.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책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