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주 있는 처녀 네버랜드 우리 옛이야기 21
이수진 그림, 김향금 글 / 시공주니어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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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재주’ 아닌 ‘사랑’으로 산다

― 재주 있는 처녀

 이수진 그림

 김향금 글

 시공주니어 펴냄, 2007.11.5.



  사람이 살자면 재주가 있어야 합니다. 다만, 온갖 재주가 아닌 슬기로운 재주가 있어야 합니다. 웃으면서 놀 줄 아는 재주가 있어야 하고, 노래하면서 꿈꿀 줄 아는 재주가 있어야 합니다. 이야기하면서 어깨동무하는 재주가 있어야 하며, 사랑하면서 서로 믿는 재주가 있어야 합니다.



.. 처녀는 베틀에 앉기만 하면 하루아침에 뚝딱, 베를 세 필씩이나 짰대. “우리 고을에서 베를 가장 잘 짠다니까!” “정말 재주 있는 처녀야!” 사람들은 침이 마르도록 처녀를 칭찬했어 ..  (3쪽)




  밥을 짓는 어버이는 손재주를 부리지 않습니다. 오직 사랑을 담아 밥을 짓습니다. 아기를 낳아 젖을 물리는 어머니는 젖재주 따위는 부리지 않습니다. 오로지 사랑을 실어 아기한테 젖을 물립니다.


  글을 쓰는 사람은 무엇을 할까요? 글재주를 부려야 글멋이 날까요? 아닙니다. 글멋을 부리면 글치레는 될는지 모르나, 글빛이 나지 않고 글숨이 퍼지지 않습니다. 글도 밥짓기와 아이키우기처럼 오직 사랑으로 씁니다. 사랑으로 쓰지 않고 재주를 부리려 하는 글은 겉치레로 한때 이름을 드날리거나 돈을 움켜쥘는지 모르지만, 이런 이름이나 돈은 모래알처럼 흩어지기 마련입니다.


  전문가라는 자리에 서는 사람도 재주꾼은 아닙니다. 재주꾼으로는 아무것도 못 됩니다. 어느 한 가지 일만 따로 재주 있게 잘 한다는 사람은, 어느 한 가지 일에 사로잡혀 그만 다른 일에는 눈이 어둡거나 귀가 멀기 마련이에요.



.. 재주 있는 처녀가 맨 끝에서 두 번째 벼룩을 손가락으로 가리켰지. 그 벼룩은 코 대신 모가지가 꿰여 있지 뭐야. “내 신랑감으론 어림없어요.” ..  (20쪽)




  이수진 님이 그림을 그리고 김향금 님이 글을 쓴 《재주 있는 처녀》(시공주니어,2007)라는 그림책을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시골자락 아가씨는 ‘베 짜는 재주’가 있습니다. 여기에 ‘사람을 보는 눈’이 있습니다. 다만, ‘사람을 보는 눈’은 재주가 아닙니다. 그예 사랑입니다.


  베 짜는 재주가 있는 아가씨 둘레에서는 ‘베 짜는 재주’를 높이 여길 뿐 아니라 아깝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아가씨한테 걸맞게 ‘재주 있는 사내’가 나와야 한다고 여기지요.


  여러 사내가 아가씨한테 찾아옵니다. 저마다 온갖 재주를 뽐내거나 자랑합니다. 그러니까, 다들 재주잔치를 합니다. 재주놀이를 할 뿐입니다. 어느 누구도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재주 있는 아가씨”는 이녁한테 재주가 있기는 하되, 재주를 바라지 않습니다. 재주만 섬기는 어버이와 이웃이 못마땅합니다. 그러니 시집을 갈 뜻이 없지요. “재주 있는 아가씨”는 언제나 ‘사람을 보는 눈’으로 사랑이 있는지 없는지 살핍니다. 그런데, “재주 있는 사내”는 재주에만 눈이 먼 탓에 사랑을 드러내지 못해요.



.. 하루는 혼자서 짤깍짤깍 베를 짜다가 눈물을 주르륵 흘리고 말았어. ‘이제 시집가기는 영 글렀어’ 재주 있는 처녀는 이럴 바에야 차라리 죽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어 ..  (21쪽)





  사랑이 없다면 죽느니만 못하다고 깨달은 아가씨는 삶을 접기로 합니다. 삶을 접고 죽음으로 가기로 합니다. 이리하여, 아가씨는 참말 죽습니다. ‘헌 몸(재주덩어리)’을 버립니다. 이러고 나서 아가씨는 ‘새 몸(사랑)’을 얻습니다. 아가씨는 재주를 내려놓으면서 이녁 재주를 한껏 살리는 아름다운 손길을 얻을 뿐 아니라, 이녁이 ‘재주를 부리는 삶’이 아니라 ‘사랑을 가꾸는 삶’으로 나아가도록 곁에서 돕고 아끼면서 어깨동무를 할 짝꿍을 비로소 만납니다.



.. 지나가던 떠꺼머리총각이 그 모습을 보자마자 눈 깜짝할 사이에 낫을 가져다가 대나무 밭에서 대를 싹둑 잘라 소쿠리를 얼기설기 짜서는 ..  (25쪽)



  옛이야기는 ‘빗대어 들려주는 삶’을 밝힙니다. “재주 있는 아가씨” 이야기도 지난날 여러 가지 삶을 여러모로 빗대어 들려줍니다. 사람은 재주로 살 수 없는 대목을 환하게 밝힙니다. 재주를 부려서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할 뿐 아니라, 새로운 목숨을 낳을 수도 없고, 아예 삶조차 꾸릴 수 없다는 대목을 똑똑히 보여줍니다.


  사람을 살리는 길은 언제나 사랑입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길은 늘 사랑입니다. 사람이 서로 돕고 아끼는 길은 한결같이 사랑입니다. “재주 있는 아가씨”라는 허울을 살며시 내세우면서, 이 아가씨가 눈여겨볼 줄 아는 ‘사랑’을 넌지시 보여줍니다.


  시골에서 풀을 베고 살림을 엮을 줄 아는 사내는 아직 어렴풋하게 ‘사랑’을 헤아립니다. 다만, 사내는 어렴풋하게 헤아릴 뿐이고, 이 어렴풋한 기운을 제대로 깨우쳐서 이끌 가시내가 있어야 하지요.


  사람을 볼 줄 아는 아가씨는 ‘헌 몸(재주)’을 버리면서 사랑에 제대로 눈을 떴고, 사랑에 제대로 눈을 뜬 아가씨는 ‘착하고 참된 사내’를 차근차근 북돋우고 아끼면서 ‘사랑으로 살아가는 길’을 함께 밝히기로 합니다. 두 사람(아가씨와 사내)이 낳아서 돌보는 아이들은 두 어버이한테서 사랑을 고이 물려받겠지요. 두 아이는 앞으로 새로운 삶을 짓고 아름다운 사랑으로 나아갈 수 있을 테지요. 4347.12.21.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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