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글쓰기 길동무
3. 누구와 읽을 글을 쓰나
내가 쓴 글은 누구한테 읽힐까요? 내가 쓴 글을 읽을 사람은 누구일까요? 마음으로 글을 쓰고, 마음을 글로 쓰면서, 내가 쓴 이 글을 누구와 읽으려 하는지 생각합니다. 나 혼자 읽을 글인가요? 내 짝꿍한테만 읽힐 글인가요? 어머니나 아버지한테 읽힐 글인가요? 여러 동무한테 골고루 읽힐 글인가요? 낯선 사람한테까지 읽힐 글인가요?
대통령한테 편지를 띄울 수 있고, 국회의원이나 군수나 시장한테 편지를 보낼 수 있습니다. 나를 가르치는 분이나 이웃 어른한테 편지를 쓸 수 있고, 멀리 떨어진 벗한테 편지를 적을 수 있습니다.
누군가한테 편지를 쓰려 하면, 받는 사람에 따라 다 다르게 씁니다. 어버이한테 쓰는 편지와 이웃 아주머니나 아저씨한테 쓰는 편지는 다릅니다. 동무한테 쓰는 편지와 동생이나 언니한테 쓰는 편지는 다릅니다. 궁금해서 여쭐 이야기를 적는 편지와 어떤 일을 바라면서 적는 편지는 다릅니다. 따지고 싶은 이야기를 담는 편지와 도움을 바라는 뜻을 담는 편지는 다릅니다.
편지를 쓸 적에는 이 편지를 받는 사람이 누구인가에 따라 편지쓰기가 사뭇 다릅니다. 내가 쓰려는 이야기를 잘 알 만한 사람이라면 한결 단출하게 쓸 테지만, 내가 쓰려는 이야기를 거의 모르거나 처음 듣는 사람이라면 아주 꼼꼼하게 쓸 테지요. 도움을 바라는 편지를 쓰려 한다면, 왜 도움을 받아야 하고 어떤 도움을 바라며 어디까지 도와야 하는가 같은 이야기를 차근차근 밝혀야 합니다.
서울사람이 같은 서울사람한테 서울을 이야기할 적과, 서울사람이 전남 고흥에 있는 사람한테 서울을 이야기할 적은 다릅니다. 같은 서울사람이라면, 서울을 이야기하기에 한결 수월합니다. 그러나 서울을 모르는 다른 고장 사람한테 서울을 이야기하자면 이것저것 먼저 알려주거나 밝힐 대목이 많습니다. 이와 거꾸로 보면, 전남 고흥에 있는 사람이 다른 고흥사람한테 고흥을 이야기할 적에는 퍽 수월합니다. 그리고, 고흥사람이 서울사람한테 고흥을 이야기하자면 여러모로 먼저 알려주거나 밝힐 대목이 많아요.
동생이 없어 아기를 돌본 일이 없는 사람과 동생이 있어 아기를 돌본 일이 잦은 사람이라면, 갓난아기 이야기를 나눌 적에 사뭇 다릅니다. 동생이 없어 아기를 돌본 일이 없는 사람이라면 ‘기저귀’나 ‘배냇저고리’라는 말조차 모를 수 있습니다. 이런 말은 알아도 막상 기저귀나 배냇저고리가 어떻게 생겼고, 기저귀를 어떻게 채우거나 배냇저고리를 어떻게 입히는지 하나도 모를 수 있어요. 아기를 돌본 일이 없는 사람한테 ‘기저귀 채우기’나 ‘기저귀 갈기’를 어떻게 알려줄 수 있을까요? 어떻게 말을 하고 어떻게 글을 써야 이를 알려줄 만할까요? 아주 낱낱이 밝혀야 하고, 자잘한 데까지 꼼꼼하게 짚어야 하겠지요. 이와 달리, 아기를 으레 돌보거나 잘 돌본 사람이라면 무척 가볍고 쉽게 이러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어요.
짜장면을 아직 먹은 적 없는 사람한테 짜장면을 어떻게 알려줄 수 있을까요. 짜장면 맛을 어떻게 나타낼 수 있을까요. 장어나 석류를 먹어 본 적 없는 사람한테, 후박꽃이나 동백꽃을 본 적 없는 사람한테, 제비나 박쥐를 본 적 없는 사람한테, 벼베기나 풀베기를 한 적 없는 사람한테, 그물 손질이나 대패질을 한 적 없는 사람한테, 이 모든 이야기를 어떻게 그려서 들려줄 수 있을까요.
나 혼자 읽을 글이라 한다면, 내가 아는 대로 쓰면 끝납니다. 다른 사람한테 읽힐 글이라 한다면, 다른 사람이 잘 알아듣도록 써야 합니다. 다른 사람은 내가 아는 이야기를 어느 만큼 알 수 있으나 하나도 모를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내가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에 눈길을 둘 수 있으나 거들떠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읽기를 바라면서 쓰는 글인가에 따라, 글에 담으려는 마음을 어떻게 담아야 하는지 달라집니다. 글을 쓸 적에는 이 글을 읽을 사람을 또렷이 생각하면서 그 사람 눈높이에 맞춥니다.
(최종규 .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