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을 안 먹으면서 살기



  사람은 밥을 꼭 먹어야 살 수 있을까. 사람은 밥을 안 먹어도 살 수 있지 않을까. 어릴 적부터 밥 때문에 몹시 힘들었기에 곧잘 이 생각을 했다. 어릴 적부터 ‘먹는 일’은 즐거움이 아니었다. 김치를 몸에서 받아들이지 않으니, 오늘날 한국에서는 밥상맡이 늘 거북할 뿐 아니라 고단했다. 아무리 씹어도 넘어가지 않아 억지로 우물거리다가 삼켜야 했는데, 김치를 억지로 씹어서 삼키면 뱃속이 좋을 턱이 없다.


  한국 사회에서 김치를 먹지 않았으면, 나는 어릴 적에 밥을 즐겁게 먹었을까? 어쩌면 그러했을는지 모른다. 그런데, 나는 김치뿐 아니라 찬국수(냉면)도 못 먹는다. 어릴 적에는 크림이 조금이라도 있는 빵이나 케익을 손에 대지도 못했다. 크림빵이나 케익을 먹으면 사나흘 배앓이를 하면서 모질게 물똥을 누었다. 언젠가는 생일상에 올라온 크림케익을 먹다가 그만 왈칵 게우고 나서 넋까지 잃은 적이 있다. 그렇다고 달걀이나 떡도 잘 먹지 않았다. 여느 때에는 그럭저럭 먹지만, 한동안 안 먹다가 모처럼 먹으면 꼭 사나흘 배앓이를 하면서 모질게 물똥을 누었다.


  어머니는 이것저것 ‘새로운 먹을거리’를 자꾸 먹이셨다. 내가 태어나서 국민학교를 다니던 1970∼80년대에는 공장에서 찍는 가공식품이 쏟아질 때였고, 유럽에서는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 때문에 우유를 몽땅 내버려야 하던 터라, 우유를 ‘가루’로 만들어서 한국에 아주 값싸게 팔기도 하던 때요, 이러저러해서 ‘새로운 유제품’이 무척 많이 나왔다. 요플레라든지 푸딩 비슷한 것이라든지 요구르트라든지, 그리고 우유라든지 참으로 많이 돌았다. 이런 것 가운데 처음 내 입에 닿는 것은 어김없이 배앓이와 물똥을 불렀고, 아무리 먹어도 입에 맞지 않아서 누가 거저로 주어도 먹고픈 마음이 없었다.


  밥도 힘들고 주전부리도 고단했다. 다른 사람은 단팥빵이니 크림빵이니 무엇이니 저것이니 하는 빵을 즐긴다지만, 내가 가장 즐긴 빵은 ‘아무것도 더하지 않은 식빵’이고, 그나마 ‘식빵 아닌 빵’을 고르라 할 적에는 ‘소보루빵’만 골랐다. 식빵도 기름을 많이 쓴다지만, 식빵보다 기름을 더 쓴 빵은 어김없이 배앓이와 물똥을 낳았다.


  어릴 적에 ‘하루 세 끼니’란 죽음과 같았다. 아침 낮 저녁에 먹어야 하는 밥은 그저 무시무시했다. 동무네 집에 놀러갔는데 동무네 어머님이 ‘밥 먹고 가라’고 하면 안절부절하지 못했다. 김치처럼 삭힌 것을 못 먹는데, 이런 반찬이 있으면 동무네 집에서까지 얼마나 끔찍한가. 게다가 김치를 못 먹는 모습을 바깥에서 들키면 학교나 동네에서 얼마나 놀림을 받는가. 아니, 알 사람은 웬만큼 알아, 동네에서 놀다가도 아주머니들이 “쟤는 김치를 못 먹는 아이라지?” 하고 수다를 떨면 온몸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밥은 왜 먹을까? 밥은 왜 먹어야 할까? 몸에 기운을 불어넣어 즐겁게 일하거나 놀려고 밥을 먹는가? 그러면, 즐겁게 먹어야 하지 않을까? 못 먹는 것을 억지로 먹이지는 말아야 하지 않나?


  모든 사람이 똑같은 부피를 먹을 수 있지 않다. 조금만 먹어도 되는 사람이 있고, 많이 먹어도 모자란 사람이 있다. 조금만 먹어도 되는 사람이 있으면, 더 조금만 먹어도 되는 사람이 있을 테고, 줄이고 줄여서 거의 안 먹다시피 해도 되는 사람이 있을 테며, 그예 아무것도 안 먹어도 되는 사람이 있으리라. 국민학교 산수 수업에서, 나는 혼자 이런 ‘수열’을 생각했다.


  나흘째 아무것도 못 먹고, 닷새째 밥이나 물을 조금도 입에 못 대면서 보낸다. 엿새나 이레가 되면 어떻게 될까 궁금하다. 뭘 조금만 입에 대도 곧바로 물똥이 나온다. 아이들은 밥을 먹어야 하니 밥을 차려서 주지만, 나는 멀거니 구경을 하거나 자리에 드러눕는다. 밥내음은 따로 욕지기가 나지 않는다. 밥을 보아도 입에 넣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배앓이와 물똥 때문에 안 먹겠다는 생각이 아니라, 마음속에서 밥을 부르지 않는다.


  나중에 다시 밥을 먹을 수 있는 몸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때에는 그때대로 즐겁게 먹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한 가지를 또렷하게 깨닫는다. ‘단식’이나 ‘금식’이 아니어도 ‘밥 없는 삶’이 될 수 있고, 밥에다가 물조차 없는 삶으로 여러 날 보내면서 몸이 허전하거나 힘들지 않다.


  어릴 적에 한 가지 더 생각한 적이 있다. 하도 밥먹기가 힘들다 보니 ‘밥 안 먹기’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했는데, 풀이나 나무를 보면 뿌리가 땅속에서 양분을 빨아들인다지만, 따로 ‘밥을 먹는 얼거리’는 아니다. 해와 바람이 반드시 있어야 하고, 여기에 비가 있으면 무럭무럭 자란다. 아니, 모든 풀씨와 나무씨는 해와 바람 두 가지만 있으면 언제까지나 살 수 있다. 풀씨와 나무씨는 해와 바람 두 가지 기운으로 즈믄 해를 살 수도 있다.


  사람은 어떠할까? 사람도 해와 바람 두 가지 기운으로 살 수 있지 않을까? 해와 바람 두 가지 기운으로 사람이 살 수 있으면, 입으로 넣는 것이 없으니, 밑으로 나올 것도 없다. 입으로도 밑으로도 들어가거나 나오는 것이 없으니 몸은 늘 그대로 흐를 테며, 몸에서 ‘태워 삭이고 없애고 다시 넣어서 태워 삭이고 없애고’ 하는 흐름이 사라진다면, 몸이 아프거나 늙을 일도 없으리라 느낀다. 4347.12.16.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람타공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