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관사업과 시골들



  겨울 시골들을 걷는다. 유채밭으로 바뀌는 겨울논을 바라본다.


  지난날에는 가을걷이가 끝나면 빈논에 보리를 심었다고 한다. 한동안 ‘우리 밀 심기’가 널리 퍼지기도 했다지만, 이제 겨울논에 ‘우리 밀’이든 ‘너희 밀’이든 심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밥을 굶는 사람이 드물다고 하니 보리를 안 심고, 밀이나 보리를 심는다 하더라도 제값을 받지 못하기에 굳이 힘든 일을 더 안 한다고 한다. 오늘날 쌀값조차 터무니없이 싸다고 할 텐데, 보리값이나 밀값은 얼마나 터무니없이 쌀까. 여느 과자 열 봉지이면 쌀 5킬로그램어치이다. 여느 과자 스무 봉지이면 쌀 10킬로그램어치이다. 다만, 가게에서 사다 먹는 값으로 치면 이렇다. 생각해 보라. 시골지기는 농협에 쌀 40킬로그램을 팔면서 과자 몇 봉지 값을 벌 수 있을까?


  정부에서는, 그러니까 도시내기 공무원은, 겨우내 ‘빈논’이 봄이 되면 온갖 풀꽃이 어우러져서 ‘보기 나쁘다’고 말한다. 냉이꽃이나 민들레꽃이나 별꽃이나 꽃마리꽃이나 봄까지꽃이나 갖가지 봄꽃이 ‘보기 나쁘다’고 말하는 셈이다. 이리하여 꽤 예전부터 정부에서는 ‘경관사업’을 한다. 겨우내 빈논에 유채씨를 뿌려서 새봄에 노란 꽃물결이 되도록 하면, 마을에 ‘경관사업 보조금’을 준다.


  경관사업을 하면, 도시내기 관광객이 시골들을 자가용으로 지나가면서 슥 둘러보기에 ‘보기 좋다’고 하는데, 유채꽃만 가득해야 보기에 좋은지 잘 모르겠다. 수많은 들꽃이 어우러지는 겨울들이나 봄들은 얼마나 안 보기 좋을는지 궁금하다. 노란 꽃물결을 이루는 유채논을 갈아엎으면 땅에 거름 구실을 한다고도 하지만, 겨울들을 가만히 두면 온갖 풀꽃이 자라니, 이 풀꽃도 얼마든지 거름 구실을 한다. 한 가지 풀씨만 자라는 논보다 여러 가지 풀꽃이 자라는 논이 훨씬 나은 거름을 얻는다고 할 수 있다. 4347.12.6.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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